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판교 테크노밸리에 있는 스타트업 회사에 출근한 지 한 달이 지났다. 같이 근무하는 직원들은 CEO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이다. 같은 부서의 직원들도 본인 빼고는 모두 20대의 풋풋한 젊은이들이다.
자식 둘을 출가시키고 손자가 셋인 60대 중반의 정년퇴직자가 거의 미혼인 젊은이들과 세대 간의 벽을 허물고 같이 근무할 수 있을지, 아니면 '고독의 섬'에 갇혀 혼자 발버둥을 칠지 일말의 불안감이 있었지만 이런 낯선 환경을 처음 경험하는 데 대한 막연한 설렘도 없지 않았다.
먼저 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일단 외모와 복장부터 확 바꾸었다. 머리는 스포츠, 옷은 스판 청바지와 허리가 짧은 자켓, 신발도 편한 캐쥬얼. 복장만 봐서는 20~30대와 견주어도 큰 차이 없도록 치장했다. 다행히 얼굴은 본의 아니게 마스크의 도움을 받았다.
처음에는 업무에 대한 이야기 외에 사적인 대화는 거의 없었지만 한 달이 지난 요즘은 커피 타임 때마다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나눈다. 대화의 주제는 미래, 자산 형성, 주식, 자동차, 비트코인, 애인, 결혼, 집 마련, 가족, 친구 등등...
진지하고 무겁게 느껴지는 대화도 간혹 있지만 사소하고 소소한 젊은이들의 일상과 고민거리들이 주를 이룬다.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서로의 관심사에 공통분모를 만들어 보려고 노력한다. 첨단 기술 분야에서 미래를 가꾸어 나가며 건강하고 적극적인 삶을 사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그들만이 지닌 싱그러운 젊음에 한편으로 부러움도 느낀다.
청년들과 대화할 때는 자식, 재산, 종교, 정치 문제는 가급적 피해야 한다. 서로 박탈감과 이질감을 느낄 수 있는 소재를 삼가야 대화가 원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이슈인 '공정‘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들로부터 고민거리를 듣다 보니 비슷한 시기에 직장생활을 한 우리 자식들과는 별로 대화가 없었던 터라 때늦은 감이 있지만 부모로서 어른으로서 자식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젊은이들은 자신의 위 세대를 ‘어른’이 아닌 다만 ‘노인’으로 폄하하며 몇몇 부정적 단어들로 규정짓는 경우가 많다. 꼰대, 불편, 의무, 부담, 뻔뻔, 외면, 생색, 초라, 구질, 원망, 답답...
우리 사회가 노인에게 덧씌우는 이미지도 대체로 부정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미디어에서 나오는 시니어(senior)는 기존 질서에 목메고 변화를 두려워하며, 훈계만 늘어놓는 사람으로 비추어진다. 이러한 부정적 시선은 어디서 기인했을까. 나이 듦의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
요즘 인생 2막을 준비하는 노인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많은 중장년층이 민주화 운동과 경제성장을 겪으며 성공의 DNA를 내재화했고, 가족주의적 성향이 강하면서 성 역할에 대한 태도가 분명하다는 등 우리나라의 특수한 사회적 맥락을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나를 중심에 두는 이기주의와 나이에서 오는 우월의식이 결합한 '꼰대'가 되기 쉽다. 그러다 보면 상대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공감해주는 '어른'이 되기 어려워진다.
인생 2막이라는 삶의 전환을 맞이하면서 사고의 전환도 반드시 요구된다. '조직의 성과' 보다는 '공동체의 성장'에 기여하는 일을 탐색하고, 현장에서는 '지위'가 아닌 '소통'을 중심으로 관계를 설정하는 자세의 전환이 필요하다. 다른 세대끼리 서로 연대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나이 듦, 즉 웰에이징(Well-aging)에는 조건이 따른다. 일단 세대의 간극에 빠지지 말고 같이 할 수 있다는 공감대부터 만들어야 한다. 문화와 역할이 다른 세대 간의 공감대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60+ 세대의 노하우와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청년과 노년은 서로의 거울이 되어야 한다. 노년은 청년들을 보고 단순히 자식이나 손자, 손녀 같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느 부분은 서로 벤치마킹을 할 수도 있는 사회적 동반자로 인식해야 한다.
앞으로 '꼰대'로 살지 '환갑 넘은 젊은이'로 살지는 우리 세대 각자의 몫이다.
여계봉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