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필연이지만 괴로움은 선택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한 선사가 임종을 맞이하여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제자들이 옆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스승님, 깨달은 자의 경계는 무엇입니까?”
제자가 보기에 득도하신 스승의 죽음이 너무나 안쓰러웠던가 보다. 그는 해탈하신 스승님의 죽음이 이런 모습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앉은 채로 죽음을 맞이하거나 물구나무를 서서 열반에 드시는 게 대선사의 마지막 모습이 아니던가?
그러자 스승은 벌떡 일어나 제자의 뺨을 한 대 치고는 헉헉대다 마지막 숨을 거두었단다. 그렇게 스승은 가셨다. 제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얼얼한 뺨을 만지며 제자의 머릿속에는 어떤 상념들이 오갔을까?
그 제자는 지금쯤 스승의 뜻을 알았을까? 아니면 ‘큰 고통’에 빠졌을까? ‘도대체 스승은 왜 내 뺨을 쳤단 말인가?’ ‘도대체 죽음이란 무엇인가?’ ‘생사의 경계를 벗어났다는 스승님은 왜 그렇게도 고통스럽게 돌아가셨단 말인가?’
석가는 ‘제1의 화살은 맞을지언정 제2 제3의 화살은 맞지 말라’고 했다. 석가는 고통에는 육체의 고통과 정신의 고통,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외부의 자극으로 느끼는 육체의 고통을 고수(苦受)라고 하고 마음으로 느끼는 정신의 괴로움을 우수(憂受)라고 한다.
선사가 가쁜 숨을 몰아쉰 것은 고수(苦受)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우수(憂受)는 없었다. 우리는 육체를 가지고 있는 한 육체의 고통은 피할 수가 없다. 이것을 제1의 화살을 맞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신의 괴로움은 수행의 정도에 따라 느끼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마음의 괴로움, 우수를 느낀다면 제2의 화살을 맞고 제3의 화살, 제4의 화살을 맞는다. 불안이 계속 새로운 우수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삶이란 자신을 망치는 것과 싸우는 일이다
망가지지 않기 위해 일을 한다
지상에서 남은 나날을 사랑하기 위해
외로움이 지나쳐
괴로움이 되는 모든 것
마음을 폐가로 만드는 모든 것과 싸운다
슬픔이 지나쳐 독약이 되는 모든 것
가슴을 까맣게 태우는 모든 것
- 신현림,《나의 싸움》부분
스승은 아픈 만큼만 아프다가 돌아가셨는데, 제자는 생사윤회의 큰 고통에 빠져 있다. 스승은 지금도 그의 귀에 속삭이고 있을 것이다. ‘제자야, 네 뺨 아픈 만큼만 아파보렴.’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 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