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구 칼럼] 마네킹의 웃음소리

문경구

 

어린 시절 내가 관심을 두었던 과목은 공상과학이였다. 그 시절 어머님께서 꾸중하실 때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하고 있는 일에 미쳐야 한다고 하셨다. “공부할 때는 공부에 미쳐야지 괜시리 건성으로 왔다 갔다 하면 죽어서 시계불알 밖에 될 수 없을 텐데 그렇게 할 공부면 일찌감치 책가방 아궁이에 던져 버리고 청량리 밖 공터에서 벽돌 찍는 사람을 찾아가 그 벽돌 찍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 백번 낫다. 하지만 그 일도 역시 미치지 않으면 못 한다고 하셨던 말씀을 평생 가방에 담고 살았다.


그때 하신 말씀은 어린 나에게 언제 벽돌을 찍으러 가게 될지 정말 벽에 걸린 괘종시계 안에서 살게 되어 나를 언제 미치게 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과학 시간에는 어머님 말씀대로 미친 사람이곤 했다. 그 무시무시한 원자폭탄이 일본을 분자화 한 오싹한 과학은 어떻게 인간으로 터 만들어지게 된 것일까. 반면에 씨앗 하나가 엄청나게 많은 수확을 거두게 하여 굶주린 사람들의 배를 부르게 하는 착한 농업과학은 인간에게 가장 큰 영광을 쥐게 했다. 과학의 발달로 사람의 몸속 구석을 돌아보며 병을 찾아내는가 하면 이젠 로봇이라는 형체기 인간의 대역까지 하고 있다.

 

나의 어린 시절 꿈이 현실로 된 자동문 앞에서 스르르 열리는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 더 깊은 과학을 꿈꾼다. 내가 들어선 뒤 곧바로 문을 닫아주던 그 자동문의 신비로움을 알게 되면 언젠가는 로봇으로부터 인간이 태어나게 되고 그 인간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가어떻게 왔는가를 아는 게 내가 알아내야 할 과학이다. 저세상을 다녀온 사람을 만나서 알아보아야 하는데 아무도 신이 사는 세상으로 떠나갔다가 다시 되돌아오지 못했다. 단 한 사람만 있었다면 세상은 어쩜 지금의 세상 모습이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신을 잠시 속이는 나만의 과학으로 왜 어떤 이는 세상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되돌아가고 어떤 사람은 귀가 무릎을 넘도록 사는가를 알아내는 거다. 신이 잠시 정원을 거닐며 사색에 잠긴 사이 슬쩍 담장을 넘는 거다. 정원을 가로질러 유전자 창고를 열어보고 궁금증을 풀게 될 신의 의도가 든 핵심만 들고나오는 거다. 아무리 비밀이 많은 신이라도 내가 이번에 꼭 그 비밀들을 털어내고 말 거다. 그런데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던 온갖 비밀이 가득할 것 같았던 신비의 창고를 열고 보니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는 거다.


놀랍게도 그 안에는 백화점에 가면 흔히 보게 되는 마네킹들뿐이다. 어떻게든 옷 한 벌 얻어 걸치고 온종일 쇼윈도 안에서 옷값을 해내기 위해 사람들의 시선을 한곳에 모으는 우스운 마네킹들이 세상 사람들 숫자만큼 일렬로 줄지어 선 것을 보게 되면서 문제는 나의 무릎을 치게 했다. 신께서 한 아기 마네킹에게 이제 막 어느 고을, 젊은이들이 부부의 연을 맺고 자식을 청하니 너는 그 부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부모 자식의 연을 맺고 살거라그러니까 신의 법적 절차를 밟아 어떤 부부에게 입양되어 이 세상으로 오게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창고에서 나는 신의 속사정까지 훤하게 밝혀낸 거다.

 

그러니깐 그 어떤 것에도 주인이 없다는 더 큰 진리도 그 안에 숨어 있었다. 목숨도 농기구, 기계처럼 능력껏 빌려 썼다가 그 창고로 되돌려 놓고 간다는 말이 맞다. 평생을 의지하고 살았던 친부모란 애초부터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신은 아기 마네킹의 눈에 점 두 개를 꾹 찍어 세상을 보게 하는 작업을 부처 봉안식처럼 한다. 그래서 자식은 부모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고 하는 것 같다. 평생 아기 마네킹이 만들어 내는 웃음소리는 얼마가 될지 그 웃음을 눈물로 뒤집어엎을 능력을 주는 것은 신의 일이 아니다.

 

신은 아기 마네킹에게 두 가지 중 하나만 선택을 하게 한다. 세상에 나가 호사를 누리며 살 수 있는 돈만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돈은 결코 허락되지 않는 가난한 예술가로 평생을 살다 올 두 번째 선택을 할 것인가 묻는다. 예술가에게 돈은 어림이 없다는 말인 거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돈이 있다고 해도 없어 보이는 게 더 어울렸던가 보다.


그 힘든 선택의 예언 앞에서도 네가 너를 어떻게 위로하며 사는 유전자는 양부모와 신중하게 상의하라며 이상 끝이라고 말하고 아기 마네킹의 궁둥이를 힘껏 내리쳐 세상 문밖으로 나가떨어지게 한다. 그러니까 세상 거적자리에 떨어지면서 마네킹 아기는 손에 둘 중 한 가지 선택을 쥐고 양부모를 만나는 기쁨의 웃음소리로 우는 거다. 나는 세상을 살면서 가장 부러워하던 첫 번째 선택은 절대 아닌 거다.

 

국민학교 시절 새 교과서를 배급받아 들고 맡았던 인쇄 향기의 기억을 따라서 찾아다닐 때는 내가 가져온 선택이 무엇인가를 전혀 알 수 없었다. 세월만큼 찌든 헌책방 속 냄새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나의 두 번째 선택을 깨달았다. 잠시 죽었다 살아왔다는 사람이 기록된 문헌은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그래도 없는 기록을 평생 찾다가 신 앞으로 돌아가기 전 나의 두 번째 선택의 귀중함을 알아내어 다행이다. 그 안에서 나의 힘든 영혼을 위로하는 법도 발견하게 되었으니 그 모두가 예술이라는 확실한 두 번째 선택 때문이다. 글을 쓸 수 있고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예술은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특별히 선택된 부록들이다. 내가 이루어 낸 과학은 아무도 알 수 없을 거라고 믿었을 테니 신도 깜짝 놀랐을 거다.

 

저세상으로 갔던 사람을 한 번도 다시 돌려보낸 일이 없었던 신도 이제는 부인할 수 없을 거다. 더 놀라운 것은 이제까지 알고 있던 진실 중 신이 쥐락펴락하는 세상도 신의 완전한 소유가 아니고 모두 빌려 쓰는 처지인 것이다. 신이 머무는 그 집도 신 앞으로 명의가 된 집이 아니라 세 들어 사는 것을 나의 공상과학에서 낱낱이 밝혀졌다. 우주 속의 세상은 그 어느 누구의 소유도 아닌 것을 이번에 밝혀졌으니 더 이상은 찾지 못해 신에게 아쉬운 소리 할 필요가 없다.

 

살아있다는 지금의 감사한 모습만이 내 것이다. 그냥 쥐고 온 두 번째 선택인 예술을 위해 살다가 신의 부르면 그 옷을 벗고 다시 마네킹의 나라로 돌아가야 한다는 문헌은 여기저기에 있고 그 속에는 내가 살아온 모습이 담긴 비디오도 있어 언제든지 나를 만나볼 수 있게 되어있었다.

 


[문경구]

화가

수필가

코스미안뉴스 칼럼니스트

문경구 kimurgin@hotmail.com

 

전명희 기자
작성 2021.11.02 10:26 수정 2021.11.02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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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