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도는 아름다운 경치와 순한 인심이 있는 풍요의 섬이다. 이 섬엔 영화 서편제에서 보여준 가장 향토적이고 한국적인 풍경이 남아있다. 날씨가 맑으면 완도에서 빤히 보이는 청산도는 여객선으로 50분이면 들어갈 수 있다. 섬의 관문인 도청리에 도착하면 시내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물론 차도 싣고 갈 수 있다.
민박집이 있는 지리 해수욕장으로 넘어가는 길에는 바다에서 올라온 바람이 밭고랑을 휘젓고 다니다가 개망초꽃이 흐드러진 논두렁을 지나 산마루를 타고 넘는다. 순간 육지에서 따라온 찌든 스트레스가 함께 날아가버린다. 해변에 소나무가 죽 늘어선 지리 해수욕장 근처에는 민박집이 몇 채 있다. 도요새가 종종걸음으로 바삐 움직이는 곳에 게들이 숨바꼭질을 한다.
민박집에 여장을 풀면 파도소리와 함께 바다가 먼저 방으로 들어선다. 날이 저무는 콩밭에는 석양이 반사되어 붉게 타오르고 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낙의 모습은 일찍이 어릴 때 농촌에서 보았던 바로 그 풍경이다.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시절의 추억이 세월을 넘어 여기 청산도에서 잠시 멈춰 서 있다.
차를 타고 북쪽 해안을 따라 15분 정도 달려 진산리를 지나 산 고개를 넘어서면 신흥리 갯벌이 나온다. 물이 빠진 갯벌에는 조개를 잡는 할머니들이 바쁘게 손을 놀린다. 여기서 조개를 몇 마리 잡아 민박집으로 와서 된장찌게를 해먹는 맛도 일품이다.
마을버스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도는 것도 재미있다. 이 버스는 도무지 빨리 가는 차가 아니다. 이 마을 저 동네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기사는 모르는 사람 없이 인사를 하고, 멀리서 달려오는 사람이 있으면 하염없이 기다리기도 한다. 신흥리에서 산을 넘고 다시 바다를 끼고 돌아서면 길가에 지석묘가 있는 읍리 마을이 나온다. 바다와 가까운 논 가운데에 있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마을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지석묘가 있다는 것은 청동기시대에도 이 섬에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다.
읍리를 지나 조금 가면 영화 서편제에서 본 당리 마을인데 마을에서 유일한 초가집 한 채는 서편제의 주인공이 마루에 앉아 판소리를 배우는 장면을 촬영한 장소로 관광객들을 위해 보존해 두었다. 이곳 당리 마을의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도락리 풍경은 그대로가 한 폭의 동양화다.
청산도에는 유일한 절인 백련사가 있다. 부흥리의 명물 구들장 논을 지나 산으로 오르면 바위 병풍아래 암자처럼 생긴 절이 보인다. 올라가는 길가에는 돌로 담을 쌓아 경계를 만들어 놓은 밭뙈기들이 여기저기 있다.
콩이나 마늘을 심는 밭이다. 일없는 나그네의 눈에는 목가적으로 보이는 저 밭에서 얼마나 많은 호미자루가 닳았을까. 긴 밭고랑마다 섬마을 아낙네들의 한숨과 애환이 숨어있는 듯하다. 청산도는 이렇게 일주여행을 해봐야 제맛이 나는 섬이다. 올해는 코로나19가 문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