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식 칼럼] 그대들은 생각해 보았는가

김춘식

 -김학철의 <격정시대>를 다시 읽으며

 

요즘 나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김학철 선생님의 자전적 장편소설 <격정시대>를 다시 읽으면서 조선의용군 용사들의 영웅 형상과 그 기백을 다시 한번 느끼며 새삼 가슴이 뭉클해진다. 조국 독립이라는 하나의 일념으로 항일최전선에서 이름 없이 스러져 간 조선의용군 전사들, 일제의 만행에 맞서 싸우다 처절하게 죽어간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 위대한 정신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내가 조선의용군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지난 세기 60년대 초등학교를 다닐 때였다. 당시 교장 선생님이 우리의 음악 교사를 담당했는데 그는 우리에게 <조선의용대 행진곡>과 조선의용대의 노래 <최후의 결전>을 가르쳐 주었는데 그때 이 노래들을 너무도 불러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조선의용대 행진곡>

 

중국의 광활한 대지 위에

조선의 젊은이 행진하네

발을 맞춰 나가자 다 앞으로

지리한 어둔 밤이 지나가고

빛나는 새 아침이 닥쳐오네

우렁찬 혁명의 함성 속에

의용군 깃발이 휘날린다

나가자 피 끓는 동포야

뚫어라 원수의 철조망

양자와 황하를 뛰어넘어

피 묻은 만주 벌 결전에

원수를 동해로 내어 몰자

전진 전진 광명한 저 앞길로

 

<최후의 결전>

 

최후의 결전을 맞으러 가자 생사적 운명의 판가리다

나가자 나가자 굳게 뭉치어 원수를 소탕하러 나가자

총칼을 메고 결전의 길로 다 앞으로 동무들아

독립의 깃발은 우리 앞에 날린다 다 앞으로 동무들아

 

그러나 그때는 단지 조선의용대란 일제와 싸우던 군대들이란 것만 알았을 뿐 그들의 구체적인 역사와 장거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러한 조선의용군에 대해 썩 후에 성인이 되어서야 차차 알게 되었으며 김학철의 작품들을 읽으며 비로소 투철하게 알게 되었다.

 

김학철이 쓴 <격정시대>, <항전별곡>, <최후의 분대장>등 작품은조선의용군이 중국에서 중국혁명과 조국 독립을 위한 항일투쟁의 전면적인 과정을 핍진하게 보여주고 있는바 중국혁명과 조국의 광복을 위해 헌신한 조선의용군의 유력한 증언대다.

 

그중에서도 <격정시대>는 항일독립운동가이자 '조선의용군 최후의 분대장'으로 널리 알려진 김학철의 자전적 장편소설로서 항일 전쟁 시기 조선의용군의 형성과정과 그 발전 과정 및 그들이 광활한 중국 대륙에서 피어린 투쟁에서 세운 위훈의 서사시적 화폭을 펼쳐 든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전우들에 대한 뜨거운 동지애로 전우들이 피 흘린 역사를 쓰려는 역사적 사명감을 안고 매몰되기 쉬운 조선의용군의 위훈을 이 소설에서 예술적으로 재현하였다.

 

태항산(타이항산맥太行山脈)은 거대한 요새다. 그 험준한 산맥과 줄기를 따라 곳곳에 조선의용군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렇게 태항산과 조선의용군은 식민지 피 끓는 조선청년의 성지가 되었다. 이 소설을 읽으며 당년에 태항산 전사들의 영원한 동경으로 되고 있는 태항산 여느 골짜기, 여느 산자락에 이름 없이 누워있는 조선의용군 용사들의 영웅 형상과 그 기백을 다시 한번 느끼노라니 태항산항일 근거지로 향한 북상의 길에서 조선의용군 전사들이 목청껏 불렀다는 그 노래, <우리는 태항산에서>를 떠올리게 된다.


우리는 태항산 위에,

우리는 태항산 위에

산은 높고 물은 깊네

수수는 무성하고 말은 살찌네

적들이 어디로 쳐들어오면

우리는 어데 가서 적들을 소멸하리

조선의용군 전사들은 중국의 혁명과 조선의 해방과 독립이라는 이중 사명을 가지고 태항산을 중심으로 항일의 전초에서 가장 용감하고 지혜롭게 싸웠다. 의용군 전사들은 <조선의용군의 3대 각오- 적의 총탄에 맞아 죽을 각오, 굶어 죽을 각오, 얼어 죽을 각오>로 무장되어 있었다. 그들은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한 길에서 죽음을 초개같이 여기면서 선옹채전투, 호가장전투, 형대전투, 5월 반소탕 혈전을 등 크고 작은 전투를 수없이 겪었는바 수많은 용사들이 자신의 피를 태항산맥에 휘뿌렸다. 항일투쟁 당시 김학철은 친구인 유신이 쓴 곡에 가사를 붙여 함께 조선의용군 추도가를 만들기도 했다.

 

사나운 비바람 치는 길가에

다 못 가고 쓰러지는 너의 뜻을

이어서 이룰 것을 맹세하노니

진리의 그늘 밑에 길이 길이 잠들어라

불멸의 영령

 

김학철은 태항산 전우들을 그리는 글에서나는 아직까지 그들의 무덤을 찾아 풀 한번 깎은 적이 없다. 하긴 그들은 대개 죽은 뒤에 무덤도 안 남겼다. 그렇기에 나는 그들을 기념하는 글을 써서 가슴속 깊이 그들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면서 이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들의 본명과 고향에 대해서도 우리들, 요행 살아남은 사람들은 아는 바가 극히 적다. 그래도 우리는 반세기 전에 노신鲁迅이 그의 젊은 벗들의 죽음을 애도해 쓴 망각을 위한 기념>같은 것을 써야 할 것이 아닌가!” 하며 전우들을 마음의 기념비로 세워주었다.

 

일찍 20121226일자 중국 <길림신문>에 실린조선의용군 전사들의 무덤 누가 지키나란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 기사에 의하면 태항산에 자리한 상무촌에는 지금 마을 입구에 산서성 좌권현(山西省 左权县) 정부와 대한민국 순국열사유족회가 함께 세운 <조선의용군 태항산 지구 항일전순국선렬전적>가 우뚝 솟아있으며 이 마을에서는 해마다 조선의용군 열사들의 명복을 비는 추모제를 지내고 있었는데 마을 뒷산에는 이름도 알 수 없는 조선의용군 전사들의 무덤이 있다고 했다.

 

당시 마을의 83세 조은경(赵恩庆) 노인은 마을 뒷산에 묻힌 이름도 알 수 없는 조선의용군 전사들의 무덤을 60여 년간을 줄곧 해마다 벌초를 하고 부토를 하면서 지켜주어 무주 고혼들을 위로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마을 사람들은 당년 일제가 마을에 소탕하러 왔을 때 의용군 전사들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마을 사람들을 엄호하여 적들과 맞받아 싸우던 그 정경을 두고두고 잊지 않고 감사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태항산맥에서 비바람과 눈보라를 이겨내며 주야장천으로 싸운 의용군 용사들 그리고 지금까지도 산천 황야의 무주고혼이 되어 심산의 어느 밀림 속에 소리 없이 누워있는 항일 영렬들의 거룩한 넋을 기리노라니 일찍 연변 가수 김은희가 부른 그대들은 생각해보았는가의 노래선율이 가슴 깊이에서 은은히 울려 온다

 

봄빛도 정다운 강변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이여

텔레비죤 앞에 모여 앉아

이 밤을 즐기는 사람들이여

그대들은 생각해보았는가

이 강산을 찾아준 은인들을

아직도 어느 한 심산 속에

이름 없이 누워있는 열사들을

 

선열들이 마련한 이 땅 위에서

행복을 누려가는 세대들이여

떳떳이 주인 됨 자랑하는

이 나라 신성한 공민들이여.

그대들은 생각해보았는가

이 강산을 찾아준 은인들을

아직도 어느 한 심산 속에

이름 없이 누워있는 열사들을

 

이민족 침입자의 철제 밑에 짓밟히는 민족 앞에서는 대개 세 가지 운명이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 법이다. 그 하나는 꼬리를 치고 나서서 앞잡이 노릇을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나 잡아 잡수시오 하며 가만히 엎드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분연히 떨쳐 일어나 반항을 하는 것이다. 자랑할 만한 역사를 갖지 못한 민족은 불행한 민족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민족은 다행이라 할 것이다. 세상에 떳떳이 내놓을 자기의 역사를 갖고 있으니까.”이는 <격정시대>에서 발취한 한 토막의 글이다

 

오늘 그대가 태항산 기슭 숲속에 고이 잠든 우리 민족의 투사들, 그들이 이룩한 불멸의 위훈을 아시려거든, 그들이 걸어온 피 어린 발자취를 더듬어 보시려거든, <격정시대>를 펼쳐보시라,

 

(자랑스러운, 그러나 잊혀진 항일투쟁의 마지막 증인 김학철. 김학철(金學鐵)의 본명은 홍성걸(洪性傑) 1916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나 보성고보에 재학하던 중 원산 총파업 등의 사건을 겪으며 민족의식에 눈을 뜬다. 이후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 상해로 건너가 의열단 반일 테러 활동에 가담하였으며,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하고 1938년 조선의용대 창립 대원으로 활약했다. 1941년 태항산 호가장전투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 다리에 부상을 입고 포로가 되어 일본 나가사키 형무소에 복역하다가 8·15광복으로 출옥하여 귀국했다.

 

1945년 조선독립동맹에 참여하였고,주보건설에 단편 지네를 발표하면서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1946년 월북해 로동신문기자로 일하다가 1950년 중국으로 망명하였으나, 문화대혁명 기간에 20세기의 신화필화사건으로 10년간 옥살이를 한다.

 

1980년 복권되어 창작 활동을 재개하였고, 2001925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장편소설 격정시대, 해란강아 말하라, 20세기의 신화, 소설집 무명소졸, 태항산록, 산문집 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하랴, 우렁이 속 같은 세상, 사또님 말씀이야 늘 옳습지, 전기문학 항전별곡,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2007년 실천문학사에서 펴낸 김호웅,김해양 공저 <김학철평전>에서 발췌

 

[김춘식]

수필가

칼럼니스트

송화강수필상 수상

이메일 jinchunzhi2008@hotmail.com


전명희 기자
작성 2021.11.29 09:11 수정 2021.11.29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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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