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그곳에 가고 싶다

‘솔베이지의 노래’ 따라 노르웨이 속으로

여계봉 선임기자

숫자 ‘8’을 의미하는 노르웨이의 작은 시골 마을 오따(Otta)를 지난다. 14세기 중엽 페스트가 유럽을 휩쓸 때 3천여 명의 마을 사람 중 겨우 8명만 살아남은 아픈 상처를 지닌 도시다. 자작나무 숲 사이로 난 15번 도로를 따라 빙하가 녹은 물이 흘러내리는 강물과 함께 1시간 정도 가면 작은 마을 롬(Lom)이 나온다. 이 마을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스타브 교회는 12세기경에 바이킹이 만든 북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교회인데, 루터교회가 그러하듯이 작고 소박하다. 이곳을 정복한 나폴레옹은 이 교회가 탐이 나서 통째로 프랑스로 가져가려 했으나 옮기지 못해서 포기했다고 한다.


스타브 교회. 못을 사용하지 않고 지은 통판 목재 건축물이다.


교회에 들어서면 예쁜 꽃들로 치장한 묘비가 앞마당에 가득하다. 이상하게도 이곳에서는 죽음이 그리 무겁지만은 않게 느껴진다. 여기 사람들은 묘지와 함께 산다. 화장터가 동네 한가운데 있고, 교회 마당에는 반드시 묘지가 있다. 아이들은 정원처럼 꾸민 묘지를 오가며 자전거를 타고 논다. 이들은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뿐이다.


교회 마당의 묘지. 이들에게 묘지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잇는 공간일 뿐이다.


롬을 출발하자 버스 안에는 솔베이지의 노래가 울려 나온다. 롬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빈 스트라는 해발 1,000m의 고원 지대에 있는 산속 마을이다. 이곳을 지나던 노르웨이의 대표적 극작가인 헨릭 입센은 이 마을에서 전해오는 페르퀸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희곡을 쓰게 된다.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하며 놀기 좋아하는 페르퀸트라는 남자 주인공은 망나니짓을 하고 다니다가 솔베이지를 만나 결혼하면서 가정을 꾸리지만, 모험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솔베이지를 버려둔 채 배를 타고 장사하러 떠나면서 어려운 일들을 겪는다. 큰돈을 벌어서 배를 타고 귀향하게 되지만 도중에 폭풍우를 만나 가진 것을 모두 잃고 병에 걸린 채 쓸쓸히 집에 돌아온다. 결국 솔베이지의 무릎에 누워서 노래를 들으며 죽는다는 이야기다.

 

입센은 막역한 사이인 작곡가 그리그에게 자기가 쓴 희곡에 곡을 붙여달라고 부탁하고, 그리그는 페르퀸트 모음곡을 발표한다. 그래서 작은 산촌마을 빈 스트라는 매년 8월 페르퀸트 축제가 성황리에 열리면서 페르퀸트 마을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호수의 물안개 사이로 솔베이지가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 같다.


오슬로로 가는 길에 강 너머 산자락에 예쁜 마을이 보인다. 1994년 동계올림픽이 열린 인구 2만 명이 사는 릴리함메르다. 강 건너 저편에 스키 점프대도 보인다. 릴리함메르에는 세계에서 가장 긴 메사호수가 있다. 메사 호숫가에 보이는 배가 뒤집혀 있는 것 같은 건물이 올림픽 때 사용되었던 조정 경기장 건물이다. 올림픽 때 초대형 크루즈선을 이 호수에 정박시켜 숙소로 사용했다 한다. 실용성에 있어서는 단연 세계 최고다.

 

릴리함메르. 올림픽에서 무려 4천억의 흑자를 기록했다고 한다.


길이가 100km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긴 메사호수


인구 50만 명의 오슬로는 다양한 건축물들이 주변 지형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노르웨이 특유의 요란하지 않은 차분한 정서가 어우러진 매력적인 도시다. 비겔란 조각공원은 조각가 비겔란이 13년에 걸쳐 청동, 화강암, 주철을 사용한 다양한 작품을 준비해서 만든 공원이다. 작품의 테마는 인간의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희로애락이다. 안타깝게도 비겔란은 자신이 온 힘을 기울인 공원이 완성되기 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공원에 전시된 비겔란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공원 한가운데 서 있는 높이 약 17m에 달하는 화강암 조각상 '모놀리트(Monolith)'. 멀리서 보면 그저 커다란 기둥처럼 보이지만, 121명의 남녀가 엉켜 괴로움으로 몸부림치는 모습이 생동감 있게 묘사된 작품이다. 정상으로 올라가려는 듯 안간힘을 쓰는 군상은 인간의 본성이 나타난다. 기념사진 촬영 포인트로 인기 있는 '심술쟁이 소년' 상은 왼발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하여 손을 대면 미끄러질 정도로 반질반질하다.


'모놀리트'는 실제 인체 크기로 조각되어 더욱 역동적인 느낌을 보여 준다.


   

비겔란 조각공원의 랜드마크 '심술쟁이 소년' 상


오슬로에서 가장 오래된 중세건축물 아케르스후스 성은 오슬로 항으로 들어오는 모든 배를 지켜보고 있다. 13세기께 스웨덴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이 성은 80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견고한 외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르네상스 양식의 이 성은 겨울왕국아른델 왕국의 모델이기도 하다.


 

아케르스후스 성의 대포. 단 한 번도 정복당하지 않은 난공불락의 요새이기도 하다.


오슬로는 오랫동안 스웨덴과 덴마크의 도시였다는 어두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성채에서 내려다보이는 오슬로항은 빙하가 조각한 오슬로 피오르의 끝에 있다. 노르웨이의 수도이자 과거와 현대가 어우러진 북유럽의 중심 항구다. 항구 가운데 보이는 돛 모양의 현대적 디자인의 건축물은 이탈리아 건축가 렌즈 피어노가 설계한 아스트룹 피언라 현대 미술관이다.



북해에서 좁고 깊은 피오르를 따라 들어가면 그곳에 오슬로항이 있다.


오슬로 시청사는 1950년 시 창립 900주년을 기념하여 완공돼 지금까지 시청으로 사용되고 있는 오슬로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시청사 입구에는 오슬로의 상징인 백조상이 있는 분수가 있다. 시청사 양쪽의 높은 2개의 큰 갈색 건물 때문에 염소젖으로 만든 노르웨이 브라운 치즈와 색깔이 비슷하다 하여 브라운 치즈 두 조각이라고도 불린다.

 

시청사 입구의 백조상 분수는 오슬로의 아이콘이다.


붉은 벽돌로 쌓은 좌우 대칭형 건물은 오슬로의 피오르를 바라보고 있으며, 두 개의 탑을 가진 시청사의 내부는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예술품들로 가득 장식되어있다. 소박한 외관에 비해 내부는 무척 화려하다. 1층 정면의 25m 대형 그림 행정부와 축제는 유럽에서 가장 큰 유화인데 3개의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맨 아래는 1624년 오슬로 대화재, 가운데는 파티를 즐기는 모습, 제일 위는 노르웨이의 찬란한 미래를 상징한다. 1층 중앙 홀에서는 매년 12월 노벨 평화상 시상식이 열리기도 한다. 유독 노벨 평화상만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선정하고 수상하는 이유는 노벨의 유언 때문이라고 한다. 2층의 대형 연회장에는 왕과 왕비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 있고, 그 옆 뭉크의 방에는 현대 표현주의 미술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그의 역작 일생이 전시되어 있다. 평생 병과 죽음 사이에서 방황했던 죽음의 미학자뭉크의 삶은 오랫동안 외세의 침략으로 암울했던 이 도시의 분위기와 묘하게 매칭된다.

 

시청사의 중앙 홀. 매년 12월 이곳에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다.
시청사 연회장의 창을 통해 오슬로 항이 보인다.


오슬로 중앙역에서 왕궁까지 이어지는 약 1.5km의 카를 요한 거리는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쇼핑, 문화, 예술의 거리다. 이 부근에는 왕궁, 국립극장과 의회, 오슬로 대학 등 오슬로의 주요 건물들이 모여 있다. 요즘 오슬로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어 거리는 젊은이로 가득하다.

 

카페 거리의 고풍스러운 pub에서 아문센 수제 맥주를 마시며 여독을 삭힌다. 홉의 쓴맛이 짙게 배어 나오는 독특한 풍미가 인류 사상 최초로 남극점 도달에 성공한 노르웨이의 극지 탐험가 아문센답게 화끈하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가는 DFDS 크루즈의 전망대에 선다. 마치 바다에 빙하가 떠 있는 모습을 한 오페라 하우스의 거대한 유리창에 석양이 내려앉는다. 빙하가 조각한 피오르 사이를 흰색 꼬리를 달고 달리는 배들은 마치 생동감 넘치는 풍경화 속의 작은 소품 같다. 어디 그뿐이랴. 노르웨이와 덴마크 사이의 스카게라크 해협 양옆에 있는 연녹색 숲으로 덮인 작은 섬에는 예쁜 마을이 들어앉았다.

 


오슬로에서 코펜하겐으로 가는 DFDS 크루즈에서


섬 해안 절벽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뱃전까지 들려오면서 가슴에 깊은 울림을 만들어낸다.

 

살아 숨 쉬는 노르웨이의 자연을 경험해 보면 깨닫는 것이 하나 있다.

 

우리 인간을 진화시키는 힘은 결국 자연에서 나온다는 것을.

 



 

여계봉 선임기자

yeogb@naver.com







여계봉 기자
작성 2021.08.09 12:34 수정 2021.08.09 12:35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여계봉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동영상 더보기
광주루프탑카페 숲안에 문화복합공간 #로컬비즈니스탐험대 #우산동카페 #광주..
2025년 4월 25일
2025년 4월 25일
전염이 잘 되는 눈병! 유행성 각결막염!! #shorts #쇼츠
2025년 4월 24일
2025년 4월 23일
2025년 4월 22일
나는 지금 '행복하다'
2025년 4월 21일
2025년 4월 20일
2025년 4월 19일
2025년 4월 18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6일
2025년 4월 15일
2025년 4월 14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