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포해전 토론회 개최

합포해전지는 마산만인가 진해구 학개 마을인가

이봉수 이순신전략연구소장 발제, 제장명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장 등 토론

사진=코스미안뉴스 / 11월 24일 오후 2시 창원시의회 대회의실에서 합포해전 토론회가 열렸다.


11월 24일 오후 2시 합포해전 토론회가 창원시의회에서 열렸다. 합포해전은 1592년 5월 7일(음력) 이순신 장군이 거제도 옥포에서 최초로 승리한 후 그날 오후에 거제도 북단의 영등포(永登浦, 현 거제시 장목면 구영리)로 진출하여 밤을 지낼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멀지 않은 바다 가운데로 지나가는 적선 5척을 추격하여 합포 앞바다에서 불태워 없앤 전투다.

이번 토론회는 시민단체인 경남시민문화네트워크가 주관하고 창원시의회 이천수 의원과 전홍표 의원이 주최하는 세미나 형식으로 열렸으며 경남대학교 지역재생활성화연구지원센터 정규식 교수가 좌장을 맡았다.

이순신전략연구소 이봉수 소장이 '합포해전지 위치 비정(比定)에 관한 연구' 논문으로 발제를 하고 제장명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장, 최두환 전 충무공리더십센터 교수, 최헌섭 두류문화재연구소장, 조현근 경남시민문화네트워크 사무국장이 토론자로 나섰다.

이들은 합포해전지가 창원시 마산합포구 일원(마산 합포合浦)이냐, 진해구 원포동 학개(진해 학개鶴浦)냐를 두고 한 치의 양보 없이 열띤 토론은 벌였다. 이봉수 소장은 발제를 하면서 "이번 토론은 지역 갈등이나 개인 연구자들 간의 감정싸움이 아니고 순수한 학문적 토론의 장이다. 423년 전에 순국하신 이순신 장군이 오늘 이 토론회를 하늘에서 지켜보면서 기뻐하실 것 같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서 이봉수 소장은 마산 합포인 '창원부 합포'는 신라 경덕왕 이후 현재까지 일관되게 합포(合浦)라는 지명이 존재하고 삼국사기,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점필재집, 연려실기술, 함주지, 호구총수 등의 사료와 청구도, 동여도, 대동여지도, 해동지도 등의 고지도에 명확하게 나타나지만, 진해 학개는 조선시대 웅천현 관련 사료와 고지도를 샅샅이 찾아보아도 이 일대가 합포라는 기록이 전혀 없는 치명적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이 직접 쓴 '임진장초' 옥포파왜병장(玉浦破倭兵狀) 기록에 합포해전지를 '웅천땅 합포 앞바다(熊川地 合浦前洋)'라고 한 것을 두고, 관할 구역 경계에 있는 지명을 쓸 때 이순신 장군이 가끔 착각이나 실수를 했다고 소개했다.

"대표적인 것이 증도(甑島) 관련 기록이다. 증도는 현재의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끝에 있는 일명 시리섬인데, 이순신 장군은 당포파왜병장(唐浦破倭兵狀)에서 1592년 6월 7일(음력)에는 '웅천땅 증도'라고 했다가 다음날인 6월 8일에는 '창원땅 증도'라고 했다. 그러나 마산합포구 구산면 시리섬은 임진왜란 당시 웅천땅(熊川地)도 창원땅(昌原地)도 아닌 칠원땅(漆原地)이었다."라고 밝혔다.


이봉수 이순신전략연구소장이 발제를 하고 있다.


이봉수 소장은 관할 경계에 있는 지명은 '00 땅' 보다는 지명 그 자체에 방점을 두고 파악해야 한다면서, 합포해전지인 '웅천땅 합포 앞바다(熊川地 合浦前洋)'는 당시 창원부와 웅천현 사이에 있는 깊숙한 만으로, 해상 경계가 명확하지 않아 '창원땅 합포 앞바다(昌原地 合浦前洋)'라고 해도 되고 '웅천땅 합포 앞바다(熊川地 合浦前洋)'라고 해도 되는 지리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관련 사료가 전무한 상태에서 연구자 개인의 추론과 상상 만으로 진해 학개(鶴浦)를 합포(合浦)라고 하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라고 하면서 이봉수 소장은 "안방준의 '은봉전서' '부산기사'에 나오는 합포해전 기록도 이순신 장군의 장계와 비교해 볼 때 날짜, 왜선의 척 수, 전과 등이 달라 근거 자료로 삼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일부 논자들이 창원부에는 합포가 아닌 마산포라는 지명이 따로 있었고, 이순신 장군도 당포파왜병장에서 마산포 일대를 수색하고 나온 기록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대해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합포와 마산포는 엄연히 다른 지명으로 병존하고 있었고 신증동국여지승람 산천조에 구분되어 실려 있으며, 동여도에도 두 지명은 각기 따로 표기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이봉수 소장은 합포해전지는 현재의 창원시 마산합포구, 마산회원구, 성산구 사이의 마산만 일대라고 주장했다. 다만 왜군이 배를 버리고 상륙한 구체적인 지점이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봤다.

이어서 반대 토론에 나선 제장명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장은 “마산만의 합포는 합포해전지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1904년에 일본해군 수로국이 작성한 해도를 보면 현재의 진해 학개 마을 끝이 합포말(合浦末)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오늘날 원포동 학개 마을이 합포(合浦)인 것을 알 수 있다”며 “해군에서 배를 탄 경험을 바탕으로 출동 시간, 판옥선의 속도 등 상황을 추론해 보고, 당시 조선과 일본의 수군 전술을 고려하면 합포해전지는 진해 학개가 유력하다. 고지도는 만화 수준인데 그런 것은 믿을 것이 못된다.”고 반박했다.

이어서 최두환 박사는 발표 시간을 넘기면서까지 해류의 흐름, 판옥선의 속도, 게제 영등포에서 멀지 않은 바다(不遠海中)의 범위 등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추론을 내세워 조선수군이 마산만까지 추격은 불가능하다면서 진해 학개가 합포해전지라고 주장했다.

최헌섭 두류문화재연구원장은 1866년 웅구지(熊口誌)와 1899년 웅천군읍지에 나오는 지도를 제시하면서 진해 학개 위치는 합포(合浦)가 아니고 모란포(牧丹浦)였다고 주장하여 눈길을 끌었다. 이 지도는 그동안 다른 연구자들이 언급한 적이 없는 새로운 것으로 주목받기에 충분했다. 최 원장은 "일본 수로국에서 제작한 지도에 합포말이라 표기하기 이전에 우리 손으로 제작한 지도에 '모란포'라 적혀 있고, 18세기 중엽에 간행된 호구총수에도 '모랑포리'라는 지명이 나온다"라고 밝혔다.

 

1899년 경상남도 웅천군읍지 / 최헌섭 원장 발표자료


조현근 경남시민문화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진해 학개를 합포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논지가 그동안 수시로 변해 온 사실을 지적하면서, 2020년 6월 16일과 7월 4일 두 차례에 걸친 현장 실측 검증 결과를 바탕으로 합포해전지는 마산만이라고 주장했다.  20세기 초에 일본 해군이 작성한 해도를 입체적으로 분석한 결과 지명 끝에 '말(末)'이 들어가는 곳은 수없이 많은데, 합포말(合浦末)은 합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조 때 작성한 호구총수를 보아도 웅천현에 합포(合浦)는 물론 학개(鶴浦)라는 마을이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기자들의 취재 열기가 뜨거웠고 유튜버 생중계도 진행했다. 청중들 중에는 창원 뿐만 아니라 서울, 부산, 대구, 경북 예천 등지에서 온 이순신 마니아들로 열기가 가득했다.

행사를 끝낸 후 조현근 경남시민문화네트워크 사무국장은 "내년에도 이런 행사를 개최하여 정확한 합포해전지를 찾아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정민 기자
작성 2021.11.25 17:08 수정 2021.11.2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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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