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머뭇거리는 이른 아침. 도로와 보도(步道)에 노란 은행잎이 수북이 깔려있다. 낙엽을 쓸고 있는 청소부가 보인다. 깨끗한 도로를 무심히 달렸기에 깨끗한 이유를 미처 생각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한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 거리를 청소하고 사회를 정화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여러 사람이 쾌적한 걸음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보이지 않던 사람의 노고가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나무는 잎을 떨구며 무슨 생각을 할까. 이 가을, 청소부와 나무가 벌이는 실랑이. 옥신각신하는 친구처럼, 뭔가 트집 잡는 이웃처럼, 은행나무와 청소부가 한바탕 씨름을 한다. 치운 다음 날, 치우면 또 다음날, 둘의 실랑이가 끝없이 이어진다. 아침마다 나뭇잎을 떨구며 무슨 생각을 할까, 나무는. 매일 아침 낙엽을 쓸며 ‘그만 좀 떨구지’라며 불평하는 청소부를 보며 재미있어하지는 않을까.
나무는 매일매일, 청소부도 매일매일, 그리고 손수레에 골판지를 산더미처럼 싣고 위험스럽게 도로 한 차선을 점하고 가는 노인과 수레도 매일매일 움직인다. 단지 나만이…. 매일매일 쓰지 못할 뿐이다. 현재로 진행되는 ‘매일매일’이라는 습관에서 나는 벗어나 있다. 그래서 이 가을, 다시 분발해서 매일 글을 쓰고, 일기를 쓰고, 매일 생각하기로 한다.
‘매일’이라는 현재 진행형을 생각하다 보니 어느 책에서 보았던 한 노교수의 한국어 시제에 대한 글이 떠오른다. 영문법에서는 시제를 엄격히 지키지만, 한국어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어에선 시제가 문법요소로 강하게 인식되지 않고 의미 요소로 받아들여지는 측면이 강하고, 어떤 일이 일어난 시점이 언제인지 서로 알 수 있다면 굳이 시제의 형식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지 않으냐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러고 보니 나 또한 시제에 대한 큰 고민 없이 편리한 대로 써온 것 같다.
그는 한마디 덧붙여, “좋은 문학은 영원한 현재성을 띤다.”라고 말한다. 영어에서 역사적 사실은 현재로 표현하는 것을 상기해보니, 작품에도 충분히 적용함직한 말이다. 매일의 현재성! 매일매일 일어나는-(평범한 일상적인 수고로운 옥신각신 사람다운 고민스러운 형식적인 구애받는 쓰지 못한 정체된 위험스러운 다시 분발하는 움직이는 결심하는 기분 좋은)-일상을 쓰는 내 글도 ‘현재 진행형.’
[신연강]
인문학 작가
문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