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구 칼럼] 가을 전시회

문경구

 

어김없이 찾아올 줄 알았지만 이번에는 오래 뜸을 들인 것 같다. 정말 가을인가 하고 창문을 열고 바라보니 핼쑥한 모습의 가을이 찾아와 있다. 나를 품고 있는 우주에 선한 날들과 악한 날들이 수없이 창밖으로 지나가는 것을 느끼게 하는 아침, 가을이 완연하다.

 

모두가 세상 조화라고 하시던 어르신들의 말을 이제는 알 것 같은 나이가 나도 되었나 보다. 나는 그 선과 악의 조화들이 모두 예술의 세상이라고 믿으며 살고 싶었다. 그런 생각들이 낙엽처럼 쌓이는 가을이기에 세상이 유독 아름다운 것 같다.

 

나를 품고 있던 우주에서 내려 이 가을엔 홀가분한 내가 되고 싶다. 내가 품고 있는 모든 예술가들로 이 가을의 축제를 열게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매일 나 홀로 느끼는 삶의 예술이 아닌 것이다. 하늘의 별처럼 많은 예술인들이 어우러지는 우주의 축제를 위해 찾아온 가을과 멋진 겔러리도 열고 연주회도 갖고 싶은 꿈을 꾼다.

 

우주 속의 예술은 느끼는 충동이 다르듯 완벽하지 않은 모습도 창조이다. 선뜻 완벽한 작품이라고 말하기를 나의 삶 안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완성된 예술이라거나 미완성이라고 말하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한 경솔한 일이다.

 

이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이 예술작품이라고 느끼면 된다. 그래서 명작의 정의는 딱 하나라기보다는 한 작품이 갖고 있는 서로 다른 느낌이 그 작품의 존재이며 살아있는 창조성이다. 나의 예술세계에는 명작도 졸작도 보이지 않는다. 살아있는 생명 모두가 훌륭한 작품이다.

 

나의 무의식 속으로 여름이 빠져나간 아쉬움이 큰 까닭에서일까 간절하게 느끼고 싶은 가을이다. 어느 휴일의 오후였다. 나는 완성과 미완성의 우울함으로 물들여진 가을빛 우수를 찾아 집을 나섰다. 길을 걸으니 내 가슴속의 까칠한 숲을 벗어나는 기분이었다. 벌써 가로수 길이 핼쑥하게 눈 안에 들기 시작하는 늦가을이다. 똑같은 계절을 걸어가는 같은 풍경이었지만 오늘 같은 쓸쓸함은 몰랐었다.

 

이것이 가을이 주는 숙제라는 생각으로 어느 작은 이층집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 집도 온 식구들이 부산하게 가을 준비를 하는지 노년의 부부가 여러 점의 작은 그림들과 골동품들을 집 앞 잔디 위에 펼쳐 놓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야드세일을 하는 모습이 가을 전시회처럼 나의 눈 안에 들었다.

 

꼭 우아하게 걸어 들어가는 고궁에서 열리는 전시회가 아니라도 나는 이런 계절의 풍경들을 구경하는 것이 너무 좋다. 이 소박한 그림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오늘의 우주는 내게 아무것도 아닐 것 같았다. 이 계절과 잘 어울릴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으로 두리번거리는 내 옆으로 까만 차 한 대가 멈췄다.

 

차에서 내린 어느 노신사는 짧은 순간에 작은 그림 하나를 집어 들었다. 혹시 나의 취향의 그림인지 확인하려는 순간 그는 이미 그 그림에 홀딱 반해버린 모습을 했다. 그 그림을 보는 신사의 눈빛은 하늘에서 병아리를 보고 수직으로 하강하는 매의 눈빛처럼 날카로웠다. 그림을 들고 아래위 여러 각도의 눈으로 보는 그림에 대하여 집주인의 말로는 자신의 자녀들이 그린 그림이라고 했다.

 

지금은 학업을 위해 멀리 떠나있는 자식들에게 허락을 받고 정리하는 일이라고 했다. 신사가 집은 단순한 정물화 그림 주제가 마음에 드냐고 나는 짧게 물어보았다. 대답을 주기에 앞서 신사는 그 그림을 자신의 사무실 어디쯤 있는 어떤 물건 앞에 놓으면 더욱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으로 사는 거라며 내게 더 큰 상상을 부여했다.

 

노신사의 말에 나는 착잡했던 마음으로 집을 나선 우주의 가을 길에서 또 다른 예술가를 만난 것이 너무 기뻤다. 그림은 그 노신사를 위하여 태어나 그를 기다리며 수많은 세월을 인내했는가 보다. 그 사람의 손에 쥐어진 그림을 보면서 그가 머금은 웃음이 가을 전체를 색칠하고 있었다.

 

그 노신사 변호사를 찾는 의뢰인들은 그의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가을이 더 아름다울 것 같아 온 우주가 축제의 자리이다. 나에게 예술에 대한 강한 의미를 남기고 차에 오른 변호사는 떨어지는 플라타너스 잎을 따라 낭만 속으로 떠났다. 그림을 팔기 위해 내어놓은 사람들의 행복을 싣고 떠나간 변호사와 누군가의 그림은 그렇게 세상 빛을 따라 상상의 윤회를 향해 떠났다.

 

나의 머릿속에서 아직도 남아 있는 복잡한 예술 세상과는 너무도 판이하다. 그들의 작품은 초라하고 우스운 가격인데 그 가치는 내가 지니고 살았던 그림의 개념과 비교가 되지 않게 크다. 언젠가 지인의 집을 방문했을 때 걸어놓은 그림 한 점이 유명화가의 작품이라면서 설명하기조차도 아끼는 한국인의 마음도 어쩌면 예술일지 모른다.

 

그림 가격이 너무 크다며 벌벌 떨며 말을 못 하는 그의 감성도 예술적이다. 그림의 개념이 나와 닮지 않았다고 냉정한 관심을 보이는 사람의 생각도 예술가의 강한 집념으로 보고 싶다. 그런 사람의 일생이 철학적 사상이라는 것을 우주 속 창조라고 여기며 모두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 갔다.

 

나의 어머니가 시집오실 때 가져오신 작품은 나의 작은 공간에서 늘 함께한다. 백 년 전쯤 일인 것 같다. 어머니 16세에 수 놓으셨다는 매화꽃과 참새가 있는 세상, 어머니와 단둘이 나눌 수 있는 그 예술 세상에서 늘 잠을 청한다.

 

1910년대 전봇대가 아직 줄지어 서기 전 시절이었다. 우물가에서 동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때 참새들도 덩달아 재잘대던 세월이었다. 그때 어머님의 손에 의해 태어난 작품이기에 고흐의 작품만큼 어머니의 명작으로 꼽고 싶다.

 

어머님의 품속 몸매 내음까지 느끼게 하는 귀한 작품은 어떤 형태의 음악도 어우러진다. 어머니 뱃속에서 들었던 가을이 오는 소리와 오늘 그 변호사가 가져간 그림과 함께 가을 전시회를 즐긴 가을날이었다.



[문경구]

화가

수필가

코스미안뉴스 칼럼니스트

문경구 kimurgin@hotmail.com


전명희 기자
작성 2021.10.05 11:29 수정 2021.10.05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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