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식 칼럼] 독서만필

김춘식

사진=코스미안뉴스 DB


나의 생일파티에서였다. 며느리가 곱게 포장한 책 한 권을 건네주면서 말했다. “비록 값진 것은 아니지만 아버님이 제일 좋아하실 것 같아 이렇게 선물로 드려요. 항상 좋은 책 많이 읽고 좋은 글 많이 쓰세요.”

 

그래, 네가 내 마음을 제일 잘 아는구나. 고맙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줄 너무나 잘 아는 며느리다. 나는 반갑게 책을 받아 들고 그 자리에서 포장지를 뜯었다. 영국 작가 데이비드 미첼의 장편소설 <야코프의 천 번의 가을>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라 얼마 전부터 은근히 읽어보려고 벼르고 있던 터였다. 아까 며느리가 우리보다 집 문을 한 시간가량 먼저 나서더니 서점에 들렀던 모양이다.

 

어려서부터 독서광인 나는 책을 읽고 보고 어루만지는 것을 일대 낙으로 여기고 있다. 누군가 말하듯이 책은 나에게 있어서 감정의, 정신의, 사상의 의복이다’. 나에게 있어서 독서는 생활의 일부이고 삶의 방식의 한 대목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여간 보람 있는 일이 아니다.

 

내가 한국에 발을 들여놓은 첫 몇 해간 쇼핑으로 제일 다니기 좋아하는 곳이 서점이다. 평소에 책을 많이 읽기에 당연히 책도 많이 사야 했고 그래서 부지런히 서점에 다녔다. 한 주일에 한두 권씩, 일 년에 70~80권씩, 지금까지 거의 5백 권을 샀다.

 

평소 책을 보기 위해 나는 짬이 나는 대로 서점에 달려갔다. 부천 지하철역사 7층에 있는 교보문고에도 가고 부천역 북부광장 옆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에도 갔다. 물론 서점에서 책 읽기란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그것은 서점은 책을 파는 것을 주로 하는 곳이지 책 열람을 주로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기에 서점에서 책을 읽노라면 눈총을 받을 때도 있고 노골적인 꾸지람을 들을 때도 있다. 특히 교보문고의 직원들이 더했다.

 

새 책이니 더럽혀선 안 됩니다.”

팔 책이니 절대 책장이 구겨지게 해선 안 됩니다.”

시도 때도 없이 해대는 그들의 잔소리를 듣다 보면 그날은 거기서 더 책 읽을 기분이 나지 않아 그만 서점을 나서고 만다. 그래서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책을 볼 때가 많은데 중고책을 파는 곳이라서 그런지 이곳에서는 책을 더럽히지 말라거나 책장을 구기지 말라고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다.

 

눈총을 주는 이도 없다. 책 보기가 아주 자유롭다. 그리고 열람석도 꽤 많다. 그럼에도 눈치가 보인다. 필경 서점이니만큼 책을 공짜로 보기만 하는 게 양심에 걸린다. 그래서 나는 한 주일에 한두 권씩 4~5천 원 하는 책을 사는데 하긴 또 이렇게 책을 사야 집에서도 틈틈이 볼 책이 있게 된다.

 

나는 책을 폭넓게 읽는다. 이미 정평이 나 있는 동서고전을 읽을 뿐만 아니라 가장 새로운 세대를 호흡한 신간도 읽는다. 소설, 에세이, 시는 물론 인문, 경제, 경영, 정치사회 등 각 분야의 책을 두루두루 다 읽는다. 동물, 식물에 관한 책도 읽으며 종교에 관한 책도 읽는다. 독서는 한편으로만 기울어질 수 없는 일이요,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취미와 호기심, 수요는 나로 하여금 책을 폭넓게 읽도록 하고 있다. 하기에 나는 누가 나에게 어떤 책을 선물하든 다 반겨 받아 든다.

 

내가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한 것은 몇 해 전, 인천시 부평구에 거주해서부터다. 어느 날 하릴없이 집 주변을 거닐던 나는 동수교회를 지나다가 거기 4층에 작은 도서관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호기심이 당겨 거기에 들렀는데 그만 혹하고 말았다. 비록 작은 도서관이라고는 하지만 장서가 만권이나 되었고 또 볼만한 책들이 많았다. 이 도서관은 누구나 마음대로 들러서 책을 열람할 수 있었고 또 지역주민은 도서대출카드만 만들면 책을 빌려 갈 수도 있었는데 많이는 5권까지 가능했고 대출기한도 두 주(14)나 되었다.

 

나는 이튿날로 주민센터를 찾아가서 외국인등록증에 주소변경수속(이전수속)을 한 후 그 길로 그 작은 도서관에 가서 도서 대출카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날 사서 선생님을 통해 이 카드면 어느 도서관에서나 책을 대출받을 수 있으며 각 도서관 합계 20권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날 저녁에 인터넷으로 검색했더니 주변 한 시간 도보거리 안에 크고 작은 도서관이 10여 개나 있어 한동안 흥분을 금치 못했다.

 

그 후부터 나는 휴일마다 도서관 나들이를 했다. 먼저 가까운 거리에 있는 도서관을 찾아가고 차차 좀 먼 거리에 있는 도서관을 찾아다녔다. 그중 내가 가장 많이 다니는 곳은 규모가 큰 부개도서관과 부평도서관이다. 부개도서관은 부평구립도서관으로서 장서가 수만 권 되는데 무엇보다도 열람환경이 참 좋았다.

 

넓고 환한 열람실에 열람석도 많고 분위기가 아주 조용하였다. 그리고 부평도서관은 교육청 산하 도서관으로서 장서가 수십만 권이나 되는데 첫날 그 많은 도서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서관에 다니니 아무 책이나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도서관에는 내가 원하는 책이 다 있다.

 

철학, 역사, 종교, 과학, 문화, , 소설, 에세이, 로맨스, 판타지, 시나리오, 경영학, 계발서, 동양철학, 서양철학, 동양고전, 서양고전 등 참 없는 것이 없다. 나는 시인들이 쓴 산문집을 좋아하는데 부개도서관에서 정호승의 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를 빌려다 읽고 시인 정호승의 인생예찬에 감동을 금할 수 없었다. 한마디 말이 일생을 바꾸어놓을 수 있고, 절망에 빠진 이를 구해줄 수 있다는 그 말들이 참으로 가슴에 와 닿았다.

 

그리고 부평도서관에서 빌려온 김용택 시인의 산문시리즈 <김용택의 섬진강 이야기>(모두 8)를 읽었는데 읽을수록 재미있고 읽을수록 감동된다. 고향의 산과 들과 마을과 강과 풀과 꽃과 나무와 바위와 인간과 모든 것에 대한 시인의 정과 사랑이 철철 넘쳐나는 글, 남자에게도 이렇게 섬세한 고향애가 묻어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지만 그것은 참으로 진정임을 글 마디마디에서 보여준다. 그리고 산문이란 이렇게 써도 되는구나, 이렇게 써야 훌륭한 글이 되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도서관은 책 읽기가 즐겁고 자유로운 곳, 생각이 열리고 그 어떤 눈치를 보지 않고 내가 보고 싶은 책을 마음대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서점과 달리 조용해서 좋았다. 거기서는 누구나 핸드폰도 진동상태로 해놓고 책을 본다. (한번은 그만 잊고 진동상태로 해놓지 않아 벨 소리가 울렸는데 그 벨 소리에 모든 사람들의 눈길이 모두 나에게 쏠려 여간 창피스럽지 않았다.) 그리고 못다 본 책이나 확실히 메모가 필요한 책은 집에 빌려 갈 수 있으므로 여간 편리하지 않았다.

 

나는 책을 읽을 때 꼭꼭 메모하는 습관이 있는데 책을 집에 빌려 가면 직접 노트북에 메모할 내용을 입력할 수 있어 좋았다. 나는 거의 매일 독서 메모를 하는데 하루도 빠지는 날이 없다. 도서관에 다녀서부터 이런 곳을 왜 진작 이용 안 했나 싶고 숨은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다. 도서관은 나처럼 의욕과 호기심 넘치는 이들에게 항상 매력적인 곳이다. 그래서 항상 마음이 다가가 있고 발걸음이 다가가는 곳이다.

 

나는 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을 몽땅 다 읽기를 기다리지 않고 한 권이면 한 권, 두 권이면 두 권 읽는 족족 틈나는 대로 도서관에 가져가서 반납하고 또 다른 책을 빌려온다. 이렇게 하면 집에는 항상 아직 읽지 않은 책이 10여 권씩 있으므로 책을 선택해서 볼 여지가 넉넉하기 때문이다.

 

물론 도서관에 자주 가고 싶은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기도 하다. 휴일날 아침이 되면 아내는 진작 물병과 빵을 싸놓고 나더러 빨리 도서관으로 가라고 재촉한다. 도서관에 매혹된 내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아내다. 평소에 책을 읽다 나면 자리를 뜨기 싫어 배고픈 것을 꾹 참고 그대로 책을 읽을 때도 많다.

 

평소 즐겨 읊는 시 한 수가 있다. 조선 후기 문신이자 도학자이며 정치가인 우암 송시열이 자기 초상화에 써서 스스로를 경계한 글이다.

 

사슴과 무리 되여 /쑥대로 엮은 집에, /창 밝고 고요한데 /주림 참고 책을 본다. /네 모습은 여위었고 /네 학문은 쓸모없다/하늘 뜻을 저버리고 /성인 말씀 어겼으니, /널 마땅히 책벌레의 무리 속에 놓아두리.”

 

여기서 창 밝고 고요한데 주림 참고 책을 본다고 한 시구가 참 좋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지만 침 한번 삼키고 다시 책을 본다는 것은 책 속에 묻혀 있을 때 가장 행복하기 때문이다.

 

나의 독서모델은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트 러셀(1872~1970)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며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이자 지성인이란 평을 받은 그는 98세까지 살았는데 죽는 날까지 책을 읽고 편지를 썼다. 그런데 나는 그때까지 내 몸이 버텨줄지 걱정이다. 이젠 100세 시대라니 물론 100세까지 독서를 하고프다.

 

왜 저렇게 기를 쓰고 책을 읽는지 모르겠네?” 이는 아내의 나무람 아닌 푸념이다. 글쎄, 독서로 만들어지는 삶이 어떻게 변화될지 누가 쉽게 짐작할 수 있겠는가? 지금은 보잘것없어 보이는 작은 독서습관이 큰 성취를 안겨줄지도 모른다. 삶의 진정한 희열은 독서로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오늘도 난 그렇게 독서삼매경에 빠진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不狂不及)”는 말이 있다. 남이 미치지 못할 경지에 도달하려면 미치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독서에 미친 듯이 몰입하지 않고서는 결코 남들보다 우뚝 서는 보람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난 늘 독서에 미쳐있다.


[김춘식]

수필가

칼럼니스트

송화강수필상 수상

이메일 jinchunzhi2008@hotmail.com



전명희 기자
작성 2021.11.15 11:30 수정 2021.11.1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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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