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우공복지마을로 돌아온 시타와 슈리다만은 낮과 밤을 모르도록 관능적인 쾌락을 만끽하며 황홀경의 나날을 보낸다. 처음엔 이 두 사람 가정이 행복이 넘치는 지상천국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그 어떤 어두운 그림자 하나 없었다. 구름 없이 맑게 갠 창공에 날벼락이라도 예고하는 것 같은 이 ‘처음엔’이란 말은 이 이야기를 하는 제3자인 화자話者가 갖다 붙인 것일 뿐 이 이야기 속의 두 남녀는 아무 걱정도 두려움도 모르고 마냥 즐겁고 기쁘기만 했다.
진실로 이와 같은 행복이란 천국에나 있으면 있었지 지상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보통 세상 사람들이 수많은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조건과 상황 속에서 맛보고 누릴 수 있는 만족이나 기쁨이란 실제로 인습적으로 제약받아 극히 제한된 것이다. 따라서 임시변통의 대응책으로 자제하고 단념하며 체념하는 일이 다반사다. 우리의 욕망은 한이 없는데 그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아주 적다. ‘만일 내가 할 수만 있다면’이란 가정과 소망은 온갖 방면에서 빈틈없이 ‘그렇게 안 돼’라는 준엄한 장벽에 부닥치게 된다.
인생은 우리더러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하란다. 주어지는 것보다 주어지지 않는 것이,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비교도 안 되게 훨씬 더 많다며. 그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라는 꿈만 남아있을 뿐이다. 물론 이것은 천국 낙원의 꿈이다. 정녕코 그곳에선 이 지상에서와는 달리 금지된 것과 허락된 것이 같은 하나가 되리라. 금지되었던 불륜이 떳떳한 일이 될 것이고 떳떳하던 일도 불륜의 불장난처럼 자극적이 되리라. 그렇지 않다면 동경하고 열망하며 갈망하는 인간에게 천국이란 어떤 곳이며 그 무슨 소용 있으랴.
자, 그러니 이제 우공복지마을로 돌아온 부부연인을 기다리고 있던 운명은 바로 이러한 이 세상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신비로운 행복이었다. 처음에는 목말랐던 사람이 물마시듯 이들은 정신없이 이 행복의 달콤한 술을 꿀꺽 꿀꺽 마시고 삼켰다. 어찌 안 그럴 수 있었으랴.
우수한 머리의 소유자 슈리다만의 머리에 우량품 몸의 소유자 난다의 몸이 붙었으니 이제 시타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전처럼 남편의 얼굴에 입맞춤하면서도 남편 친구 난다의 몸을 그리워 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전처럼 몸과 마음이 둘로 분열, 분리되어 고민하고 번뇌하며 고통스러워하는 대신 이제는 남편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온 몸과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한편 탈바꿈하여 변형, 변질된 남편 슈리다만을 좀 살펴보자. 아내 시타 못지않게 그 얼마나 스스로 자랑스럽고 기뻤을까! 그토록 완벽하고도 철저하게 아내를 즐겁고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유능한 남편으로서. 그의 몸이 전보다 축나고 못쓰게 되었다면 모르되 누가 봐도 훨씬 더 좋아졌으니 변한 그의 모습을 보고 가족이나 동네 사람들이 놀랐을까봐 우리가 걱정할 필요 없으렷다. 역시 변한 모습으로 난다가 슈리다만과 같이 나타났었다면 뭔가가 크게 잘못됐다고 이상하게들 봤겠지만.
그러나 난다는 우리가 알다시피 같이 함께 돌아오지 않고 저 단카카 숲에 남아 은둔자가 되고 말았으니. 사람들은 슈리다만의 몸이 변한 것이 그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바람인데 그렇게 되었으리라고 생각하는 도리밖에 없었으리라. 그가 입는 옷도 난다의 복장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슈리다만의 것이었으니까. 이 점에서 우리는 부인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증거를 보게 된다. 어떤 한 사람의 신원을 밝히고 말해주는 것은 그 사람의 몸이 아니고 얼굴과 머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 상상해보자. 당신의 가족이나 친지 그 누구라도 당신이 평소 잘 알고 있는 얼굴과 머리로 당신 앞에 나타났다고 할 때 그 외의 다른 모습이 어떻든 또 어떤 옷차림을 하고 있든 간에 그 사람이 정말 당신의 가족이나 친지임을 조금이라도 의심하겠는가?
이 이야기에서 앞서 말한 대로 슈리다만의 변신 직후 슈리다만 그 자신이 그랬듯이 여기에서도 우리는 슈리다만의 행복보다 시타의 행복을 먼저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행복하기는 슈리다만도 마찬가지였다. 시타처럼 얼마나 황홀한 두 사람 사이인지를 희열에 찬 그의 얼굴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 이야기를 옮기는 화자로서 나는 이 이야기를 듣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슈리다만의 입장이 되어보라고 아무리 권해도 부족할 것 같다.
미치도록 한없이 사모하고 열망하던 여자와 극적으로 또 기적같이 결혼까지 했으나 사랑하는 신부 아내가 그리워하며 애타게 갈망하는 것은 자기의 품과 몸이 아니고 다른 남자의 가슴과 팔-다리인 줄 알게 되었을 때 그 얼마나 극심한 낙담과 실의에 빠졌었겠는가? 그랬던 그가 이제는 그 아내가 원하는 전부를 다 줄 수 있게 되었으니 그의 행운이 매혹적인 시타의 것 이상이라 해도 좋으리라. 멱감는 샘터에서 처음 본 순간부터 그녀의 신비한 매력에 사로잡혀 친구의 조롱까지 받아가며 그녀를 애절히 사모하다 못해 차라리 죽어버리려고 했던 슈리다만이 아닌가?
이토록 순수하고 절대적인 사랑은 그의 전 인격과 정신과 감정이 혼연일체가 되었던 것 아닌가? 무엇보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이것이 그의 브라만 머리의 신앙적 관심사가 아니었던가? 이렇게 높은 차원의 훌륭한 머리에 비해 왜소하고 빈약한 그의 몸은 보잘 것 없는 하나의 부속물에 지나지 않았고 그가 결혼하면서 이 사실이 명백해졌으리라. 자, 그렇다면 그렇게 좋은 머리를 제대로 떠받들어주고 그 머리에 떠오르는 이상과 꿈을 실제로 실현하고 이룰 수 있는 튼튼한 몸까지 갖게 된 슈리다만의 기쁨과 만족감이 어떠하였을 지 이제 우리는 알아 짐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와 같은 이상적인 행복의 극치를 두고 또 다른 천국 다시 말해 기쁨이란 이름의 낙원을 상상하고 꿈꾼다는 것은 정말 헛된 일이다.
이와 같은 이상향, 황홀경 아니 무아지경에 이르면 심지어 불길한 조짐의 ‘처음엔’이란 말조차 끼어들 수 없으려니와 그런다 해도 아무런 의미가 있을 수 없으리라. 그런 어두운 불길한 예감이 당사자의 의식 속에 있는 것 아니고 오직 다만 이야기꾼 머릿속에 객관적이고 일반적인 하나의 그림자를 던지는 것일 테니…….
그러나 이제 부득불 그 사태의 추이를 말하지 않을 수 없으렷다. 오래지 않아 곧 인간적인 요소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음이다. 그렇다. 진실로. 아마도 처음부터 세속적인 제한조건이 설정되었으리라. 천국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그런 걸림돌이.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엉덩이가 특히 아름다운 시타가 만물의 어머니 여신이 시키는 대로 신체 복구 작업을 하다 저지른 실수를. 그 실수란 시타가 무턱대고 맹목적으로 서두르다 저지른 실수일 뿐만 아니라 아주 전적으로 무턱댄 맹목적인 것만이 아니었으리란 것이다. 이 문장은 심사숙고한 숙려 끝에 쓰인 것이므로 잘 이해돼야 하리라.
자유자재로 여러 가지 온갖 현상을 만들어내는 권능을 가졌다는 여신 마하마야의 불가사의한 힘 마력, 삶의 모든 상상, 환상, 망상이라는 환영과 환각, 착각과 미망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그 마법이 언제나 모든 인간을 사로잡고 있으나 그 어떤 무엇보다도 사랑이란 것에서처럼 사람을 매혹시키고 괴롭히는 그 마술의 힘이 십분 발휘되는 일도 없으리라.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을 사랑하며 갈망하고 열망하는 일은 인간의 모든 애착과 얽힘과 인연의 원형이며 본질이리니 이 사슬과 수레바퀴에서 그 아무도 벗어날 수 없으리라. 사랑신의 가장 교활한 짝 욕망과 욕정이란 것이 괜히 있는 것 아니다. 마하마야의 마법과 마력을 가진 여신이.
어떤 현상도 다 매혹적으로 그리고 탐스럽게 조작하는 아니 그렇게 보이도록 하는 요술 말이다. ‘현상’이란 단어 속에 내포되어있는 감각적인 요소가 그 말부터가 찬란하고 아름답다는 관념적인 것이 아닌가? 돌이켜볼 때 바로 이와 같은 하나의 현상이 시타라는 미혹하고 현혹시키는 여신의 한 작품이 아니었던가? 시타의 모습을 그토록 눈부시게 아름답고 탐스럽게 만들어 논 것이. 특히 감수성이 예민해 현혹되기 쉬운 젊은이 슈리다만에게 있어서. 저 멱감는 샘터에서 옷 벗은 처녀가 고개를 돌려 얼굴을 나타냈을 때 두 젊은이가 그 얼마나 더욱 홀리고 흔희작약했던가? 매혹적으로 아름다운 몸뿐만 아니라 얼굴도 작은 코와 입술, 눈썹과 눈, 모두가 너무 너무 사랑스러움에. 이런 모습과 형상에 한번 홀리다보면 슈리다만 같이 그는 그가 홀린 대상에만 사로잡히는 것 아니고 그가 탐하는 욕망 그 자체에 사로잡히게 되어 그가 추구하는 것은 결코 제 정신이 아닌 흥분과 도취 그리고 열병 앓듯 하는 열광일 따름이다. 그가 무엇보다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그가 마침내 드디어 환상에서 깨어나는 환멸이다.
두 젊은이가 샘터에서 멱감는 처녀를 몰래 지켜보면서 아가씨의 얼굴도 예쁘다고 기뻐 날뛰었다면 마하마야의 요술과 주술적 의미와 가치에 있어서 몸과 팔, 다리가 머리와 얼굴에 달려있는 것으로 전자가 후자에 의존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카마다마나 도사도 정확히 올바르게 보고 머리가 팔, 다리의 주인이라 하면서 이에 따른 판결을 공정하게 내렸으리라. 진실로 사랑을 할 때 어떤 사람의 가치와 인상을 결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몸과 팔, 다리가 아니고 그 사람의 머리와 얼굴이다. 다른 머리 다른 얼굴이면 사정과 상황 그 정황이 달라진다는 표현으론 부족하다. 머리와 얼굴의 그 어떤 단 하나의 특징, 단 하나의 표정, 그 윤곽의 어떤 단 하나의 선만 바뀌어도 전체 인상이 달라지는 법이다.
여기에 시타의 과오와 잘못이 이중으로 있었던 것이다. 시타는 실수가(전적으로) 실수가 아닌 실수를 저지르고 내심 속으로 기뻐했으리라. 자기의 목적을 달성했고 그녀의 꿈과 소망이 드디어 이루어졌다고. 그녀에게 그렇게 보였을 테고 또 그렇게 그녀는 기대했었을 일이니까. 떳떳하게도 남편의 머리와 얼굴이란 간판 아래 따라붙은 아니 그 간판 뒤에 숨겨진 애인의 몸과 팔, 다리를 기어이 차지하게 되었다고. 그러나 아뿔싸, 이건 낭패로군. 이런 변이 어디 또 있을꼬. 그렇게 늘 활기차고 팔팔하기만 하던 난다의 몸이 슈리다만의 머리 그러니까 뾰족한 코와 사색적이면서 다정다감한 눈 그리고 부드러운 수염이 부채모양으로 나있는 귀공자의 얼굴과 결합하자 그 몸은 더 이상 전의 난다 몸이 아닌 아주 전혀 다른 딴 것이 되었으니…….
즉시로 그 첫 순간부터 다른 몸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늘 다른 현상과 형상을 만들어내는 마하마야 여신의 농간질인지 몰라도. 그러니 한 변화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것 아니다. 이와 때를 맞춰 또 하나의 다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으니 이를 어찌 하리오! 시타와 슈리다만이 ‘처음엔’ 비길 데 없는 사랑의 기쁨으로 그들의 관능적 쾌락을 유감없이 한껏 즐기는 동안 그토록 시타가 자나 깨나 절절히 절망하며 탐내다 마침내 획득한 친구의 몸(우리가 슈리다만의 머리에 매달린 난다의 몸을 아직 그렇게 지칭한다고 할 때, 실제로는 저 멀리 떨어져있는 남편의 몸이 친구의 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난다의 몸이 남편의 머리와 결합하면서, 저절로, 마하마야 여신의 장난질은 제쳐놓고, 아주 다른 몸이 되었다. 그 머리의 영향을 받고 그 머리의 지령을 따라 그 몸이 점차로 애초의 남편 몸같이 된 것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해 같이 살다보면 흔히 있는 일이다. 이 점에서 시타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혼 전에 식음을 전폐하고 잠 못 이뤄가면서 친구를 다리 놓아 그토록 애절하게 청혼하고 구애하던 그 수척한 남자가 이미 아니었다. 현재 남편이란 사람은. 그러나 여기엔 또 좀 다른 뜻과 이유가 있었다.
슈리다만의 머리가 지배력과 영향력을 행사해 옷 입는 데 있어서도 전처럼 자기 옷을 입지 그의 새 몸에 난다가 입던 옷을 걸치지 않았다. 그리고 전에 난다가 그랬듯이 몸에다 겨자기름을 바르지도 않았다. 그의 머리 다시 말해 그의 코가 다른 사람의 몸이 아닌 제 몸에서 나는 겨자기름 냄새를 견딜 수 없어했다. 그러나 이것은 시타에게 실망을 주는 일이었다. 또한 약간 실망스러운 일은 그의 앉는 자세도 난다의 소탈한 모습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브라만의 자손인 슈리다만은 이제 난다의 몸을 갖고서도 전과 같이 살 수밖에 없었다. 대장장이도 소직이도 아닌 상인의 아들로 상인인 그는 부친을 도와 자기 신분에 상당한 가업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연로해 몸이 쇠약해지자 그가 사업을 전적으로 인계 맡았다. 무거운 망치를 휘두르거나 소를 몰아 들과 산으로 풀밭 찾아다니는 대신 무명옷감과 장뇌樟腦, 비단과 옥양목, 절굿공이와 장작을 팔고 샀다. 그리고 틈틈이 그는 베다 성전을 읽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그러지 않아도 이 이야기가 기적같이 불가사의한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그렇게 우람하고 튼튼하던 두 팔이 힘이 빠지고 점점 가늘어졌다. 그의 가슴도 좁아지고 배에 볼품없는 살만 찌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한 마디로 옛날의 남편 몸이 되어갔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면서 시타는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러웠으랴. 여기서 우리가 마하마야 여신의 개입은 차치물론하고라도 이렇게 생기는 몸의 변화 전부 다 꼭 전보다 못해졌다고만 할 수는 없을는지 모를 일이다. 그 변화의 일부는 인도 사성의 제1계급인 승려계급 브라만으로의 상승작용으로 촌스럽고 투박한 몸을 귀족화시켜주고 세련되게 해줬으니. 전보다 피부도 희어지고 손, 발도 적어지고 뼈마디며 무릎도 가냘프고 섬세해져 전에는 제 멋대로 활개 치며 주인 노릇하던 몸이 이제는 귀족적인 머리에 붙은 부속물로 무기력하고 비굴한 종살이나 하게 된 것이다.
신혼의 즐거운 때가 지나자 시타와 슈리다만의 결혼생활이란 이상과 같았다. 그렇다고 난다의 몸이 슈리다만의 몸으로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다. 만일 그랬다면 참으로 모든 것이 옛날과 아주 똑같아졌으리라. 우리가 하는 얘기를 과장하는 대신 신체의 변화를 명백한 몇 가지 특징에 국한시킨 요소와 요인을 강조하는 것이다. 무슨 뜻인가 하면 실제로 일어난 머리와 몸 사이의 일방적이 아닌 상호작용을 말함이다. 그의 ‘나’와 ‘나의 느낌’을 좌우하고 조절하는 슈리다만의 머리 또한 변했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은 현상을 머리와 몸에 공통되는 자연 생리적 분비작용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철학적으로는 더 좀 고상하게 설명할 수 있으리라.
대저 무릇 세상에는 지성의 흥미를 끄는 아름다움 곧 지성미와 감각을 자극하는 관능미가 있다. 혹자는 아름다운 것은 오직 감성의 영역에 속한다며 지적인 것과 완전히 분리시켜 세상을 둘로 갈라놓는다. 이것이 베다 성전의 가르침이다.
“온 우주 가운데서 맛볼 수 있는 희열은 두 가지뿐이니, 몸으로 느끼는 즐거움과 정신 곧 마음으로 얻게 되는 기쁨이라.”
그러나 이와 같은 교리적 주장을 따르면 정신과 아름다움과 추함 사이의 관계가 이상해진다. 정신적이고 영적인 것과 추한 것이 같은 것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다. 왜냐 할 것 같으면 우리는 아름다움을 아름다운 것을 통해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되며 이러한 사랑을 영적인 아름다움이라 표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같은 사랑이 당치 않은 것도 가망 없는 것도 아니다. 그 이유는 상반되는 반대의 상대끼리 서로 끌리고 끄는 인력 아니 매력의 법칙에 따라 아름다운 것은 영적인 것을, 영적인 것은 아름다운 것을 동경하며 찾게 되는 까닭이다.
세상이 그렇게 만들어져있지 않다. 정신은 정신만 육체는 육체만을, 혼은 혼만, 미는 미만을 사랑하도록 말이다. 진실로 이 둘 사이의 대조, 대비가 지적인 동시에 미적으로 명확히 말해준다. 세상의 목적과 목표는 혼과 아름다움의 결합으로 더 이상 분리되지 않은 전체 아니 하나로서의 더할 나위 없는 행복임을.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이야기는 바로 이런 목적을 달성하려는 노력에 수반해서 일어난 하나의 그릇된 출발과 실패담이다. 다시 좀 살펴보자.
바바부티의 아들 슈리다만에게 실수로 아름답고 튼튼한 몸이 주어졌다.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그의 고상한 머리의 동반자로. 그러자 그의 지적인 두뇌가 즉시 슬픈 사실이랄지 현실을 간파한 것이다. 그가 추구하던 이상異常한 이상理想이 더 이상 동경의 대상이 아닌 그의 현실이 된 것이다. 다시 말해 그는 이제 그가 추구했던 그 자신이었다. 불행히도 이 슬픔이 그의 머리가 새 몸으로 인해 갖게 된 변화를 거치는 동안 줄곧 내내 떠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머리는 그가 동경하는 것을 추구하는 머리이지 소유하는 머리가 아니라서다. 그가 추구하던 아름다움을 소유함으로서 그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과 그 아름다움 자체의 영적인 아름다움까지 잃어버리는 결과에서다.
그의 신체적인 변화가 없었다 하더라도 단순히 그가 사랑스러운 시타를 소유한 까닭에 이 슬픈 현상은 어차피 일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문제는 의문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이미 언급된 바와 같이 일반적으로 모든 경우가 다 크게 다르지 않고 비슷하다 해야 하리라. 설혹 경우마다 상황에 따라서 과장되고 강조된다 하더라도.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에게는 단지 하나의 흥밋거리이겠으나 변하는 남편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시타에게는 너무도 비통한 일이었으리라.
얄팍하던 입술이 두툼해지다 못해 두루마리 살로 퉁퉁해지고 칼날같이 뾰족하던 콧등에도 살이 쪄 염소 코처럼 되고 사색적이던 눈매가 호탕하게 변했다. 결국 슈리다만의 몸은 세련되어지고 반면에 머리는 조잡해졌다. 어느 한 구석 제대로 된 데가 없었다. 여기서 이 이야기 듣는 사람들이 상상 좀 해보기 바란다. 이렇게 해괴망측하게 변하는 남편의 모습을 똑똑히 보면서 시타가 어떤 생각을 했을지. 저 멀리 있는 친구 난다의 몸에도 발생했을 변화에 대해서 말이다.
시타는 결혼한 첫날밤에 의식적으로나마 안았던 남편의 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지금의 남편은 그 때 그 몸이 아니다. 그렇다고 더 이상 친구 난다의 몸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와 정반대의 똑같은 현상이 친구 난다에게도 일어나지 않았겠나 하는 결론에 도달하니 시타는 밤낮으로 안절부절 못하게 된다. 심지어 남편의 품안에서조차. 그러니 슈리다만은 다시 전처럼 외롭고 쓸쓸히 겉돌게 된다. 멀리 떨어져있는 난다를 불쌍히 여기고 그리워하는 시타 주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