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기자: 전명희 [기자에게 문의하기] /
2021년 10월 26일자 미주판 한국일보 오피니언 칼럼 'GPS, 아인슈타인, 그리고 블루 오션' 필자 민경훈 논설위원은 아인슈타인 '상대성 원리'가 우리 일상 생활에 직접적으로 미치고 있는 영향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21세기를 사는 현대인에게 필수품이 된 물건 하나를 들라면 GPS를 빼놓을 수 없다. 요즘 웬만한 차에는 내비게이션이 장착돼 있고 차에 없더라도 스마트폰에는 구글 맵 등 GPS 장치가 들어 있다.
어떻게 우리는 이 편리한 도구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일까. GPS는 원래 미 국방부가 군사 목적으로 개발한 것이다. 1973년 국방부는 인공위성이 보내는 신호를 감지해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프로젝트 개발을 시작했고 1978년 이 목적으로 첫 인공위성이 발사됐으며 1993년 24개의 인공위성으로 이뤄진 GPS 체제가 완성됐다.
처음에는 군 전유물이던 GPS가 일반에게도 개방된 것은 1983년 일어난 KAL기 격추 사건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대한항공 007기가 소련 상공에서 경로 이탈 후 계속 비행하다 격추된 이 사건은 항공기 정확한 위치 파악의 중요성을 일깨워줬고 당시 레이건 대통령이 행정 명령에 서명함으로써 GPS의 민간 사용이 가능해졌다. 그럼에도 GPS의 소유와 운영은 국방부가 맡고 있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서는 언제든 제한이 가능하다. 보통 GPS는 16 피트 정도 정확도를 보이지만 L5란 특수 밴드를 사용하면 1피트 안쪽도 가능하다.
미국 이외에 다른 주요국들은 독자적인 GPS 망을 갖추고 있다. 러시아의 GLONASS, 유럽 갈릴레오, 중국 바이두, 인도 NavIC, 일본 QZSS 등등이 그것이다. 이들 6개 개체가 모두 독자적인 로켓 발사가 가능한 우주 산업 강국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GPS를 사용할 때 잊지 말아야 할 사람이 하나 있다. 바로 아인슈타인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과학자인 그의 업적은 많지만 그 대표적인 것은 ‘상대성 원리’다. ‘상대성 원리’에는 ‘특수’와 ‘일반’이 있는데 ‘특수’는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관찰자와 관측체 사이의 관계, ‘일반’은 가속적으로 변화하는 관찰자와 관측체 사이의 관계에 관한 이론이다.
아인슈타인 이전에는 물체의 크기와 무게, 시간과 공간의 속도와 형태는 일정하며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며 관찰자와 관측체의 위치 변화에 따라 모든 것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아인슈타인은 알아냈다. 언뜻 상식에 어긋나는듯한 이 주장은 그 후 무수한 실험에 의해 입증됐으며 이제 이를 의심하는 물리학자는 없다.
‘특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관찰자에 대해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인공위성내의 시간은 정지된 관찰자의 시간에 비해 천천히 흐른다. 반면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지구 중력의 영향을 관찰자보다 덜 받는 궤도를 도는 인공 위성내 시간은 관찰자보다 빠르게 흐른다. 정확히는 인공위성내 시간은 ‘특수 상대성 이론’ 효과 때문에 하루 7 마이크로초(100만분의 1초) 느리게 가고 ‘일반 상대성 이론’ 효과 때문에 하루 45 마이크로초 빠르게 간다.
GPS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20나노초(10억분의 1초) 이상 오차가 나서는 안된다. 이를 방치하면 하루 6마일 이상 오차가 발생해 GPS는 무용지물이 된다. 따라서 GPS 위성의 시계는 38마이크로초(45-7) 늦게 가게 설계돼 있다. 우리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로 생각했던 ‘상대성 이론’이 이처럼 일상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자율 주행차와 드론 택시가 미래의 교통 수단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GPS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중국 최대 민영 자동차 회사인 지리 자동차는 지난 달 독자 제작한 항법 위성 시제품을 공개했다. 이 위성은 자율 주행차 성능을 개선할 GPS 위성으로 쓰이게 되는데 이 회사 혼자 2025년까지 연 500개의 위성을 띄울 예정이다. 이들은 대부분 1,000km이하의 저궤도 위성으로 2만km 상공을 나는 미국 GPS 위성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들면서도 정확도는 높다. 일본의 혼다 자동차도 2030년까지 자율 주행차를 위해 독자적인 GPS 인공 위성을 띄울 계획이다.
요즘 세계 1위의 억만장자가 된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는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버진 애틀랜틱의 리처드 브랜슨 등이 모두 우주 산업에 뛰어들고 있는 것은 그 분야가 우주만큼 광대한 블루 오션이기 때문이다. 작년 한 해 발사된 인공위성이 1,200여개에 달하는데 이는 전년에 비해 180%가 늘어난 것이며 이 추세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뒤늦게 이 분야에 뛰어든 한국은 지난 주 누리호를 발사했으나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아쉽기는 하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 대한민국이 우주 강국의 하나로 우뚝 서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원한다."
<민경훈 논설위원>
'블루 오션 Blue Ocean'은 INSEAD (프랑스 퐁텐블로에 소재한 세계적인 명성의 경영전문대학원)의 김위찬 W. Chan Kim 교수와 르네상스 모본 Rene'e Mauborgne 교수가 처음 창안한 용어로 '물고기가 많이 잡힐 수 있는 넓고 푸른 바다'를 뜻하는 말로 기존 시장과는 다른 새로이 개척한 시장을 의미한다.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경쟁 없는 독창적인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경영 전략을 2004년 ‘블루오션 전략 (Blue Ocean Strategy)’이라는 논문으로 두 교수가 공동 집필한 책으로 출간돼 43개 언어로 350만 부 이상 팔리며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 전략이 어디 비지니스 기업 경영에만 적용되는 것일까. 세상 만사 우리 인생 전반에 늘 두루 통용되고 있는 우주의 원리가 아니랴.
지난 2020년 7월 24일자와 2019년 10월 17일자 코스미안뉴스에 올린 우생의 칼럼 글 둘 옮겨보리라.
[이태상 칼럼] 우주의 원리(Entropy)
‘일본은 자연재해(自然災害)가, 한국은 인재(人災)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최근 한 영국 언론 한국 주재 특파원의 촌평이다.
각론(各論)으로는 맞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총체적인 총론(總論)으로는 오늘날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과 홍수사태 등도 인재(人材)로 봐야 하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최근 한국에서 잇따르는 정치인, 체육인, 연예인 등의 ‘자살’도 어찌 보면 ‘타살’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세상만사 매사에는 양면이 있는 법이다. 마치 낮과 밤처럼 동전의 양면같이 둘이 불가분의 하나라고 봐야 할 것 같다. 거의 모든 것이 다 가면(假面)을 쓰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영어로도 Blessings and/or Curses in Disguise 라 하는 것이리라.
소탐대실(小貪大失)을 영어로는 Penny Wise, Pound Foolish라고 한다. 반대로 소실대득(小失大得)은 Penny Foolish, Pound Wise라고 할 수 있으리라. 이 소실대득의 일화를 옮겨 본다.
미국의 어느 작은 슈퍼마켓이 갑자기 정전으로 불이 꺼졌다. 그 슈퍼가 지하에 있었기 때문에, 주위가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더 큰 문제는 계산기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었다. 언제 다시 전기가 들어올지 모르는 상황 인지라, 어둠 속에서 계산을 기다리던 손님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이때, 슈퍼마켓 직원이 이렇게 안내 방송했다.
“정전으로 불편을 끼쳐 죄송합니다. 전기가 언제 들어올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바구니에 담은 물건은 그냥 집으로 가져가십시오. 그리고 그 값은 여러분이 원하는 자선단체에 기부해 주십시오. 모두 안전하게 나갈 수 있도록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조심해서 따라서 오십시오.”
이 사건은 언론을 통해서 세상에 알려졌다. 손님의 안전을 먼저 생각한 직원의 조치에 대하여 칭찬이 잇따랐다. 얼마 뒤, 슈퍼마켓 본사 감사팀이 그곳으로 조사차 나왔다. 그날 나간 상품 금액은, 대략 4천 달러였는데, 일주일간 언론에 노출된 회사의 긍정적인 이미지로 인해서 얻은 광고효과는 40만 달러에 이르렀다고 한다.
동서고금 언제 어디서나 ‘갑질’이 있어 왔지만 잘 좀 살펴보면 그 대가(代價)는 ‘갑절’(‘갑질’이 아니고 ‘갑절’)보다도 훨씬 그 이상의 ‘갑갑절’ 아니던가. 얼마 전 친구로부터 전달받은 이야기를 옮겨 본다.
어떤 한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사업실패로 거액의 빚을 지고 세상을 떠나자 마지못해 생계를 위해 보험 회사의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집안에서 살림만 하던 여자가 그 험한 보험 일을 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대학교에 다니는 딸만 아니면 하루에 수십 번도 하던 일을 그만 두고 싶을 정도로 힘겨운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추운 겨울날이었습니다. 거액의 보험을 들어준다는 어느 홀아비의 집에 방문했던 아주머니는 그만 봉변을 당할 뻔했습니다.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 그녀는 근처에 있는 어느 한적한 공원으로 피신을 했습니다. 사는 게 너무 힘들고 서러워서 자살까지 생각하며 한참을 울고 있을 때였습니다. 누군가 그녀 앞으로 조용히 다가왔습니다.
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공원에서 커피와 음료수 등을 파는 할머니였습니다. 할머니는 아주머니에게 무슨 말을 해주려고 하더니 갑자기 손수레에서 꿀차 하나를 집어 들었습니다. 따뜻한 물을 부어 몇 번 휘휘 젓더니 아주머니 손에 살며시 쥐여 주며 빙그레 웃어 보였습니다. 마치 방금 전에 아주머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알기라도 한 듯한 표정으로 말입니다.
비록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지만 할머니의 그 따스한 미소는 아주머니에게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 큰 힘이 되었습니다. 아침까지 거르고 나와서 너무나도 춥고 배고팠던 아주머니는 할머니의 따뜻한 정에 깊이 감동하면서 눈물로 꿀차를 마셨습니다. 그리고는 힘을 얻어 다시 일터로 나갔습니다.
그 후 몇 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가을날이었습니다. 공원에서 차를 팔고 돌아가던 할머니가 오토바이사고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다행이 수술이 무사히 끝나 생명엔 지장이 없었지만 뺑소니 사고였기 때문에 할머니는 한 푼도 보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퇴원하는 날이 가까워져 오면서 할머니는 거액의 수술비와 병원비 때문에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할머니의 딸이 퇴원 절차를 위해 원무과로 찾아갔을 때였습니다. 원무과 여직원은 할머니의 딸에게 병원비 계산서 대신 쪽지 하나를 건네주었습니다. 그 쪽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수술비+입원비+약값+기타비용/총액=꿀차 한 잔
할머니의 딸이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래자 서무과 여직원은 빙그레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5년 전, 자살을 생각했다가 꿀차 한 잔에 다시 용기를 얻고 지금은 보험왕이 된 어떤 여자분이 이미 지불하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저의 어머니이십니다.”
차 한 잔이든 꽃 한 송이든 받는 사람에게 기적을 일으키고 주는 사람 가슴을 사랑으로 채워 행복하게 해주는 좋은 예인 것 같다.
우리 모두 두 손을 갖고 태어난다. 한 손으로는 주기 위해, 또 한 손으로는 받기 위해, 다름 아닌 사랑을 주고받기 위해서다. 두 손이 합해지면 합장(合掌)으로 기도(祈禱)와 축원(祝願)이 된다.
세상에 근본적인 원리를 찾기 어렵지만 과학적인 몇 가지 근본 원리는 자연현상을 설명해주고 있다. 예를 들자면 만유인력(萬有引力)이다 상대성원리(相對性原理)다 에너지 불변의 법칙이다 그리고 열역학 제2법칙이라고 하는 ‘엔트로피(entropy)’가 있다.
어원학적으로 변화를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이 ‘엔트로피’란 단어는 열역학(thermodynamics)에서 자연현상 중에 발생하는 에너지의 압력, 온도, 밀도 등의 변화를 의미하는 원리가 오늘날 정보통신의 근간을 이룬다고 한다. 말하자면 물은 아래로 흐르고 산은 낮아지며 골짜기는 높아지는가 하면 우주는 팽창한다는 식으로 모든 자연현상 세상만사가 다 연결되고 차이가 없어져 평형을 이루게 된다는 원리이다.
이것이 바로 옛날부터 우리 동양에서 말하는 음양(陰陽)의 이치요, 만고불변 사랑의 원리가 아닌가. 이 사랑의 원리를 우리 일상생활에 적용해보자. 유대인들이 지키는 10계명이 있다.
1. 그 사람의 입장에 서보기 전에는 절대로 그 사람을 욕하거나 책망하지 말라.
2. 거짓말쟁이에게 주어지는 최대의 벌은 그가 진실을 말했을 때에도 사람들이 믿지 않는 것이다.
3. 남에게 자기를 칭찬하게 해도 좋으나, 제 입으로 자신을 칭찬하지 말라.
4. 눈이 보이지 않는 것보다 마음이 보이지 않는 쪽이 더 두렵다.
5. 물고기는 언제나 입으로 낚인다. 인간도 역시 입으로 걸린다.
6. 당신의 친구가 당신에게 벌꿀처럼 달더라도 전부 다 핥아먹어서는 안 된다.
7. 당신이 남들에게 범한 작은 잘못은 큰 것으로 보고, 남들이 당신에게 범한 큰 잘못은 작은 것으로 보라.
8. 반성하는 자가 서 있는 땅은 가장 성(聖)스러운 성자(聖者)가 서 있는 땅보다 거룩하다.
9.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또는 여자)는 좋은 아내(또는 남편)을 얻은 사람이다.
10. 술이 머리에 들어가면, 비밀이 밖으로 새 나온다.
이상의 10계명을 내가 하나로 줄인다면 우주와 내가 같은 하나라는 우주의 원리 곧 사랑의 원리를 깨닫는 것이리라.
자, 이제 우리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 1883-1931)의 우화집 ‘방랑자(The Wanderer, 1932)’에 나오는 ‘사랑과 미움(Love and Hate)’도 음미해보리라.
사랑과 미움
한 여인이 한 남자에게 말하기를,
“난 당신을 사랑해요.”
그리고 남자가 대답하기를,
“내가 당신의 사랑을 받을 만 하군요."
그리고 여인이 말하기를,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나요?”
그리고 남자는 여인을 응시할 뿐,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러자 여인이 크게 소리쳐 말하기를,
“난 당신이 미워요.”
그리고 남자는 말했다.
“그럼 내가 당신의 미움을 받을 만한 하군요.”
LOVE AND HATE
A woman said unto a man,
“I love you.”
And the man said,
“It is in my heart to be worthy of your love.”
And the woman said,
“You love me not?”
And the man only gazed upon her and said nothing.
Then the woman cried aloud,
“I hate you.”
And the man said,
“Then it is also in my heart to be worthy of your hate.”
[항간세설] 언감생심(焉敢生心)이어라
‘도(道)라고 할 수 있는 도는 도가 아니다.’ 2천 5백여 년 전에 살았던 노자가 남긴 ‘도덕경’을 한 마디로 이렇게 풀이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진리라고 말하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다.’ 이것은 ‘데리다의 해체철학’이란 연구서를 펴낸 한국 정신문화연구원 김형호 교수(철학)가 한 인터뷰에서 데리다의 해체주의 사상을 요약한 말이다.
이것은 불교와 노장사상 그리고 원효의 화쟁사상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1998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그리스 영화감독 테오 앙겔로풀로스(Theo Angelopoulos 1935-2012)의 ‘영원과 하루(Eternity and a Day)’는 1994년 ‘율리시스의 시선(Ulysses’ Gaze)’을 찍는 동안 급작스런 심장마비로 이태리 출신 배우 지안 마리아 블론테를 잃고 나서 살날이 딱 하루 남았다고 하면 어찌 할 것인가란 생각에서 죽음을 소재로 만들었다고 한다. 죽음을 하나의 경계선 변경으로 다룬 것이다.
이 영화는 보는 이들에게 사람이 태어나 병들고 늙어 죽을 때까지 겪고 맛보는 갖가지 희망, 젊음과 향수, 사랑 등의 맥을 짚어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두 어린 아이가 나누는 대화 속에 한 아이가 시간이 뭐냐고 묻는다. 그 해답은 고대 희랍의 철인 헤라클리투스(Herclitus, c.540-c.480)의 것이다. ‘시간이란 바닷가에서 조약돌 줍고 노는 한 어린 아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또 다른 고대 희랍의 철학자 파메니데스(Parmenides c. 515-450 B.C.)의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정의대로 그 당시 65세의 그 자신이 늙어가고 있는 만큼 정말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그는 말했다.
"살아있음에 감사하면 되지 그 이상의 영예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구상 시인(1919-2004)은 1998년 내놓은 그의 마지막 시집 ‘인류의 맹점’에서 유언 대신 ‘임종고백’을 남겨 놓있다.
"나는 한평생, 내가 나를 속이며 살아왔다. 모두가 진심과 진정이 결한 삶의 편의를 위한 겉치레로서 그 카멜레온과 같은 위장술에 스스로가 도취마저 하여 왔다. 더구나 평생 시를 쓴답시고 기어(綺語) 조작에만 몰두했으니 아주 죄를 일삼고 살아왔을까!"
2000년에 출간된 '열여덟 산골 소녀의 꽃이 피는 작은 나라'에서 영자는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가 나에게 삶은 하나하나가 시가 된다면서 일기로 시를 만들라고 하네."
영자의 아버지 이연원 씨는 그 후로 강도에게 살해되었고 불교 신자이던 영자는 비구니가 되었다는데 그 뒤 이 강원도 두메산골 부녀의 유고시집 ‘영자야, 산으로 돌아가자’가 나왔다.
체코의 시인으로 198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야로슬라프 세이페르트(Jaroslav Seifert 1901-1986)는 그가 살아있는 동안 써놓은 자신의 비문에 이런 구절이 있다.
“수많은 사람이 써 온 수많은 시구에 나도 몇 줄 보태어 보았지만 귀뚜라미 소리보다 못한 것이었음을 잘 알고 있네. 달나라에 사람의 첫발을 내디딘 발자국은 아니었어도 어쩌다 잠시 반짝했다면 내 빛, 내 소리 아니고 반사한 것뿐이네. 나는 사랑했다네. 시를 쓰는 언어를. 그러나 변명은 않겠네. 아름다운 시어를 찾는 것이 살생보다 낫다고 믿기 때문이라네.”
스웨덴의 한림원은 1990년 노벨문학상을 멕시코의 시인 옥타비오 파스(Octavio Paz 1914-98)에게 수여하면서 ‘관능적인 지성과 인간적인 성실성을 특징으로 한 드넓게 트인 시야의 정열적인 시인’이라고 그를 칭송하면서 다음과 같은 그의 시 한 편을 그의 문학적인 신조로 인용했다.
"내가 보는 것과 내가 말하는 것 그 사이에
내가 말하는 것과 내가 말하지 않는 것 그 사이에
내가 말하지 않는 것과 내가 꿈꾸는 것 그 사이에
내가 꿈꾸는 것과 내가 잊어버리는 것 그사이에
시가 있다."
이를 어쩌면 이렇게 풀이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시심(詩心)을 갖고 내가 바라보는 만물의 시정신과
그 억만 분의 일이라도 나타내 보려는 내 문장 그 사이로
그렇게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너무도 보잘 것 없는 시늉과
제대로 형언할 가망조차 없는 무궁무진한 진실 그 사이로
이토록 내가 말할 수도 알 수도 없이 신비롭기 그지없는 현상과
내가 상상하고 꿈꿀 수 있는 환상의 세계 그 사이로
땅과 하늘이 맞닿은 듯 아련히 저 지평선 같은 그 이상 너머로
물안개처럼 피어올라 구름처럼 사라지는 망상의 그림자가
마치 유령이 지나치듯 잠시 도깨비불 번득이는 것
그따위 그것이 모름지기 시라는 것이리라.'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