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소개>
김원중
일본 교토에서 출생(1936) 경북 안동에서 성장하다. 영남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 중앙대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문학세계 및 문예한국 주간 역임, 경북문인협회장,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대구세계문학제 발기위원장, 한민족어문학회 회장 역임, 영남대 교수, 가야대 객원교수, 대구한의대 부학장,포항공대 교수역임, 주한 라오스 문화원 상임고문, 한국문인협회 고문, 대구문인협회 고문, 포스텍 명예교수, 한비문예창작대학 교수, 경상북도 문화상(문학), 한국예총예술대상(문학) 수상, 홍조근정 훈장 수훈하였으며 저서로는 시집 『별과 야학』, 『과실속의 아기씨』, 『별』 수필집 『하늘 만평 사뒸더니』, 『별을 쳐다보며』, 『문학과 인생의 향기』, 『사람을 찾습니다』외 다수이며 이론서 『한국현대희곡문학론』, 『현대문학의 이해』, 『현대희곡론』외 다수이다.
<차례>
-책머리에
1부.재수 없으면 백 살까지 산다
-재수 없으면 백 살까지 산다
-칡넝쿨에서 한비문학까지
-인생이란 삶은 계란이요
-일,십,백,천,만의 건강법칙
-걸어라 웃어라 읽어라
-강물 넘칠 땐 산 절벽길 오르고 기차 철교 건너 '집념의 등교'
-죽은 친구의 아름다운 우정
-모스크바의 푸시킨 문학박물관
-대구에서 인연맺은 시인들
-지방에서 문단생활 한다는 것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쟁이 될 것인가
-남북한 문학교류가 시급하다
-도덕적인 교육풍토를 조성하자
-웃는 사람과 우는 사람
-나의친구 수필문학
-인생을 아름답게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인연
-열차이름도우리말버린한심한나라
-황금찬시인의 나의인생 나의문학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정
-『영남의 인물문학사』를 위한 변명
-논리적인 너무나 논리적인 조연현의 『문학적인생론』
-선생님의 엽서
-가족처럼 지냈던 그리운 허드선 교수 내외분
-올빼미 학창생활 12년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다
-친필로 다가오는 시- 아픈역사1
-죽어도 잊을 수 없는 친구, 장윤익
2부.고전새로읽기
-실패가 두려운 젊은이에게
-인간존재의 부조리
-둘이서 나란히 걷기에는 너무도 좁은 길
-사랑을 사랑이라 말하면 사랑이 아니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죽음도 뛰어 넘는 사랑의 힘
-차가운 대지 위에 펼쳐진 드거운 사랑이야기
-무엇이 인간을 구원하는가
-그대에게 내미는 따뜻한 손
-자유정신 담긴 리얼리즘 소설의 원조
-눈으로만 보지 말고 마음으로 보면
3부.내가 본 김원중 교수님
-잊지 못할 그 강의 (김문경. 포항 방사광가속기연구소 연구원)
-기인이 그리운 세상 사람을 찾습니다(하성자 시인,수필가)
*연보. 작품목록
<책소개>
『걷고,웃고,읽으며 한손으로 버티기』는 전 포항공대교수이며, 시인이고 수필가인 김원중작가가 필생의 작품을 수필집으로 엮었다. 노교수가 80여년 인생에서 맺은 아름다운 인연을 회고하는 글이다.
『걷고,웃고,읽으며 한손으로 버티기』에는 저자가 80여 년을 버텨 온 생존전략과 생존을 위한 지혜가 곳곳에 숨김없이 드러난다. 저자는 조건 없이 남을 돕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했다. 도움은 노력해서 되는 일이 아닌 그냥, 돕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이 책에는 그런 마음이 생기도록 하는 어떤 힘, 또는 더 큰 마음이 뒤에 있다는 알 수 있다.
<서평>
『걷고,웃고,읽으며 한손으로 버티기』는 노년의 삶을 살고 있는 노교수가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삶의 지혜와 인연을 소중히 하라는 잠언이 담겨있다. 저자는 어릴 때는 소년가장으로 중년에는 중풍으로 쓰러지고,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지는 역경을 한결같이 걷고, 웃고, 읽으며 세상을 버텨왔다. 중풍의 후유증으로 한 쪽 팔과 다리가 불편하지만 한 손으로 세상을 버티는 해학의 내용이 담긴 에세이다.
<책 속으로>
나는 요즘 내가 은퇴 후 스스로 정해 둔 생활신조 세 가지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즉 “걸어라, 웃어라, 읽어라”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밥만 먹으면 걷고 사람들을 만나면 웃는다. 평생을 교단에 섰으니 걷는 것은 생활화되었고 현직에 있을 때 학생들로부터 무엇이 좋아서 늘 웃느냐?는 질문까지 받았다. 물론 “너의를 보면 좋아서 웃는다.”라고 대답 하였지만 웃음은 최고 보약이고 명약이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그리고 밤중에 자다가도 깨면 책을 읽는다. 책 읽는 것처럼 즐거운 일이 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는가? 읽으니까 자연히 따라오는 것이 쓰는 일이다. 내가 존경하는 철학자 러셀은 99세로 숨진 날 아침에도 3천 자를 썼다고 하지 않는가. 걷고, 웃고, 읽는 것이 은퇴 후 나의 생활 습관이 되어 버렸다.
- 본문 <재수 없으면 백 살까지 산다> 중에서
학기마다 등록금을 납부해야 하는데 그때마다 어머니가 친정에 가서 당신의 옷가지를 맡기거나 빌려서 등록을 하였다. 그러다가 더 이상 등록금을 마련하기가 어려웠던 차에 6.25 전쟁이 학업을 막아 준 것이다. 그리고 모교 사환으로 취직해 월급으로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 이렇게 살다가는 미래가없다”고 여겨져 고향에서 탈출, 대구로 홀로 들어왔다. 이른바 가출 소년이 된 것이다. 열여섯 살 때였다.
대구시청 앞에 구멍가게를 차려놓고 장사를 시작하였는데 나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칠성시장, 서문시장, 교동시장 등을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사다가 가게에서 팔았다.
장사는 잘 되었으나 수복 후 국군이 서울 쪽으로 올라가 버리자 장사가 안 되어 삼덕동 쪽으로 옮겨서 해도 그것도 안 되었다. 하는 수 없이 장사를 접고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는 신문팔이를 시작하였다. 물론 야간고등학교를 다녔다.
6.25 전쟁으로 중단된 학업은 4년의 공백기를 거쳐 대구 오성중학교 야간부를 거쳐 같은 오성고등학교 야간부에 입학한 것이다. 스무 살 때였다. 오성중고등학교는 동인동 떡전골목 안에 판잣집 교사였다.
- 본문 <올빼미 학창생활 12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