[여계봉의 산정천리] 여름특집 3편

걸어서 30분 만에 올라가는 남한 땅에서 6번째로 높은 함백산

여계봉 선임기자


폭염을 뚫고 1,500m 이상의 고지를 오르는 여름 산행은 한마디로 생고생이자 개고생이다. 그러나 백두대간의 지붕을 이루는 이 산은 사정이 다르다. 태백과 정선에 걸쳐있는 함백산의 해발고도는 1573m. 남한 땅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산이다. 우리 산을 높이 순으로 줄 세워 보면 한라산과 지리산, 설악산에 이어 덕유산, 계방산이 있고 다음이 바로 함백산이다. 근처에 있는 태백산도 함백산 아래다. 한여름에도 산정은 가을 날씨처럼 선선해서 가벼운 윈드자켓을 꼭 챙겨야 한다. 이런 고산을 걸어서 30분 만에 오른다니 날로 먹는 셈이다.

 

함백산 주위 산군들. 오른쪽이 정상에서 두문동재로 가는 대간 길이다.


찾아가는 길도 쉽다. 네비에 함백산KBS중계소라고 치면 414번 도로를 따라 정암사를 지나서 만항재로 가다가 고갯마루 못미처 좌측으로 태백선수촌 이정표를 따라가면 함백산 KBS 중계소 입구가 나온다. 도로 갓길에 차를 주차한 후 중계소 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산행이 시작된다. 이곳 해발이 1,348m이니 고도를 247m만 올리면 정상이다. 정상까지 편도거리는 만항재에서 출발하면 2km, 여기서 출발하면 1km밖에 되지 않아 최단거리 코스인 셈이다.


들머리인 함백산 KBS 중계소 입구. 만항재에서 오는 대간 길이 지나간다.


중계소 안의 포장도로를 따라 조금 걷다가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숲으로 들어간다. 원시림 사이로 난 유순한 숲길은 한여름에도 맑고 서늘하다. 초록의 이파리에 맺힌 이슬방울과 나무 둥치를 덮은 이끼, 산새들의 경쾌한 울음소리까지 모든 것이 맑은 기운으로 가득하다. 한여름이지만 차갑고 청량한 숲의 기운 때문인지 한기를 느낀다.


진초록의 원시림 위로 함백산의 순한 능선이 보인다.


깊은 숲속에서는 풍성한 여름꽃들이 앞다투어 피어나고 있다. 하늘을 가린 나뭇잎 때문에 숲속은 어둑어둑 하지만 새벽에 내린 비로 흙내음이 향긋하고 돌계단의 초록색 이끼는 유난히 생기가 넘친다. 가파른 돌계단을 힘든 줄 모르고 올라서니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나온다. 첩첩이 이어진 산줄기에 운무가 몰려들어 겹겹이 겹쳐서 일렁이는 것이 마치 파도 같다.


만항재로 이어지는 능선의 대간 길. 구름이 내려앉아 만항재가 보이지 않는다.


맑은 날 함백산 정상에서의 조망도 탁월하지만, 오늘처럼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구름바다의 아름다움도 가히 장관이다. 정상에서 남쪽을 바라보니 민족의 영산인 태백산은 보이지 않고 구름 사이로 태백선수촌 잔디 운동장만 보인다. 맑은 날에는 태백산의 문수봉, 부쇠봉, 천제단이 일렬로 나란히 펼쳐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간 길은 태백산 장군봉, 희방재, 만항재를 거쳐 함백산 정상으로 이어진다.

 

정상에서 남쪽으로 태백산은 구름에 덮여있고 태백선수촌만 보인다.


함백산은 강원도 정선군과 태백시의 경계에 있다. "모두 함(), 흰 백()"의 함백산은 "모두가 하얗다" 또는 "크게 밝다"는 뜻이다. 주변에 대덕산과 백운산, 매봉산, 장산, 태백산, 연화산, 백병산 등 해발 1,200~1,400m 이상의 고산(高山)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산세가 무척이나 웅장하고 듬직하다.

 

함백산 정상(1573m). 백두대간의 중간에 위치 하고 있다.


정상에서 북으로 해발고도가 높은 능선이 길게 뻗어 있는데, 중함백, 은대봉, 금대봉과 오른쪽 끝에 매봉산이 보인다. 동쪽으로는 연화산과 백병산 너머 푸른 동해가 한눈에 조망되고, 서쪽으로는 정선군 고한읍에 있는 백운산과 두위봉이 한 폭의 그림과 같다. 동쪽에는 헬기장과 함백산 KBS 중계소가 보인다. 정상 아래는 천연보호림으로 지정된 오래된 주목(朱木) 수백 그루가 자생하고 있고, 두문동재로 이어지는 대간 길 좌우로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있다. 이름하여 천상의 산책로로 불리는 길이다.


정상에서 북으로 이어지는 대간 길. 오른쪽 끝이 바람의 언덕 매봉산이다.


오늘처럼 비가 지나간 날에는 어김없이 산줄기들이 온통 운무로 휘감긴다. 구름이 발아래로 바다처럼 펼쳐지면 구름의 수면 위로 높은 봉우리들이 마치 수묵화 속의 섬과 같다. 능선의 풍력발전기들이 구름 속에 갇히기도 하고, 낮은 구름이 초록의 능선을 타고 넘어가거나 능선과 능선이 만나는 협곡 사이로 구름이 피어나기도 한다. 함백산 하면 바람이 많이 부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정상의 나무들은 모두 약간 비스듬하게 자라고 있다.


정상에서 서쪽으로 풍력발전단지와 고한읍이 멋진 조화를 이룬다.


백두대간의 지붕을 따라가는 한여름날의 함백산 산행을 끝내고 차가 있는 KBS 중계소 입구에 도착하자 문뜩 이런 생각이 든다. 이런 거대하고 영험한 백두대간의 고산을 왕복 1시간 만에 오르내리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한여름인데도 공들이지 않고 영험한 산에 오르는 바람에 함백산 산신령께 불경을 저지른 것 같아 괜히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함백산에서 만항재로 내려가는 대간 길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산행을 마치면 근처에 있는 만항재와 5대 적멸보궁인 정암사에 들러보길 권한다. 국내에서 차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인 만항재의 하늘 숲 정원은 요즘 야생화 천국이다. 그리고 만항재를 내려오면서 만나는 정암사에 들러 작년에 국보로 승격된 수마노탑을 친견하면 오늘 하루 백두대간 산행과 천년고찰 문화기행을 한꺼번에 섭렵하는 여름날의 멋진 추억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여계봉 선임기자

yeogb@naver.com

여계봉 기자
작성 2021.07.09 11:04 수정 2021.07.09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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