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저 바다 단풍 드는 거 보세요.
낮은 파도에도 멀미하는 노을
해안선이 돌아앉아 머리 풀고
흰 목덜미 말리는 동안
미풍에 말려 올라가는 다홍 치맛단 좀 보세요.
남해 물건리에서 미조항으로 가는
삼십 리 물미해안, 허리에 낭창낭창
감기는 바람을 밀어내며
길은 잘 익은 햇살 따라 부드럽게 휘어지고
섬들은 수평선 끝을 잡아
그대 처음 만난 날처럼 팽팽하게 당기는데
지난여름 푸른 상처
온몸으로 막아주던 방풍림이 얼굴 붉히며
바알갛게 옷을 벗는 풍경
은점 지나 노구 지나 단감 빛으로 물드는 노을
남도에서 가장 빨리 가을이 닿는
삼십 리 해안 길, 그대에게 먼저 보여주려고
저토록 몸이 달아 뒤척이는 파도
그렇게 돌아앉아 있지만 말고
속 타는 저 바다 단풍 드는 거 좀 보아요.
물미해안에 관한 ‘고두현’ 시인의 시다. 물미해안은 물건마을에서 미조항까지 30리 해안선으로 물건의 물자와 미조의 미로 지어진 이름이다. 詩에서처럼 길이 낭창낭창 아름답기가 글로 다 형용할 수가 없다.
이 시를 쓴 시인 고두현은 남해 정포(井浦)마을에서 태어나 상주중학교를 다니고 포항으로 마산으로 서울까지 객지에서 생활을 오래 한 시인이다.
중앙일보에 서포 김만중이 남해 올 때의 심정을 노래한 ‘남해 가는 길’로 등단을 했고 성인이 되어서 어느 가을날 고향에 다니려 왔다가 물미해안을 지나게 되었는데 단풍으로 물든 산이 바다에 비치는 것을 보고 일필휘지로 쓴 시라고 한다.
지금은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논설위원으로 있는 남해가 자랑할 문화인물 1호라고 말하고 싶다. 미소년처럼 해맑고 순수한 시인을 간혹 한 번씩 뵙는데 10년이 넘은 인연이지만 처음 본 그날처럼 변함없는 사람이다.
남해의 자연과 역사, 문화를 자랑하는 해설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해설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남해자랑 끝에 주제에 맞는 시를 한편씩 읊어 드리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여행을 와서 이곳의 이야기와 맞는 시를 한편씩 듣는 시간을 갖게 하여 색다른 경험을 하게 해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시를 찾아다니다가 운명처럼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를 만났고 두어 시간 만에 외웠다. 내 생애 가장 짧은 시간에 외운 시가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다.
버스투어를 가면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남해 가는 길’, ‘늦게 온 소포’, ‘치자꽃 설화’, ‘화전별곡’ 등 남해가 연상되는 시들을 오시는 분들의 성향에 맞게 몇 편씩 읊어 드린다.
대부분이 고두현 시인의 시다. 만나 보면 딱 시인이구나 하는 느낌이 오는 사람이다. 곧 단풍드는 가을이 올 것이다. 가을엔 아름다운 ‘남해물미해안’과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를 소개하고 싶다. 시와 자연과 사람이 더없이 아름다운 남해에 사는 즐거움을 남해를 찾는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고 싶은 마음이다.
[서재심]
시인
남해군문화관광해설사
코스미안뉴스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