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프로젝트] 이명동음, 오해는 어디서 발생하는가

배은비

사진=코스미안뉴스



우리의 오해는 어디서 발생하는가


이명동음, 음악에서 사용되는 말로 다른 이름 한 소리를 말한다. 예를 들면, 도와 레 사이의 검은 건반은 도# 혹은 레b이라 부른다. 같은 음을 지칭하지만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 있다. 올라가는 선율 형태에서 이 음이 사용될 경우에는 도#이라 부르고, 하행하는 선율 형태에서 이 음이 사용될 때에는 레b이라 부른다.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오해에서 비롯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우리는 사실 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경우에도 오해는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단지, 그것을 부르는 이름이 다를 뿐인데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갈등을 빚는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이명동음의 예처럼 실체는 같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방향성과 맥락에 따라 다른 이름을 붙일 수 있다. ,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인간은 한 쪽 방향에서만 실체를 인식하려 한다


이것을 인간관계에 연결시켜보면, 사랑하는 사람 간의 오해가 발생하는 원리는 이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왜 내 마음은 몰라주는가?”하는 생각이 든다면, 한 쪽 방향에서만 실체를 바라보고 인식했을 확률이 높다. 이것은 소통의 매개체인 언어의 특성 때문에 발생한다. 보통 사람들은 같은 단어를 사용하면 똑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언어의 특성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면, 언어 안에는 한 사람의 경험과 이야기가 담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같은 단어에서도 인간 저마다 담긴 이야기가 모두 다르다. 예를 들면 우리는 같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도 한 사람은 행복한 사랑의 모습을 담고 이야기할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은 정반대로 아픔의 뜻을 담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한사람이 인생을 살아감에 따라 한 단어 위에 여러 가지의 이야기가 쌓여간다.


사랑뿐만 아니라 모든 단어 모든 이야기에서 말이다. 각자의 인생 경험은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같은 언어를 공유한다. 여기서 오해가 발생한다. 자신의 시각에서만 현상을 바라보는 것은 한 방향성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 때문에 고통이 생긴다. 본인이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들이 너무 많이 발생하기에.


그렇다면, 오해에서 생기는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스스로 좀 더 거시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키우는 것이다. 한 개인은, 한쪽 면에서만 세상을 바라보는 존재라는 것을 자각했다면 이제는 다른 쪽의 방향에서도 실체를 보도록 나를 훈련 시켜 나가는 것이 자유로운 인간이 되는 길이다. 내 앞에 일어나는 현상들을 다양한 방향성으로 또 거시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면,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사랑의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다. [글=배은비] 


이정민 기자
작성 2021.09.18 10:05 수정 2021.09.18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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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