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은 내게 "인생이란 이 세상으로 소풍을 왔다가 다시 다음 세상으로 가기 위해 잠시 쉬었다 가는 곳이다. 모든 괴로움도 잠시 왔다가 지나가는 법이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모두의 삶을 하나로 묶어 표현한 가장 절도 있고 아름다운 철학이 담긴 말이라고 깊은 생각을 했다.
인생이라는 역사를 모두 마치고 다음 세상으로 가야 하는 과정을 간략하면서 깊은 의미를 담아낸 인생 여정의 표현이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 말은 더욱 아름답게 내게 다가왔다. 어린 시절 동무들과 소풍 가던 세상이 내게 있었기 때문이다. 코를 닦는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자하문 밖으로 소풍 가던 추억은 얼마나 아름다운 동심이었던가.
곰곰이 생각하면 인생은 정말 어디론가 여행을 하는 것이다. 동무들과 니꾸사꾸를 등에 메고 소풍을 가던 어린 시절은 어쩌면 나에게는 보석처럼 귀한 시절이다. 인생이라는 무대에 배경으로 펼쳐진 “동무와 소풍”은 세월이 흐르면서 소풍이란 말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동무란 말도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동무란 말은 북한 사상과 밀접하다고 해서 우리는 동무 대신 친구로 쓰고 있는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해도 동무들과 소풍을 간다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 생의 한 페이지이었던가. 동무라는 말이 없는 세상에는 소풍도 거기서 끝이 나 버렸다. 나는 또 다른 세상으로 소풍을 가기 위해 기차에 몸을 싣고 떠나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를 살고 어디로 가는 기차가 멈춘 그 역에서 내려 걸어 나오는 곳이 바로 내가 가고 싶은 여행의 목적지이다.
더 이상 앞으로 갈 수 없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 곳이 여행의 목적지가 끝나는 곳이다. 기차가 멈춰 선 부산스런 정거장에서 새로운 운명의 사람들이 우르르 올라타고 그다음 알 수 없는 역에서 성급히 내리는 짧은 여행을 마치는 사람도 있다. 어느 역에서인가 첫서리가 서둘러 내린다는 소문을 들리고 그 소문 어디쯤에 있는 가을역에서 어머니는 나를 기차 안에 남겨 두고 내리셨다.
함께 동행하던 형제들도 어머니 품속에 있을 때 형제이다. 남의 식구가 들러붙으면 타고 가다 말고 서로 각자의 선택지를 찾아내려야 한다. 도끼에 벌을 달아가며 살 것처럼 기고만장했어도 끝내는 기억에서 꼭 지워내고 싶은 운명의 역에서 내린다. 기차를 타고 세상 끝까지 갈 것 같던 형제들도 다음역 그리고 그 다음역에서 모두 내렸다. 그들이 역을 빠져나가는 마지막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아직 여행하고 있다.
기차는 나를 싣고 그들이 느끼지 못했던 여행의 황홀함과 허무함으로 달려간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그 누구도 만나볼 수 없는 세상이기에 허무하다. 내가 가끔 찾아뵙는 95세의 친구 어머니는 아직도 당신의 열차에 오르지 못하고 계신다. 휑한 기차역 대합실에 놓인 빛바랜 벤치에 웅크리고 앉아 계신다.
나는 언제쯤 그분이 타고 떠나실 기차가 도착하는지 늘 궁금하다. 그렇게 생은 일찍이 기차에 오른 사람뿐 아니라 늦게까지 타지 못한 사람도 태우고 떠난다. 학창시절 청량리역에서 떠나는 즐거운 여행의 설레이는 마음도 잠시일 뿐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안달하며 기다리던 시간처럼 인생이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여행길이 아니다. 한번 기차에 오르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여행길은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슬픔이다.
다음역에서 사람들이 줄지어 기차에 오르고 또 다시 그들에게 정해진 알 수 없는 역에서 그렇게 내린다. 어떤 사람은 묵묵히 창밖의 계절을 지켜보다가 시인 같은 얼굴을 하며 다음역에서 내릴 준비를 하는 것 같다. 그 시인은 손에 든 한 권의 시집에 자신의 철학을 그대로 새겨두고 내려야 한다. 역에서 내려서 무심히 떠나가는 기차 뒤로 시인의 뒷모습만 바라볼 수 있다.
시인이 두고 내린 소설 같았던 인생의 짐 보따리도 그 어떤 번뇌의 보따리도 모두 기차에 남겨졌다. 가벼운 몸 하나만 허용되는 것을 두고 그래서 시인도 나도 모두가 빈손으로 떠난다는 말을 의미하는가 보다. 기차 유리창을 부서져라 때리던 시련의 시간을 빠져나와 다시 멈춰진 역에서 또 다른 모습의 사람들이 그들의 정해진 시간에 따라 내린다.
그들이 평생 어깨에 지녔던 계급장만큼 자랑스럽게 여기던 정치인도 그 무거웠던 권력의 힘을
내려놓고 수행원 하나 없이 쓸쓸히 내려야 한다. 아무리 많았던 수행원도 그를 따라 기차에서 내릴 수가 없다. 여름날 비가 멈춰지면 창포물 빛깔을 적삼에 물들이듯 먼 산을 그렇게 녹음으로 차츰차츰 물들이던 젊은 날의 역을 지나 낙엽이 뒹구는 쓸쓸한 역에서 내려야 한다.
또 다른 운명이라는 사람들을 내려놓고 기차는 또 그렇게 떠나야 한다. 잠시 멈춰 쉬어 갈 줄도 한번 뒤돌아볼 줄도 모르는 세상 길을 간다. 밤새 내린 눈으로 지은 솜옷을 입고 내리는 사람들은 눈길에 남겨진 발자욱을 따라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러하기에 비우고 살라는 말에 익숙해진 사람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은 이별인가보다.
한 세상 신파극 같던 인생을 모두 기차에 놓고 내린다. 언제 어느 역에서 내리는가를 몰라 아무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몸으로 내려야 하는 것이 애달프기만 하다. 달리는 기차 속 세상도 원하는 데로 이루며 사는 것이 없다. 내가 내리고 싶은 아름다운 역에서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모두가 허망한 몸짓들로 기차에 올랐다가 내릴때에도 허무뿐인 역에서 내릴 수밖에 없다.
단 한 가지 허락되기를 바라는 바람이 있다면 나는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이 내린 그 다음역에서 내리고 싶다. 그들과의 이별의 뒷정리를 깔끔하게 해 주고 난 다음역에서 내리고 싶다. 내가 먼저 내린 기차 안을 바라볼 사람의 슬픔을 상상하기가 싫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기차라고 하니 그 바람이라도 들고 기차에 올라야 하는 게 아닌가 말이다.
기차는 평행선에 놓인 운명의 레일 위를 간다. 그래서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승객들의 운명을 이끌고 가기에 아무도 마중을 나올 수 없는 숙명으로 어디론가 떠난다. 사람들은 언제 어느 역에서 내리는 여행의 끝이 될 줄 모른다. 운명이라는 기차는 더더욱 모른다.
[문경구]
화가
수필가
코스미안뉴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