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한 짐꾼이 상인과 길을 걷고 있었다. 점심때가 되자 그들은 강가에 앉아 밥을 먹으려고 자리를 잡았다. 그때 느닷없이 까마귀 떼가 시끄럽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상인은 까마귀 소리가 흉조라며 몹시 언짢아하는데, 짐꾼은 도리어 씩 웃는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에 도착한 상인은 짐꾼에게 삯을 주며 물었다.
“아까 까마귀들이 울어댈 때 웃었던 이유가 뭣이었는가?” 하자, “까마귀들이 저를 유혹하며 말하기를, ‘저 상인의 짐 속에 값진 보물이 많으니 그를 죽이고 보물을 가지면 자기들은 시체를 먹겠다’고 했습니다.”
“아니, 그럴 수가? 그런데 자네는 어떤 이유로 까마귀들의 말을 듣지 않았는가?” “저는 전생에 탐욕심을 버리지 못해 그 과보(果報)로 현생에 가난한 짐꾼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또 탐욕심으로 강도질을 한다면 그 과보를 어찌 감당한단 말입니까? 차라리 가난하게 살지언정 무도한 부귀를 누릴 수는 없습니다.”
짐꾼은 조용히 웃으며 길을 떠났다.
오유지족은 남과 비교하지 않고 오직 자신에 대해 만족하라는 석가모니의 유교경(遺敎經)에서 유래한 말이다.
우리가 자주 쓰는 “만족(滿足)"이란 말은 "찰 만(滿)"에 "발 족(足)"으로, "발만 차면 된다”는 뜻이다.
꿈이 크면 욕심을 유발하고, 욕심은 결국 스트레스로 몸을 망가뜨린다. 100세 시대에 오래 살려면 어려울수록 눈높이를 낮추고 마음을 비우면 된다. 발만 잠겨도 만족인데 무릎, 허리, 목까지 욕심내어 결국 물속에 온몸이 잠겨버리는 어리석음을 자초할 수 있다.
몇 해 전 몸이 불편한 장애우들을 도와서 도봉산 끝자락의 사패산을 같이 오른 적이 있었다. 하반신이 불편한 장애의 몸으로 사패산 암릉을 향해 힘든 산행을 하면서도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웃음을 잃지않고 행복하게 산행을 즐기는 장애우들 모습이 너무 인상 깊었다.
내리막길에서조차 채찍을 가하듯 자신을 몰아세우며 삶을 질책했던 자신의 모습이 오버 랩 되면서 이날 장애우들과 함께한 산행은 내 삶을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인디언 수우족은 9월을 ‘풀이 마르는 달’이라 불렀다. 풀과 나무는 더 성장하고 싶고, 더 푸르러 지고 싶은 욕망을 접고 땅으로부터 끌어올리던 수분을 스스로 차단하기 시작한다.
봄과 여름에는 식물처럼 성장을 위해 애쓰지만, 가을에 접어들면 모든 욕망을 내려놓고 포기할 것들을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 그렇게 비우고 채우기를 거듭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자연의 일부인 우리의 삶이 아닐까.
가을에 가장 중요한 덕목은 정리다. 미련과 집착은 불행이다.
이 계절은 좀 더 가벼워지면 그만큼 더 자유로워질 수 있는 날들이다.
여계봉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