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열전 靑年 列傳] 그대 자유로운가, 김덕

人死留名 虎死留皮


그대는 자유로운가

 

 

그대는 자유로운가

가끔 난 날아다니는 새가 되고파

그대는 자유를 원하는가

우리는 어느새 자신을 가두기 일쑤잖아

흔들리는 잎사귀를 어루만지며 가로지르는 바람은

어디인지도 모른 체 여행해

가끔 난 바람이 되고파

조그만 것에서 느끼는 행복은

너무 커 돈 주고는 못 살걸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스스로를 가둔다면

 

무지하면 반성해

 

 

나는 맑고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그리고 여유로운 영혼을 가졌으면 좋겠다.

 

내가 봤던 서울은 야경은 아름답지만 출근은 힘들다. 사람들은 모두 가면을 쓰고 서로를 속이고 믿지 못하며 시기하고 경쟁하며 질투했다. 그땐 어느새 내가 정해 논 틀에 날 가두며 자유를 갈망하듯 날갯짓을 펼치는 새 같이. 하지만 그 속에 얻었던 좋은 인연들 경험들이나 처음 느껴본 두려움들은 날 더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자유로운 아이다. 학창시절, 누군가 날 통제한다는 걸 굉장히 싫어했었다. 땡땡이도 많이 치고 지각은 일쑤였고 심지어 우리 학교에선 문제아로 낙인 찍혔다. 그래서인지 조퇴도 쉬웠고 입실도 언제든지 가능했다. 그땐 너무나도 자유로웠다, 내 세상이었다.

 

서울을 올라오고 얼마 안됐을 무렵, 나는 제대로 음악에 빠졌다. , 고등학생 때도 힙합을 좋아해서 혼자서 자작곡도 만들어보고 친구들과도 음악을 조금씩 만들었는데, 서울에서 다시 시작했을 땐 신세계였다. 난 이 필드에 들어온 걸 지레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음악을 만들면 모두가 내 음악이 좋다고 칭찬들뿐이었다. 게 중에는 내가 천재라고 하는 형들도 많았다.

 

정말 행복했다,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자유로웠다, 마치 어디든지 갈 수 있는 빛처럼.

 

하지만, 1년이 지나 내가 믿던 믿음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이 이거였나, 아침 겸 점심 겸 저녁을 라면 한 끼니로 한 달째, 배고픔이 익숙해지고 사방이 벽으로 채워진 직사각형의 틀 안에 살면서 멍청하게도 월급을 받으면 사리사욕 채우고자 했던 대가들로 고스란히 음악을 근근이 잡아대면서. 좋은 곡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난 억지로 영감들을 쥐어 짜내기 시작했다. 그래도 난 내 가사엔 거짓말을 절대 쓰지 않으려한다. 정직함을 추구한다. 순수하게 느꼈던 나의 감정이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램에.

 

하지만 그때의 난 갇혀 있었다.

 

전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만들어낸 곡에 뮤비를 찍게 되었을 때가 있었다. 찍고 난 다음날 바로 !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나를 위해 같이 힘 써준 형들에게 미안했었지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니다. 그런데 다른 마음 한쪽에서는 그랬다. ‘괜찮아. 이 뮤비를 내면 조금 더 유명해질 수 있어.’ 머릿속에서 의견이 엇갈리며 싸워댔다. 믿음이 흔들렸다. 몸도 망가졌다. 제대로 영양소 흡수를 못하니 원래 빼빼 마른 몸이었지만 4키로나 더 빠졌다. 하지만 이미 잡혀있는 크루 쇼케이스에서 처음으로 내 곡들을 부를 수 있는 자리는 빠지고 싶지 않았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내 처음이자 마지막 공연이라고 생각하며 임했다. 공연을 마치고 그렇게 난 다시 고향에 내려갔다.

 

그때는 지구에 내가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두려워하며 모든 걸 부정하고 서럽고, 내가 그저 불쌍한 놈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려하지 않아도 자꾸만 안 좋은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점령했었다.

 

어느새, 무엇을 해도 어딜 가도 난 항상 갇혀있었다.

 

생각의 버릇을 고치기 시작했다. 난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되게 많이 했었다. 그럴 때마다 그럼 뭐하나 아무리 애써도 돌아갈 수 없는걸. 지금 현재에 충분히 행복을 즐겨보자.’고 되뇌었다. 이겨 내야만 했다. 긍정적으로 어차피 한 번 사는 거 멋있게 살아보자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어두웠던 하늘에 빛줄기가 한 줄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정신 승리하던 중, 같이 음악 하던 형들이 공연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에 올라갔다. 오랜만에 만난 형들이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들의 노래를 부르며 다함께 즐긴다는 게 멋있었다. 그 때 난 다시 음악을 시작해야겠다 마음을 먹었고 흐름은 뭔가 괜찮아지고 있었다.

 

당장 다시 서울을 상경하고 싶었는데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전에 같이 살던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었지만 친구들은 안 될 것 같다고 말을 했다. 나는 알겠다 하고 일을 해서 보증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핸드폰을 보던 중 서울에서 친했던 형에게 연락을 했다. 형은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럼 같이 살자했다. 너무 고마웠다.

 

그리곤 빛 한줄기 위에서 다시 날 수 있는 날개가 생겼다.

 

서울에 다시 올라갔을 땐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다시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살아 숨 쉬고 친구들이 있고 먹을 수 있다는 것 모두가. 정신없이 놀았다, 밖에도 돌아다니며. 다시 내 성격도 변했다, 더 밝게. 그렇게 하루하루 지내던 중 천사를 보았다. 분명 나를 위해 보내 주신 거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정말 멋있게 살아가는 게 무엇인지 보여주고 좋은 경험들을 내게 안겨 주었다. 내 히스테리마저 잠재워 주었다. 모두에게 모든 게 감사했다. 그러던 중 같이 음악 하던 친구들은 소속사에 들어가고, 기획되었던 작업도 빠그라지게 되었다. 내 맘대로만 할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난 잘될 놈이라 믿었기에 크게 개의치 않으며 앞으로 벌어질 날들을 상상하는 자유를 만끽했다. 좋은 기회가 생겼다. 친구가 우리 셋이서 제주도가서 하고 싶은걸 해보자고 했다. 우리들은 이런 저런 아이디어를 주고받았다. 정말 우리가 해볼 수 있는 건가,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직 말소리뿐이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서로의 눈엔 확실함이 담겨져 있었기에 아름다웠다.

 

이제 곧 이 냄새나는 새장을 탈출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난 친한 형님의 영향으로 어느 정도 정치에 관심을 가졌다. 그 전에 이런 것들에 무지 했던 내가 사실 조금 부끄러워졌고, 그렇게 알다 보니 썩어 있는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라 덕에 난 년, 난 놈들은 멋있게 나라를 지켜주신 분들께 죄송한 마음일랑 있나. 그렇게 우리가 나라의 현실을 미워해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다. 그래서 피하지 않고 맞서서 바꾸고 싶다. 우리나라의 말도 안 되는 것들에 대해서. 난 그렇게 마음 다짐했다. 그래서인가, 빨리 이 답답한 건물 숲을 탈출하고 싶었다.

 

나의 때 묻지 않은 자유를 위하여 자연으로.

 

생각보다 제주도에 일찍 들어올 수 있었다. 오는 동안에는 새로운 모험에 설레고 흥분되며,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빗속을 뚫으며, 대구에선 행복한 첫 끼를 먹으며. 험난한 길을 뚫고 와 우리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야경과 자연의 모습들, 내 옆엔 내 가족들 그리고 또 하나의 가족들. 내게 주어진 상황들을 보면 난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미래에 난 확신할 수 있다. 내 믿음들은 굳세다. 다만 의심하고 유혹하려 드는 것들에게 날 잘 지켜내야만 하겠지. 나에게 채워 넣을 수 있는 것들이 아직 너무 많다는 것에 감사하고, 내가 나라서 정말 감사하다. 독백해본다.

 

행복이든 자유든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그리고 나의 주어진 환경에서의 감사함이 잊혀질 때면 다시 기억하라고

 

나의 꿈을 마음속에 다시 한 번 읊어댄다.

그리곤 언젠가 내 꿈들을 현실로 볼 것이다.

 

난 방금 새장에서 탈출했다.”

 

혹시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만들어낸 틀에 옭아매려고 하진 않는가.

그대는 자유로운가.

 

 


전명희 기자
작성 2018.12.07 11:04 수정 2018.12.07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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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