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는 사라졌다. 아빠만 남았다. 권위 있던 아버지는 사라지고 다정하고 친구 같은 아빠만 남아 가족의 서열에서 자식들 밑으로 밀려났다. 그렇다는 이야기다. 좋고 나쁘고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상이 바뀌었으니, 아버지의 존재도 바뀌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말 한마디 건넬 수 없었던 침묵의 아버지가 때론 그리워진다. 세상의 짐을 혼자 지고 걸어갔던 그 아버지는 기억 속 풍경이 되어 버렸다. 농경의 시간 끄트머리에 있던 아버지는 한 가정의 권위자이면서 막강한 책임을 진 가장이었다가 산업의 시간이 시작되자 점차 작아지고 말았다.
진보된 세상의 아버지를 생각해 본다, 속도와 성장, 그리고 정보가 인간의 모든 가치를 대체하는 지금 아버지는 문학 작품 속에 박제되어 우리의 눈앞에서 잊혀 가는 압축된 이미지다. 그래, 아무렴 어떠냐, 아버지가 아빠가 되어도 그 담대한 남자는 늘 우릴 위해 산다. 가족을 지키는 울타리면 충분하다. 정리해고를 당해도 아버지고 사업을 말아먹어도 아버지다. 엄마에게 구박받아도 아버지고 자식에게 핀잔을 들어도 아버지다. 그런 아버지를 추억하는 김상훈 시인의 ‘아버지의 창 앞에서’를 읽으며 암울했던 시절의 아버지를 떠올려 본다.
등짐지기 삼십리길 기어 넘어
가쁜 숨결로 두드린 아버지의 창 앞에
무서운 글자 있어 '공산주의자는 들지 말라'
아아 천날을 두고 불러왔거니 떨리는 손 문고리 잡은 채
물끄러미 내 또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고
태어날 적부터 도적의 영토에서 독스런 우로에 자라
가난해두 조선이 남긴 살림, 하구 싶든 사랑을
먹으면 화를 입는 저주받은 과실인듯이
진흙 불길한 땅에 울며 파묻어 버리고
내 옹졸하고 마음 약한 식민지의 아들
천근 무거운 압력에 죽음이 부러우며 살아왔거니
이제 새로운 하늘 아래 일어서고파 용솟음치는 마음
무슨 야속한 손이 불길에 다시금 물을 붓는가
징용살이 봇짐에 울며 늘어지든 어머니
형무소 창구멍에서 억지로 웃어보이던 아버지
머리 쓰다듬어 착한 사람 되라고
옛글에 일월같이 뚜렷한 성현의 무리 되라고
삼신판에 물 떠놓고 빌고, 말 배울 적부터 정전법을 조술하드니
이젠 가야할 길 미더운 깃발 아래 발을 맞추려거니
어이 역사가 역류하고 모든 습속이 부패하는 지점에서
지주의 맏아들로 죄스럽게 늙어야 옳다 하시는고
아아 해방된 다음날 사람마다 잊은 것을 찾어 가슴에 품거니
무엇이 가로 막어 내겐 나라를 찾던 날 어버이를 잃게 하느냐
형틀과 종문서 지니고, 양반을 팔아 송아지를 사든 버릇
소작료 다툼에 마음마다 곡성이 늘어가던
낡고 불순한 생활 헌신짝처럼 벗어버리고
저기 붉은 기폭 나부끼는 곳, 아들 아버지 손길 맞잡고
이 아침에 새로야 떠나지는 못하려는가······
아아 빛도 어둠이련듯 혼자 넘는 고개
스물일곱 해 자란 터에 내 눈물도 남기지 않으리
벗아! 물끓듯 이는 민중의 함성을 전하라
내 잠깐 악몽을 물리치고 한거름에 달려가마
이 시를 감히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아버지의 삶을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막 먹먹해 오는데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한 남자의 고통과 비애를 무슨 수로 이해한단 말인가. ‘아버지의 창 앞에서’ 나는 우리 아버지를 생각했다. 아버지의 이름을 묻고 가족을 묻고 그 아버지의 조국을 물었다. 아버지를 아빠라고 불러드리고 싶었다. 무거운 짐을 좀 내려놓고 아빠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형무소 창구멍에서 억지로 웃어 보이던 아버지들은 사라졌지만, 그 아버지들 덕분에 우린 먹고살 만한 세상을 만났다.
‘아버지의 창 앞에서’를 쓴 김상훈 시인도 우리들의 아버지처럼 어려운 가시밭길을 걸어왔다.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어릴 때 서당에서 공부하다가 연희전문에서 신식교육을 받고 징용에 끌려갔다. 원산 철공장에서 일 년 반을 선반공으로 일하다가 항일투쟁에 가담도 했다. 해방이 되면서 ‘민중조선’ 편집일을 하면서 시집 ‘대열’과 서사시 ‘가족’을 발간하며 문인의 길을 걸었다. ‘아버지의 창 앞에서’는 김상훈 시인의 아버지가 곧 김상훈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모든 식민의 아버지들이 형무소 창구멍에서 억지로 웃어 보이며 말한다.
벗아! 물 끓듯 이는 민중의 함성을 전하라
내 잠깐 악몽을 물리치고 한걸음에 달려가마
[이순영]
수필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