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22일자 미주 뉴욕판 중앙일보 [문화 산책] 칼럼 <‘소수적 감정’은 사소하지 않다> 필자 장소현 시인 극작가는 2020년 2월 미국에서 출간된 캐시 박 홍Cathy Park Hong의 ‘마이너 필링스 Minor Feelings: An Asian American Reckoning’을 이렇게 소개, 특히 재미 교포들에게 추천하고 있다.
한인 2세 작가 캐시 박 홍(45) 시인이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는 반가운 소식 이다. 시인으로서, 아시아계 여성으로서 선정된 것도 큰 의미가 있다.
현재 럿거스대학에서 영문학 교수로 재직하며 시인이자 수필가로 활동하는 캐시 박 홍은 가장 영향력 있는 한국계 미국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최근작이자 자전적 에세이인 ‘마이너 필링스(Minor Feelings)’를 매우 진지하게, 그리고 무거운 마음으로 읽었다. 바로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정체성 인식 등에 관한 이야기라 생각할 점도 많고 울림도 컸다.
이 책은 미국에 살고 있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현실과 문화를 비판하면서, 미국사회의 근본적 문제인 인종주의를 다각적으로 날카롭게 폭로하고 있다. 인종화된 의식은 미국의 밑바탕에 깔린, 가장 어렵고 골치 아픈 문제다.
이 책은 팬데믹으로 아시안 증오범죄가 많아지면서 사회문제로 떠오르는 현실과 맞물리면서 크게 주목을 받았다. 그 덕에 전미 도서비평가협회상 수상, 퓰리처상 파이널리스트, 앤드루 카네기 상 우수상 후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타임스 선정 올해 최고 의 10대 논픽션, 뉴욕공립도서관 올해의 책 등의 영예를 안았다.
이 책은 아시안 아메리칸이어서, 특히 여성이어서 당한 차별의 감정들을 폭넓고 섬세하게 고발한다. 뿐만 아니라 1800년대 미국 대륙횡단 철도 공사 현장의 중국인들과 중국인 배척법, 20세기 초의 이민금지법, 그리고 1965년 개정 이민법 이후 오늘날에 이르는 역사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역사책처럼 딱딱한 서술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비롯하여, 다양한 사례들을 적절하 게 들어가며,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정신적 세계와 사회 구조의 모순을 파헤친다.
4.29 폭동 이야기, 아시안 아메리칸 예술가들의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특히 미술을 공부하다가 시인으로 길을 바꾼 저자의 이야 기, 억울하게 요절한 천재 테레사 차학경 이야기 등은 정체성 문제로 갈등을 겪는 우리 젊은 예술가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책의 제목인 ‘Minor Feelings’는 직역하면 ‘사소한 감정’이겠지만 ‘마이너리티’의 사회적 맥락과 깊게 연결돼 있으니 ‘소수적 감정’ 으로 옮길 수 있겠다고 번역자는 말한다. ‘소수자’로 분리된 사람 들이 안고 사는 불안과 짜증, 수치심과 우울감은, 음악용어를 빌리자면 단조(minor)의 감정이기도 하다.
우리 자신도 실제로 살면서 아프게 느끼는 일이지만 아시아인은 백인도 아니고, 흑인도 아니다. 흑인에게는 불신 당하고, 백인에게 는 무시 당하거나, 아니면 흑인을 억압하는 일에 이용된다. 이 책 에서는 아시안을 ‘갈색인’이라고 표현하는데, 그 느낌이 참 묘하 다.
저자의 목소리를 옮겨보면 바로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을 것 같다. “아시아인은 존재감이 별로 없다. 아시아인은 미안스러운 공간을 차지한다. 우리는 진정한 소수자로 간주될 만한 존재감 조차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백인의 환심을 사도록 양육되고 교육 받았으며, 환심을 사려는 이 욕망이 내 의식 속에 깊이 뿌리 박혀 있었다.” “우리가 목청을 높이지 않으면 우리의 수치심은 억압적인 아시아 문화와 우리가 떠나온 나라에 의해 초래된 것이고 미국은 우리에게 오로지 기회를 주었을 뿐이라는 신화를 영구화하게 된다.”
이 책의 영문판은 2020년 봄에 올해 8월 한국어 번역판이 나왔다. 그런데, 정작 이 책을 꼭 읽어야 할 미주 한인사회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많이 읽고, 함께 생각 했으면 좋겠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
2019년 8월 28일자와 2021년 8월 2일자 코스미안뉴스에 올린 우생의 칼럼 글 둘 옮겨본다.
[항간세설] ‘이름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코스미안’
미국 원주민인 아메리칸 인디언들에 대해 ‘구제할 길 없는 야만인 들’이라고 하는 다른 백인들과 달리 인종청소 대량 학살에서 기적 적으로 살아남은 극소수 인디언 어린이들에 대한 자비심과 동정심 에서 이들을 서구인화 하려고 애썼던 한 백인이 있었다.
남북전쟁에 참전했던 재향군인 리처드 프라트는 펜실베니아주 카라일에 ‘인디언 아이들을 위한 프라트의 카라일 학교’를 설립, 미국 각지의 인디언 부락에서 아이들을 데려다가 입학 시켰다. 이들의 머리를 자르고 서양식 교복을 입혀 세례를 받게 해주었는데 이 가운데 한 아이가 이러한 경험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난 이제 더 이상 인디언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백인의 모조품 같다.”
몇 년 전 미국 병원에서 해산한 처조카 며느리를 다른 가족들과 같이 방문했다. 신생아실에 있는 갓난아기를 유리창으로 들여다 보면서 아이 이름을 지었느냐고 아기 아빠에게 물었더니 그는 대뜸 ‘조지’라고 한다. 아기 이름은 물론 부모나 조부모가 알아서 결정할 일이다. 그리고 현재 미국에 사는 한인동포 자녀들과 한국 아이돌이 서양 이름을 많이 갖고 있는 것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 다.
그런데도 동양인들이 서양 이름을 가지면 어쩐지 타고 난 얼굴 생김새와 이름이 맞지 않아 본인은 물론 주위 사람들에게 어색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것만 같다. 하긴 해외동포 1.5세나 2세 그리고 서양의 세례명을 가진 한국인은 서양 이름 갖는 것을 더 좋아하고 자연스럽게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일제 강점기 때 태어나 강제로 창씨개명까지 해야 했던 세대는 과잉 알레르기 반응일 수 도 있겠지만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은 비근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중국화교출신으로 첫 주중 미국대사를 지낸 게리 로크(64) 씨가 지난 2014년 3월1일 퇴임에 앞서 중국 관영 매체의 원색적인 비난을 받았다. 중국 신문은 ‘잘 가시오, 게리 로크’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그를 ‘썩은 바나나’로 지칭했다. 겉은 노랗고 속이 하얀 바나나는 생김새와 달리 자신을 서양인으로 생각하며 사는 아시아 인을 비하할 때 쓰는 말이다. 이 사설은 ‘바나나는 오랫동안 놔두면 껍질은 썩고 하얀 속살도 까맣게 변한다’며 ‘화교 3세인 로크 대사 가 미국 입장만 대변했다’고 비난했다.
이를 같은 동양인의 입장에서 풀이해보자면 인(仁)과 덕(德)을 으뜸으로 삼는 동양의 왕도(王 道) 대신 인의(仁義)를 경시하고 무력과 금력을 중시하는 서양의 패도(覇道) 패권주의의 앞잡이 광대라고 조롱한 것이다.
최근에는 일본 아베 수상이 자신을 서양식으로 성을 이름 다음에 넣지 말고 일본식으로 앞에 넣어 달라고 세계 매체에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한편 세계적인 음악가로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많이 활약해온 정명화∙정경화∙정명훈 남매들과 방탄소년단 BTS 멤버들처럼 한국 인으로서 한국 이름을 그대로 쓰면 그 얼마나 더 떳떳하고 당당하 며 자연스럽지 않나. 사람은 누구나 자중자애(自重自愛)할 때에라 야 비로소 남도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으며 존경도 받을 수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람답게 자기 자신을 제대로 지킬 때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원숭이처럼 남의 흉내나 내지 말아야 한다. 자기 고유의 개성과 인격을 버리고 나면 그런 나라나 민족 또는 개인에게는 참다운 ‘외교’나 정정당당하고 대등한 대외관계를 맺을 주권이 없는 셈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남한에 살고 있든 북한에 살고 있든, 아니면 해외 미국 등지에 살고 있든 누구나 다 크게 반성 자각해야 할 것 같다.
더욱이 종교와 신앙에서 ‘강자’에게 붙어 사리사욕을 채우는 기회주의자나 사기꾼이 ‘약자’의 피와 땀과 눈물까지 더 이상 알겨먹지 못하도록 수많은 ‘골빈당’들이 하루 속히 한시 바삐 대오각성(大悟覺醒) ‘골찬당’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러면 무엇보다 먼저 종교와 신앙을 빌미잡아 ‘천당에 보내준다’는 감언이설이나 ‘’지옥 간다’는 공갈 협박으로 ‘세례’ 준다며 세뇌 공작하는 악덕 장사치, 현대판 ‘서양 무당’들이 걸어 논 최면상태 에서 어서 깨어나고 벗어나야 하리라.
아, 그래서 인도의 성자 마하트마 간디가 예수는 좋아하면서도
‘크리스챤’들을 싫어했고 레바논 출신 철인 칼릴 지브란이 예수는 존경하면서도 교회나 성당 그리고 ‘성직자’들을 경멸하다 못해 혐오했으리라.
프랑스 작가 빅토를 위고의 말을 우리 깊이 음미해보자.
“우주를 한 사람으로 축소하고 그 사람을 신神으로 확대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사랑이다. The reduction of the universe to a single being, the expansion of a single being even to God,
This is love.”
옛 페르시아 동화가 생각난다. 곱사등이 꼽추로 태어난 공주가 매일 등이 똑바르게 펴진 자신의 동상 앞에 서서 허리를 꼿꼿하게 펴다 보니 동상처럼 똑바로 서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 태몽을 꾸고 태교를 한다. 그리고 태어나서 이름을 짓는다. 이름은 그 사람의 존재의 표현이다. 그러 므로 자신의 존재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해바라기처럼 평생 해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코스미안이다.
[이태상 칼럼]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 The Easiest Thing You Do’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그냥 너가 되는 거다. 사업을 하는데도 내가 나답게 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독창성과 남과 다른 독특성 말이다. 나는 나로서 내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The easiest thing you can do is just do you. I felt like doing me would be the easiest path to me remaining relevant in the industry. It’s originality and uniqueness. I just try to do me.”
2021년 8월 1일자 뉴욕타임스 비즈니스 섹션 코너 오피스 Corner Office 인터뷰 기사에서 미국의 래퍼 겸 스트리머요 배우로서 버락 오바마와 대마초도 한 대 피웠었다는 스눕 독 Snoop Dogg (본명은 Calvin Cordozar Broadus Jr.)이 지난 30년 가까이 여러 가지 사업 에서도 계속 크게 성공하고 있는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가 대답한 말이다.
이 말은 그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만인에게 너무도 자연스럽게 적용 될 수 있으리라. 우리식으로 다시 표현하자면 ‘억지 춘향이 노릇 하지 말고 각자는 각자 대로 사는 일이 가장 쉽고도 성공적일 수 있다는 거다.
2021년 7월 31일자 중앙일보 기획기사 ‘조영남이 남기고 싶은 이야기 (22) ‘보고 싶은 사람’에서 조영남은 이렇게 적고 있다.
“왜 내가 그 당시 그토록 함석헌 선생을 마지막 보고 싶은 사람으로 결정했는가. 그때 나는 공부를 한답시고 기고만장한 나머지 ‘예수 샅바를 잡다’라는 책을 쓸 땐데 내 생각에 한국 근대사에 나보다 먼저 예수한테 씨름 한판 걸어 끝낸 것처럼 보인 사람이 바로 함석헌 선생이셨다. 더불어 내가 함석헌 선생한테 홀딱 반한 건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내가 함 선생을 롤모델로 좋아한 첫째 이유는 ‘씨알’이라는 낱말을 고이 간직해서 우리에게 남기신 업적(함 선생 이 사용한 ‘’씨알’의 의미는 단순한 종자나 열매가 아니다. 심오한 뜻이 있다.) 선생의 종교관, 기독교이면서 무교회주의를 꺼내셨던 바다처럼 넓은, 말 그대로 ‘씨알’ 같은 맘씨….”
우리말에 ‘배알이 꼴린다’는 표현이 있다. 아니꼬워서 견딜 수 없다 는 뜻으로 말이다. 하지만 꼴릴 배알이라도 좀 남아 있는 편이 낫지 않을까.
또 우리말에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은 안 한다’느니 ‘양반은 얼어 죽어도 짚불은 안 쬔다’지만 ‘개살구도 맛들 일 탓’이라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우리 뱃속 정신부터 차려야 하지 않을까.
근년에 와서 서구적 ‘인권사상’이 종교처럼 세계 각처에 파급되고 있지만 아시아, 아프리카, 호주와 뉴질랜드, 남북 아메리카에 살고 있는 유색인종들에게는 빛 좋은 개살구 격이다. 서양 사회에선 소위 동물애호가들이 동물들의 권리를 인간의 권리보다 더 중요시하기 도 하지만 동물 내지 식물의 권리는 제쳐놓고 인간의 생존과 복리를 위해서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도모하는 것이 급선무이겠으나 공리공론空理空論의 이념적 정치적 법적 자유나 평등은 실질적 경제적 일상적 자유와 평등 없이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에 지나지 않는다.
백인들은 수족관 속의 금붕어처럼 공중누각에 높이 앉아 세계를 좌지우지左之右之하는데 유색인들은 흙탕물 속 미꾸라지같이 살고 있다. 이들은 ‘운명의 포로’가 된 채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업業’으로 전생에 진 빚을 이승에서 갚는다 고 모든 것을 팔자 소관八字所關’으로 돌리고 만다.
물론 이러한 만병통치 萬病通治식 신앙과 체념 때문에 수많은 인간 들이 고해苦海와 같다고 비유되는 고달픈 삶을 참고 견디어 왔는지 몰라도 이들이 이처럼 숙명론적 사고방식과 정신적인 노예근성에 서 에서 벗어나기 전에는 인권다운 인권을 말할 자격조차 없을 것 이다. 정신적으로 무지몽매한 사람들을 기독교나 공산주의 또는 자본주의 사상으로 세뇌시킨다고 이들에게 인간다운 인격이 부여 되는 것은 아니다.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최근 100여 년 역사만 돌이켜 보더라도 한 민족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인권과 자유를 침해당해왔다. 청일전쟁과 노일전쟁에 이어 1910년에 이루어진 한일합방이 그 한 예라면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소련에 의한 우리나라 국토의 분단이 또 한 예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두 동강 난 우리 민족의 비극은 어쩌면 필연적으로 미-소 양 진영 사이에 뜨겁게 끓어 오른 냉전冷戰의 열기 속에서 그 더욱 참혹한 비극인 동족상잔同族相殘의 한국전을 불러 일으켰고, 1953년 휴전 이 되었으나 긴장이 완화되지 않은 채 우리의 분단체제는 강대국들 의 국익을 위해 굳어져 왔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일본의 압제에 시달리다 일본의 패전으로 ‘해방’을 맞았으나 이것은 우리의 진정한 해방이 될 수 없었다. 우리 힘으로 쟁취한 해방이 아니고 승전국인 미-소에 의존한 것이었던 만큼 이 두 새 지배세력 영향권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개인이나 국가, 혹은 민족 간에 각자 제힘을 길러 자존自存/自尊 자립自立할 때 참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으리라.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무엇보다도 먼저 종교, 문화,.예술 에서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사대주의事大主義의 뿌리를 뽑아버리 고 각자대로 제 줏대와 배짱부터 키울 일이다.
삶의 지혜라는 것 중에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것도 있지만 이런 처세술을 따르다 보면 자기 고유의 인격과 개성 및 정체성은 물론 자신의 존재 이유조차 상실하고 제 삶다운 삶이 실종되지 않던가.
한국인의 경우 그 대표적인 것이 사대주의라 할 수 있으리라. 역사 적 으로 보면 지정학상 절대적인 필요성에서 우리의 생존수단과 방식이 되어 왔겠지만, 이는 동시에 우리의 자존자립을 저해해 오지 않았나.
몇 년 전 (2015년 3월 16일자 미주판 한국일보 오피니언 페이지 칼럼에서) 전직 언론인 이광영 씨는 이렇게 일갈(一喝)한다.
“크고 힘센 나라를 섬기며 주체성 없이 그들에 기대어 존립을 유지 하려는 생각이나 주장을 사대주의라 한다. 자신의 존엄을 부정하고 스스로 비하하거나 얕잡아 보며 자기 힘을 믿지 않고 남에게 의존하 며 위협이나 압력에 쉽게 굴복한다. 자신의 정당한 권리나 이익을 주장하지 못하며 제물로 바치는 자기부정, 자기 비하의 노예근성이 라 하겠다. 이런 사람일수록 누가 뭐라고 하면 우르르 따라가는 유행에 휩쓸린다. 요즘의 한국사회가 이런 문화 사대주의에 찌들어 있다.”
이를 한 마디로 내가 줄이자면 ‘골빈당’ 노릇 그만하고 ‘골찬당’이 되자는 말이리라. 이게 어디 한국인뿐이랴. 이른바 ‘선진국’이라는 미국과 유럽사회에서도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보건 등 각 분야에서 골찬당을 찾아보기 힘들고, 민주주의가 아닌 우중주의(愚衆主義)가 판치고 있는 현실이다.
선거란 것도 이익집단의 정치헌금 기부금으로 치러지는 돈놀음이 고, 경제란 것도 1%의 ‘있는 자들을 위해 99%의 없는 자’들을 제물 로 삼는 축제다. 문화란 것도 포르노 등 퇴폐적인 서커스고, 종교란 것도 신(神)과 천국을 팔아먹는 사기 사업이다. 보건이란 것도 인명 을 살상하는 총기와 독약 같은 술, 담배 그리고 거의 무익한 영양보 조제며 마약의 일종인 마리화나까지 기호용으로 합법화시켜 병 주고 약 주는 반인륜적 거대음모라 할 수 있지 않나. 지구 생태계를 파괴해 인류의 자멸을 재촉하는 공해산업은 거론할 것도 없이 말 이다.
우리가 공중에 날리는 연(鳶)을 생각해보자. 바람을 탈 때가 아니고 거스를 때 가장 높이 오르지 않는가. 별들도 하늘이 깜깜할수록 더욱 빛나고 산 물고기는 떠내려가지 않고 물결을 거슬러 헤엄치며 생명 있는 식물은 굳은 땅을 뚫고 올라와 푸른 잎과 아름다운 꽃을 피워 맛있는 열매를 맺지 않는가. 이것이 자연의 순리이고, 결코 ‘좋은 게 좋은 게’ 아니리라.
내일 모래면 8·15 광복 76주년을 맞게 되는데 얼마 전 교육부가 ‘이달의 스승’ 12명 가운데 8명에 대해 친일 행적 의혹이 제기되면 서 모일간지에 ‘교육부가 제정신인가’란 사설까지 등장했었다.
우리 냉정히 생각 좀 해보자. 한반도의 지정학상 역사적으로 우리는 항상 생존수단으로 친 강대국을 강요당해 왔다. 친중이든 친러든 친일이든 친미든 따질 것도 없이, 지금도 마찬가지 아닌가. 이것이 약소민족의 비애가 아니던가. 그렇지 않았더라면 벌써 씨가 거의 다 말라버렸을 것이다. 반항하는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인디언들 같이 말이다.
그나마 아프리카 대륙의 흑인들은 반항하지 않고 노예로 순종, 복종 하다 보니 그 후예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까지 되었으며 지난해 미국 대선 민주당 조 바이든 러닝메이트 부통령 후보로 자메이카 이민자 출신 아버지와 인도인 어머니 사이에서 난 카말라 해리스 초선 상원 의원이 선택되지 않았는가.
트루먼 전기를 읽어보니 2차대전 당시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히로 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기로 결정하기까지 아주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결국 원폭 투하 결정을 하게 된 것이 그에게 올라온 전략보고서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인들은 절대로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이라 는 결론이었다. 그러니 미군이 일본에 상륙해 일본 국민을 한 사람 도 남김없이 전멸시키는 수밖에 없는데 그러자면 미군의 인명 피해 도 수십만 명 이상이 될 것이라고 했다.
우리 8·15 광복 직후로 돌아가 보자.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이념논쟁에 휩쓸려 좌익이다 우익이다 하면서 서로 죽이고 죽다 가 6.25 동족상잔까지 겪고도 아직까지 친미다 친중이다 하면서 편을 갈라 ‘원수’로 대치하고 있지 않는가.
굳이 친할 친(親) 어버이 친(親) 자(字)를 꼭 써야 한다면 친일파 (親日派 )만 쓸 게 아니라 친월파(親月派) 친성파(親星派) 친우파 (親宇派)도 즐겨 쓰는 친인파(親人派) 친지파(親地派) 친천파(親天派)가 되어볼거나
이것이 현재 전 세계 온 인류가 직면한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과 홍수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을 극복하고 우주 만물의 상생과 공존을 도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리라.
물론 김일성의 ‘주체사상’은 빛 좋은 개살구라고 내용이 없는 그 껍데기 이름뿐이겠지만 그 단어 하나만큼은 탓할 데 없는, 남한 북한, 인종과 국적 가릴 것 없이 우리 모두 우주 나그네 우주인 코스미안으로서 우리가 깨달아 가져야 할 우리 줏대, 우리 모두의 진정한 자의식과 주체성을 상징하는 진주같이 빛나고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단어임이 틀림없어라.
자고로 ‘도(道)’라 하는 것은 도가 아니고 ‘진리’라 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고 하듯이 우리의 어떤 생각이나 사랑도 자유롭고 자연스럽 게 부는 바람처럼 새장 같은 틀에 가둘 수 없으며 길 없는 길이 길이 라면 각자 자신의 숨을 쉬듯 자신의 길을 찾아가야 하리라.
그러니 우린 국가와 민족, 인종과 성별, 종교와 이념, 직업과 계층, 또는 학벌이나 지방색, 심지어는 가족이라는 인연의 사슬까지도 끊어버리고 말이어라.
아, 그래서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 대종사는 “모든 사람에게 천만 가지 경전을 다 가르쳐 주고 천만 가지 선(善)을 다 장려하는 것이 급한 일이 아니라, 먼저 생멸 없는 진리와 인과응보의 진리를 믿고 깨닫게 하여 주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이라고 했으리라.
이 ‘생멸 없는 진리’와 ‘인과응보의 진리’를 내가 한 마디로 풀이해 보자면 ‘우리는 하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너를 위하면 곧 나를 위하는 게 되고, 내가 너를 다치게 하면 곧 내가 다친다는 진실 말이다.
호기심에 가득 찬 아이들은 말끝마다 “왜?”라고 묻는다. “네가 좋아야 나도 좋으니까” 이것이 정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어른들도 아이들처럼 “왜?”라고 묻고, 전쟁과 파괴의 카오스를 초래하는 대신 사랑과 평화의 코스모스를 창조해가면서 밝고 아름다운 우리 코스미안의 역사를 써보리라.
유심정토唯心淨土는 속 맘 마음씨 마음 자리에 있으려니 애오라지 모두 코스미안으로서 우리 배달겨레의 배알부터 추스르고 볼 일이 어라.
이럴 때 비로소 우리 모두 국적과 인종, 이념과 사상, 학식유무, 재산 유무, 남녀성별을 초월해서 온전穩全한 온 우주의 축약縮約 조약
造約 된 ‘조약돌’ 별 코스미안으로서 ‘마이너Minor’의 열등감도 ‘메이저Major’의 우월감도 아닌 각자 대로 유일무이唯一無二한 개성과 특성의 자존감 自尊/自存感과 자족감自足感을 느낄 수 있게 되리라.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