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무척 좋아하고 30년 넘게 현장 경찰관으로 근무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든지 약하고 어려운 사람의 편에 서는 그는 늘 웃는 얼굴이었다. 언제나 주민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야간근무를 마다하지 않고 일해 온 그는 체력 단련을 위하여 산을 넘어 출퇴근을 하기도 한다. 덕분에 실종사건이라도 생겨 수색작전에 나가면 언제나 앞장섰고 특히 장애인 실종사건이라도 생기면 근무시간을 따지지 않고 발견할 때까지 뛰어다녔다.
그러다 회식이라도 있을 땐 후배들의 대리운전비까지 챙겨주다가 아내에게 ‘제발 오버하지 말라’는 타박을 받기도 하지만 또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면서 습관처럼 늘 웃는다.
그런 그에게 쌍둥이 아들이 둘 있다. 결혼한 후 한참 뒤에 얻은 아들인데 이란성이라서 생김새도 성격도 모두 달랐다. 그래도 남들이 두 번 고생할 것을 한 번에 키웠으니 복이라면 복이다. 아내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고생한 것은 잊은 지 오래다. 남편들이란 다 그렇다며 또 웃는다. 늦게 태어난 아이들은 큰 탈 없이 고맙게도 잘 자라 주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사춘기를 지낼 무렵부터 아내가 모임에 나갔다 올 때면 시무룩할 때가 가끔 있었다. 친구들끼리 얘기를 하다보면 결국 남편이며 아이들 얘기로 귀결 되는데 자신보다 상대적으로 먼저 아이를 키운 친구들은 자식들이 공부를 잘해서 어느 대학에 들어갔고, 또 어느 집 아이는 벌써 취직을 했다며 자랑하는데 우리 집 아이들은 이제 겨우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으니 자신은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아내가 여고 동창 모임을 갔다 온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날 아들은 달랐다. 엄마의 푸념을 듣고 있던 큰아들(쌍둥이 중의 큰아이)이 엄마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 그래도 우리가 애는 안 먹인다 아이가~” 곁에서 그 말을 들은 그는 크게 웃었다. “그래그래, 애만 안 먹이면 된다. 괜찮다.” 아내는 ‘아빠가 저러니 아이들이 공부 잘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또 면박을 주지만 그는 그저 웃고 있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현명한 아이였다. 비록 다른 집 애들보다 조금 늦게 태어났지만 철은 더 먼저 든 것 같았다. 늘 자기는 공부와는 거리가 멀다면서 자신의 적성에 알맞게 공부하고 돈 벌어 잘 살 테니 돈 많이 드는 대학에 보낼 생각은 하지 말라고 부모에게 얘기하곤 했다. 작은 아이도 성격은 달랐지만 자기 몫을 차분히 찾아갔다. 덕분에 교육비 지출의 부담은 적었다.
그러면서 큰 아이는 기술을 배우는 곳으로 진학하고 작은 아이는 간호과로 진학하여 자기의 길을 걷고 있다. 부모가 해야 할 것은 자식들의 장점을 찾아 그것을 제대로 발휘하게 해 주는 것이라 했는데 우리의 쌍둥이 아들들은 그야말로 ‘애를 먹이지 않고’ 각자의 삶을 서툴지만, 차근차근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마치 산이 푸른 것이 나무, 풀, 바위, 흙, 바람 모두가 있기 때문인 것처럼, 모두가 낙락장송일 필요 없이 자기 역할에 충실하면서 즐기면 되는 것이다.
요즘 큰아이는 집에서 차로 두어 시간 가야 하는 곳에서 방을 얻어 직장에 다니고 있는데 그곳도 스스로 경력을 쌓아서 입사했다. 모두들 가고 싶어 하는 직장이다. 그런데 얼마 전 주말에 버스를 타고 왔다. 새로 마련한 승용차는 집에 세워두고 왔단다. 아내가 걱정되는 눈빛으로 왜 버스를 타고 왔는지 물어보라는 눈치다. 혹시 사고라도 나서 버스를 타고 온 것 아니냐며.
아들이 또 말했다. “엄마, 내가 아직도 애긴 줄 아나? 버스비는 만원이면 되는데 내 차 타고 오면 5만 원이 더 나간다. 또 버스 타고 오면서 한잠 자는 것도 얼마나 좋은지 아나?” 아내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겸연쩍게 남편의 등 뒤로 몸을 숨겼는데 그 얼굴엔 믿음의 미소가 배어있다. ‘이 녀석이 벌써 다 컸네.’
그는 벌써 이순(耳順)의 나이를 넘겼다. 친구들은 손주를 자랑하기도 하지만 그의 아이들은 아직 결혼할 나이도 되지 않았다. 직장생활 30년 넘게 하면서 부조금도 참으로 많이 내었다. 내년이면 퇴직인데 한 녀석도 결혼을 시키지 못해 조금은 아쉽기도 하지만 뭐 어차피 세상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벌써 알고 있었다.
늘 계산에 늦다고 아내에게 면박을 듣기도 하지만 ‘애 안 먹이는 아들’ 덕분에 오늘도 웃으며 산에 오른다. 그 산은 학이 춤을 추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학(鶴)도 춤을 출 땐 웃을란가? 생각하면서 또 웃는다. 그래 웃으면 복이 온다고 했다.
[하진형]
수필가
칼럼니스트
행정안전부 등록 범죄안전 강사
이순신 인문학포럼 대표(이순신 국제센터)
제3회 코스미안상 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