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진형 칼럼] 단감 따는 날

하진형


기온이 뚝 떨어진 토요일 이른 아침, 전화기 속에서 튀어나온 목소리가 급하다. “날이 갑자기 추워져서 큰일이다. 냉해를 입기 전에 감을 따야겠다. 좀 도와주소.”

 

어시장에서 수산물 중매인을 하면서 감나무 과수원까지 가꾸고 있는 웅이 형은 가까운 사람들이 많다. 사람 좋은 그의 심성 덕분에 형의 농막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단감을 수확할 무렵이면 돈을 주고 모셔오는 일꾼보다 자원봉사일꾼들이 더 많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오렌지색 자루를 X자로 메고 비탈진 과수원을 누빈다. 크고 잘 익은 녀석들만 솎아서 따야 한다. 똑같은 나무에서 자란 단감인데도 잘 익어서 먼저 선택받는 놈이 있는가 하면 난 언제지?’하며 기다리는 녀석도 있다.

 

하긴 선택받는 순간이 어디 지금뿐이겠는가? 어릴 적 감꽃일 때도 한차례 선택을 받았었다. 꽃이 너무 많을 경우엔 감이 너무 많이 달려서 크기가 작아지기 때문에 일부는 애초에 선택되어 떨어진다. 인생도 선택의 연속이지만 이런 것을 보면 먼저 선택되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리고 단감이지만 내내 달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릴 땐 떫다. 사람들도 젊을 땐 철없고 서툰 것이나 마찬가지 이치다. 그리고 때를 맞춰서 농약도 뿌려줘야 하고 오늘처럼 냉해를 당하기 전에 때맞춰 수확도 해야 한다.

 

, 가만히 살펴보면 상처 입은 감은 빨리 익는다. 자신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 애쓴 흔적이 그렇게 나타난다. 그런가 하면 나뭇가지 끝에 주렁주렁 매달린 감을 따고 나면 늙은 나무가 가지를 들어 올리는데 허리를 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마치 우리들이 좀 자랐다고 독립하려 할 때 부모님의 늙은 허리와 비슷한데 끝까지 허리를 펴지 못한 모습까지 비슷하다.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가슴속이 짠해져 온다.

 

감이 많이 달린 건 작고 개수가 적은 것은 크다. 자연의 섭리다. 또 약간 뒤늦은(푸른) 건 기다려 줘야 한다. 조금 늦다 해서 실패는 아니다. 생각해 보면 먼저 이루었다고 으스댈 일도, 늦게 자란다고 조급해할 일도 아닌것이다. 단감이 익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아이들이 크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우리 부모님들은 자식들을 키우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렸을까. 부모님들의 희로애락(喜怒哀樂)에 얼마나 많은 기다림의 시간이 스며있을까.

 

길게 이어진 시간들의 구분이 명확한 것보다 여러 사연을 품은 것처럼 자연스런 것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곳곳에 까치의 흔적이 많다. 까치밥 곁에 매달린 홍시를 먹으면서 '나와 까치가 뭐가 다를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어느 위인이 설파한 것처럼 사람에게 사단(四端)이라는 것이 없다면 홍시를 쪼아 먹는 까치와 배추잎을 잘 먹는 토끼와 비교하여 나의 본질이 다른 것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너는 얼마나 시비를 잘 가리고 염치를 알며 어려운 사람을 돕고 양보를 잘하느냐?’라고 나에게 물으니 자신 없다는 듯 머리가 흔들어진다.

 

그래, 오늘은 그냥 단감이나 부지런히 따자. 저만큼씩 거리를 두고 감을 따는 아낙들의 수런거림, 그리고 나이 든 일꾼의 허리 펴는 소리, 단감을 키우다가 꺾인 나뭇가지가 평화롭다. 그 사이를 뛰어다니는 강아지가 즐거워하고 이웃에 핀 구절초며 벌개미취도 가을 햇볕을 바라보며 마지막 일광욕을 즐긴다. 이처럼 우리에게 어디든 이웃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외롭지 않다. 그래서 냉해를 입힐 위험이 있어도 조금은 풍성한 가을이 좋은 것이다.

 

풍성한 이 가을에 다짐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서로에게 계산하며 살지 말자. 웅이 형의 농막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자원봉사 일꾼이 많은 것은 웅이 형이 찾아오는 이들에게 계산 없이 끼니 때가 되면 꼭 밥을 먹여 보내는 것 때문이 아닐까. 다음 주말엔 단감이 오늘보다 더 크고 잘 익어 있을 것이다. 수확의 계절인 오늘도 방에서 책 몇 줄 읽는 것보다 더 큰 것을 얻었다.

 

 


[하진형]

수필가

칼럼니스트

행정안전부 등록 범죄안전 강사

이순신 인문학포럼 대표(이순신 국제센터)

3회 코스미안상 금상

bluepol77@naver.com

전명희 기자
작성 2021.10.29 08:15 수정 2021.10.29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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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