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미사변] 80대 노인과 20대 소녀의 사상로맨스

로망과 희망에 찬 ‘미래’를 위하여

사진=코스미안뉴스


로망아니 선망의 대상김미래 님께

 

지난번 메일에 김미래 님이 적으신 글, “세상이 No라고 할지언정, 부딪혀봐야 나아갈 수 있는 법. 흙이 있어야 꽃의 뿌리를 내릴 수 있으리라 믿고 하염없이 걷습니다.”를 문득 미국시인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1876)의 시구가 생각납니다.

 

알 수 없는 미지의 미래는 지성이 필요로 하는 전부여라. The unknown is the largest need of the intellect.

 

김미래 님의 이름을 누가 작명해주셨는지, 더할 수 없이철학적이고, 시적으로 무궁무진한 우주 코스모스의 신비로운 기운으로 가득 차 있네요. 작명해주신 분께 심심한 경의를 표해 마지않습니다.

 

제가 전에 쓴 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 것 같습니다만, 이름이란 단순히 불리는데 그치지 않고 태생 전 태교육으로 시작해 태생 후 평생토록 이어질 뿐만 아니라, 사후에도 영원토록 남아 숨 쉬게 되는 천지간의 기가 서려 그윽하게 이 무럭무럭 나게 되는 게 아니던가요. 무릇 대체로 헤아려 점쳐보건대,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말한 것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의 영원한 미스터리는 이를 이해할 수 있는 그 가능성이다. The eternal mystery of the world is its comprehensibility라고 할 수도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옛 한시 한 편 같이 음미해보자구요.

 

 

또한 유쾌하지 않은가不亦快哉三十三則

 

 

자식들이 글을 읽는데, 유려하기가 병에서 물 흘러나오듯 한다.

이 또한 유쾌하지 않은가!

 

아침에 눈을 뜨자, 한숨 소리와 함께 누가 죽었다는 수군거림이 들린다.

얼른 사람을 불러 누가 죽었는가 물으니,

성 안에서 제일 인색하던 그 구두쇠라고 한다.

이 또한 유쾌하지 않은가!

 

가난한 선비가 돈을 꾸러 왔다. 터놓지 못하고 우물쭈물 딴말만 한다.

그 마음을 눈치 채고 조용한 데로 데려가, 얼마나 필요한가 물어본 뒤,

달려가 돈을 가져와 건네준 다음 다시 묻는다.

자네 당장 처리할 바쁜 일이 있으신가? 같이 한 잔 하고 가면 안 되겠는가?”

이 또한 유쾌하지 않은가!

 

창문 열어젖히고 방 안의 벌을 몰아냈다.

이 또한 유쾌하지 않은가!

 

빚을 다 갚았다.

이 또한 유쾌하지 않은가!

 

김성탄金聖歎(1608~1661)

 

 

최근 자연과인문 출판사 전승선 대표님께서 제게 주신 메일에서 증언해주신 대로, “한국은 이제 어떤 형태로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 있습니다.”처럼 개인이고 민족이고 불사조처럼 희망은 언제나 절망 속에서 태어나지요. 우리 모두의 로망과 희망찬 미래를 위하여 몇 자 적어봤습니다.

 

 

20170317

이태상 드림

 

 

친애하는 선생님.

 

50여년의 세월이 무색하게나마 이렇게 글귀를 주고받고 머릿속 세계를 공유할 수 있는 동시, 그간의 세월만큼 저보다 더 넓은 앎을 지니신 귀인께 소중히 다시 한 번 글귀 적습니다.

 

어렸을 적, 제 이름 석자 김미래 중 가 아닌 여서 예쁜 한자 갖고픈 마음에 어찌나 아쉬워했었는지요. 아버지가 미래未来라 지어주심에는 세상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 특별한 존재가 되라는 의미가 담긴 것을 알고서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예측할지언정 예측과는 달리 그 이상이 될 수도, 빗나갈 수도, 덜할 수도 있는 미지의 앞날을 의미한다는 것이 선생님이 말씀주신대로 이름의 의미가 태생 후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쭉 저의 걸음걸이에 녹아져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사회가 가지고 있는, 특히나 한국, 서울에서 일반화된 시나리오를 제 삶에서 배제시키려 합니다. 그러다보니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것, 싫은 것, 옳지 않은 것에 대한 표현이 참 편합니다. 물론, 항상 겸손은 필요하지요. 지구상 모든 개인은 모두 다른 삶을 살아왔고 각자만의 관점과 신념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헌데 개인주의가 극대화되는 요즘 현대인들은 여럿 내에서 상대에게 유쾌히 입을 열기보다는 머릿속으로 상대에 대한 계산을 열심히 두드리기 바쁜 듯합니다. 관계를 시작하는데 겁을 내고, 관계를 끝맺는 것도 두려워하다 결국 흐지부지 애매해지기 다반사, 유쾌히 툭 말을 내뱉는 것을 왜 이리 사람들은 두려워하는지요.

 

과거는 이미 보여진 것들이기에 정답이 있을까요? 그러하다면 과거를 기반으로 현재와 미래의 정답을 내릴 수 있는 걸까요. 어제와 오늘의 날씨도, 인구수도, 입는 옷가지도 달라지는데 말입니다. 고로 내일도 예측이 안 될 터인데, 당장의 꿈과 행동들로 결정짓기엔 미래를 구성 짓는 요소들은 너무나도 무한한 듯합니다. 위 김성탄님의 시처럼 지금은 지금인대로 유쾌하게, 슬플지언정 유쾌하게, 아플지언정 유쾌하게, 기쁨에도 유쾌하게! 선생님의 무지코에서 읽은 미국 시인 에즈라 파운드의 시에서 죽은 셈 치면 매일매일이 덤이라 하였지요. 오늘 하루 털털이 즐긴다면 덤으로 다가온 내일 아침 뜬 눈으로 바라본 천장마저도 또 얼마나 호탕하게 유쾌 할지요, 먹먹함 없이…….

 

선생님이 보내주시는, 아니 마치 호탕한 음색으로 읽어주시는 듯한 글귀들에 매일이 너무 유쾌하여 저도 모르게 지하철에서 괜스레 웃게 됩니다. 흐흐흐

 

20170318

김미래  

이정민 기자
작성 2021.08.09 09:33 수정 2021.08.09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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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