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의 대중가요로 보는 근현대사] 안개 낀 장충단공원

낙엽송 고목에 새긴 첫사랑 그 이름

최치수·배상태·배호

마른 낙엽 서걱거리는 장충단공원, 잿빛 바람이 휭휭거린다. 하얀 소의 해, 신축년(辛丑年) 뒷자락이 소실(消失)되어 가고, 임인년(壬寅年) 검정 호랑이가 목멱산(木覓山, 남산 옛 이름) 기슭을 어슬렁거리는 듯하다. 한 스무날 뒤면, 검정 호랑이는 도성(한양)의 남산 꼭대기에 올라서서 2022년 아침 새해를 맞이할 터이다. 서울의 세월 유수를 남산처럼 또록하게 품고 있는 산이 또 있을까


고려 시절에는 개성(송악)의 남경이던 한양, 조선 시절에는 도성이 되었던 곳. 대한제국 14년이던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에는 35년간이나 남의 나라 왜()의 총독부가 버젓하게 우리의 땅과 민족을 통할했었다. 그 시절 우리나라를 침탈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된 을사늑약(乙巳勒約, 1905.11.17)의 원흉으로, 1909년 하얼빈역에서 대한제국 참모 중장 안중근 장군에게 적국의 지도자로 피살된, 이또오 히로부미(1841~1909)를 추모하는 박문사(博文寺)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저들은 그를 추모했지만, 우리는 그를 증오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이곳을 거닐면 떠오르는 노래가 있으니, 1967년 불세출의 가요 황제 배호가 절창한 <안개 낀 장충단공원>이다.

 

안개 낀 장충단공원/ 누구를 찾아왔나/ 낙엽송 고목을 말없이 쓸어안고/ 울고만 있을까/ 지난날 이 자리에/ 새긴 그 이름/ 뚜렷이 남은 이 글씨/ 다시 한번 어루만지며/ 돌아서는 장충단공원// 비탈길 산길을 따라/ 거닐던 산기슭에/ 수많은 사연에 가슴을 움켜쥐고/ 울고만 있을까/ 가버린 그 사람의 남긴 발자취/ 낙엽만 쌓여 있는데/ 외로움을 달래 가면서/ 돌아서는 장충단공원.

 ▶https://youtu.be/6ys7aQHqPHU 

노래 속 화자의 가슴팍은 시퍼렇게 멍들어 있다. 마른 잎 서걱거리는 깊은 겨울, 고목에 새겨놓은 옛사랑을 찾아온 사랑의 실루엣이 눈에 어른거린다. 대중가요는 화자의 인생, 가수의 운명 같은 것이기도 하고, 같은 시대를 살아 낸 민초들의 시대 이념과 감성을 버무려 빚은 질그릇이기도 하다. 이 노래를 부르다 보면 어느 순간 애청자들이 노래의 주인공이 된다. 지난날 그 자리, 낙엽송 나무에 아로새긴 배호의 첫사랑 연인 이름은 누구였을까. 낙엽은 쌓여 그 사람의 발자국을 덮어버렸다


이 노래는 배호가 30세로 이승을 등지기 4년 전에 부른 엘레지 비가(悲歌)이다. 그가 이승을 등지고 예총회관을 떠나 장흥 신세기 공원묘지를 향할 때, 하얀색 소복을 입고 그를 뒤따르던 여인네들은, 지금 어느 하늘 아래서 가버린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있을까. 잿빛 하늘 마른 바람 스산한 오늘 저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이 통곡(痛曲)을 청취하시길 권해드린다. 색소폰을 연주한다면 두터운 스브톤을 위한 앙부쉬어를 앙다물면 좋으리라.

 

남산은 해발고도 265미터, 목멱산(木覓山인경산(引慶山열경산(列慶山마뫼(馬山) 등으로 불렸다. 이는 1392년 개성에서 고려왕조를 34대로 마감시키고, 왕씨 성을 이씨로 바꾸는 역성혁명(易姓革命)으로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1335~1408)가 한양으로 천도를 하면서 풍수지리상 남쪽의 안산이라고 붙인 이름이다. 충무로와 진고개로 이어지던 이곳, 장충단공원은 청춘남녀들 추억의 로망이 아로새겨진 곳이다. 이 산은 우리 민족 5천 년 역사 궤적 속에서 사연도 많고 한도 많다. 그래서 대중문화예술 소재로 다양하게 등장한다. 국립해오름 극장도 이 자락에 있다. 1967년 최치수가 노랫말을 얽고, 배호의 9촌 아저씨 배상태가 작곡한 이 노래도 그런 유다. 당시 배호는 26세였다.

 

장충단공원은 한양을 수비하던 남소영이 있던 곳. 1895년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 패들에게 살해(을미사변)5년 뒤, 고종은 이곳에 추모 단()을 건립했다. 순국한 충신·열사들을 제사하기 위해 19009월 장충단이라는 사당을 설치한 것. 이곳에서 고종은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면서 처음에는 훈련대 연대장 홍계훈·영관 염도희·영관 이경호를 주신으로 제향하고, 김홍제·이학승·이종구 등 장병들을 배향했으나, 이듬해 궁내부 대신 이경직을 비롯하여 임오군란(1882)·갑신정변(1884) 때 유명을 달리한 문신들도 포함하였다


이 제전은 6.25 전쟁 때 소실되었고, 지금은 장충단 비()가 남아 있을 뿐, 비에 새겨진 장충단(奬忠壇)이라는 글씨는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황태자일 때 쓴 것이다. 고종황제가 주관하던 이 제례는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우리나라를 실질적으로 지배한 을사늑약(1905) 이후인 1908년 중단되었다. 뿐만아니라, 1909년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 장군에게 피살되었을 때, 조선통감부 주도의 거국적인 국민대추도회가 장충단에서 열렸다. 추도 세력들은 장충단에 이토의 사당을 짓고 추모제를 지냈단다. 조선통감부(1906~1910)와 친일파들의 소행이었으리라.

 

1910년 한일 강제 병합 후인 1919년에는 조선총독부 주관으로 장충단 일대에 벚나무를 심어 일본식 공원이 조성되었다. 우리 국민들의 항일 한을 품은 장소가 저들의 공원 위락시설로 바뀌었던 것이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1932년 이 공원 동쪽에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기 위한 사찰 박문사(博文寺)를 짓고, 그 언덕배기를 춘무산(春畝山)이라고 불렀다. 남산자락에 다른 이름을 걸쳤던 것이다. 박문사라는 이름은 이토의 이름 이등박문(伊藤博文)에서 따왔고, 춘무는 이토의 호이다. 사찰은 이토가 안중근 의사에게 사살된 1026일 완공되었고, 낙성식에는 조선 총독 우가키 카즈시게(宇垣一成)와 우리나라 친일 부역자 등이 참석했단다. 해방광복 후 그들의 동상과 박문사는 철거되었다.

 

<안개 낀 장충단공원>의 주인공 배호(본명 배만금)1942년 중국 산동성 제남시에서 태어났으며, 배신웅이라고 불렀다. 그는 음악적 재능을 외탁(外託)했다. 동요 <엄마야 누나야> 작곡가 김광수가 셋째 외삼촌이며, 종로1가 궁전캬바레에서 노래하던 김광빈이 넷째 외삼촌이다. 둘 다 KBSMBC악단장을 지냈다. 배호는 1958년부터 외삼촌 아래서 드럼을 치며 노래하다가 1963년 김광빈 작곡 <굿바이>로 데뷔하였다. ‘배호와 그 악단이라는 12인조 악단도 운영했었다. 이후 1966년 배상태가 작곡한 <돌아가는 삼각지>로 인기를 얻지만, 이때는 이미 신장염이 발병한 뒤였다


그의 대표곡 <비 내리는 명동거리>·<당신>·<누가 울어>·<안개 낀 장충단공원>·<파도>·<영시의 이별>·<마지막 잎새> 등은 모두 다 투병하면서 부른 노래다. 그의 노래는 이별가 메들리처럼 무겁다. 그의 목청에 실을 노래를 만드는 작사 작곡가들은 슬픈 이별을 암시하는 비가(悲歌)를 배호의 운명과 연관 지어서 곡을 썼을까?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혹시라도 비운의 예술 가객 천부적 소질이 이승과 저승 삶의 경계지대까지 상업적으로 내몰리지는 않았는지, 맘이 짠해진다. 불우하게 성장한 배호의 가방끈은 부산 삼성중학교 2년 중퇴다. 예술가의 재능은 가방끈과는 무관하다는 묵시이기도 하다. 장충단공원 짙은 안개가 아련히 걷혀간다.


[유차영]

시인

수필가

문화예술교육사

한국유행가연구원 원장

유행가스토리텔러 제1호

유차영 519444@hanmail.net


전명희 기자
작성 2021.12.10 11:41 수정 2021.12.10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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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