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우리나라에 지방분권이 시작되고 초대 김두관 남해군수는 공무원들에게 배낭여행을 보냈다고 한다. 선진국으로 가서 좋은 것을 벤치마킹해서 우리 남해에 접목하는 것이 어떨까 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이때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갔던 분이 다녀와서 독일로 갔던 광부나 간호사분들이 고국으로 돌아와서 살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김두관 군수는 “그럼 우리 남해로 모시자”고 하고서는 독일로 사업설명회를 하러 갔다. 그리고 오시고 싶은 분들을 남해로 모시고 와서 남해의 아름다운 자연을 둘러보게 했다.
오랫동안 독일에서 터를 잡고 사셨던 파독 광부들과 간호사들은 남해의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고향 같은 포근함과 서로 감싸는 인정에 반해 남해에 정착할 것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조성된 것이 남해독일마을이다.
남해군에서는 ‘터 닦기 작업을 하고 상하수도 시설과 통신 시설 설치를 다 마치고 분양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테마 마을인 독일마을이 탄생했다. 독일마을이 생기기 전엔 그냥 다랭이논이던 지금의 독일마을 자리는 상전벽해라고 할 만큼 남해의 대표 관광지로 눈부신 변화와 발전을 했다.
김두관 군수가 물러나고 그 다음, 다음 군수였던 정현태 군수는 독일마을에 정착하여 사시는 분들의 역사를 모아 ‘파독전시관’을 만들었고 뮌헨의 세계 삼대 맥주축제인 옥토버페스트 축제를 벤치마킹하여 10월에 남해독일마을에서 옥토버페스트란 이름으로 맥주축제를 하고 있다.
해설사가 되고 독일마을로 벤치마킹하러 오시는 분들을 안내하면서 참 자랑스러웠다. 전국의 지자체 중에서 처음으로 이런 창의적인 생각을 한 지자체가 우리 남해라는 사실과 용기 있고 일 처리를 깔끔하게 하는 남해 사람들이 무엇보다도 자랑스러워 매번 열을 올리며 나는 안내를 한다. 우리나라에서 ‘문화관광해설사’ 제도를 처음 만든 것도 남해다. 관광이 일반화되던 시점에 남해를 아끼고 사랑하는 지역 사람들이 남해의 자연과 역사 문화를 보러 오는 분들에게 남해를 다시 찾게 하자는 의로도 ‘관광도우미’를 시작했다. 이것이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면서 한국관광공사에서 ‘문화유산해설사’ 교육을 시작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관광도우미’ 교육을 받고 남해를 자랑하고 다니다가 한국관광공사교육도 받고 좀 더 깊이 있는 해설을 하게 되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다.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길은 찾으면 열려 있는 것 같다.
남해에는 아름다운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자연 속에는 사람이 있고 사람 속에는 이야기가 있다. 즐거운 이야기, 슬픈 이야기, 감동적인 이야기, 애잔한 이야기 등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스토리텔링 소재가 무궁무진한 곳이다. 그 감동의 파노라마를 남해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