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송구送舊 오게(오징어 게임) 영신迎新 코게(코스미안 게임) SG(Squid Game) Out CG(Cosmian Game) In

이태상

 

2021년 12월 8일자 미주판 한국일보 오피니언 [뉴스의 현장] 칼럼 '오징어게임, 경쟁, 그리고 현실' 필자 남상욱 남상욱 경제부 차장은 "오징어게임은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 현실인 ‘살기 아니면 죽기’라는 실상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무한 경쟁 게임'의 대안으로 '너와 내가 더불어 함께 공존을 모색하는 아프리카 어느 마을의 우분투 철학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그러나 가야 할 길은 멀어 보인다. 한편으론 자본주의 경쟁을 비판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그 경쟁에 열렬히 참여하려는 욕망이 있는 우리 현실 모순은 생각보다 더 단단하기 때문"이라고 칼럼 글을 맺고 있다.

'오징어게임, 경쟁, 그리고 현실' 

한류 콘텐츠 파워의 상징이 된 한국 드라마 ‘오징어게임’. 지난 9월 17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면서 전 세계인들의 이목을 끌면서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오징어게임은 참가자 456명이 우승자 1인에게 돌아가는 상금 456억원을 놓고 오징어게임을 비롯한 6가지 게임을 하는 내용이다. 게임의 룰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거나 승부에서 패배한 참가자를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다.

인간을 극한의 경쟁으로 내모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와 그 경쟁 구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인간들이 무너져 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드라마다.  

오징어게임은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 현실인 ‘살기 아니면 죽기’라는 실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게임 참가자 455명의 죽음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1명에게 456억원의 독점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지구촌 70억 인구 중 70여명의 극소수 ‘수퍼 리치’(super-rich)가 하위 35억 인구가 가진 총 재산보다 더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것과 무척 닮았다.

오징어게임의 ‘죽기 아니면 살아남기’ 경쟁의 전형은 월급쟁이들의 꿈인 대기업 임원 되기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한국 대기업의 상징인 삼성전자의 3분기 공시에 따르면 삼성전자 임원은 총 641명이다. 미등기임원 886명 가운데 전문위원 등 연구개발(R&D) 직군을 제외한 숫자다.

전체 직원이 11만4,000여명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0.5% 가량만이 소위 ‘별’을 달 수 있다.

임원이 됐다고 해서 경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상무에서 전무로, 다시 부사장으로 승진하기 위해 엄청난 경쟁을 치러야 한다.

삼성전자에서 상무대우를 포함해 상무는 모두 428명. 전무는 129명에 불과해 4대1의 경쟁률이다. 부사장은 67명으로 가능성은 절반으로 줄어든다. 현재 삼성전자 내 사장은 16명뿐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자에게는 높은 연봉과 처우가 주어진다. 하지만 별을 달 수 있다는 기대감에 경쟁을 벌이다 99.5%는 소리없이 사라진다. 

그렇다면 죽기 아니면 살아남기 경쟁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참여하면서 계속 진행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나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왜곡된 현실 인식 때문일 것이다.

경쟁에서 살아남은 소수에게 주어지는 경제적 대가에 초점을 두고 그것이 주는 유익이 마치 모든 사람들이 다 소유할 수 있는 왜곡된 현실 인식은 공정한 기회와 정당한 경쟁이라는 가치로 포장되어 다시 확대 재생산된다.

상위권 대학에 들어가고, 돈 많이 주고 알아주는 상위권 대기업에 입사하고,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려 애쓴다. 상위권을 향해 끊임없이 그렇게 경쟁하며 자본주의의 왜곡된 현실 인식에 포섭되어 간다.

오징어게임에서는 경쟁에서 패배한 참가자는 곧 바로 죽음으로 이어지지만 현실의 경쟁 구도에서는 죽음 대신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질 것이고 그 기회를 잡아 올라 갈 수 있다는 왜곡된 현실 인식이 주어진다. 경쟁 구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 안에서 다시 치열한 경쟁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강수돌 고려대학교 교수가 쓴 ‘경쟁 공화국’에는 아프리카 어느 마을의 우분투 철학의 일화가 등장한다. 한 서구 인류학자가 부족 어린이들에게 사탕이 든 바구니를 멀리 떨어진 나무에 매달고 달리기를 해서 가장 먼저 도착한 어린이가 모두 갖는 놀이를 제안한다. 인류학자의 기대와는 달리 부족 어린이들은 서로 손을 잡고 바구니를 향해 걸어가 모두 사이좋게 나눠 먹고 말았다.

이들 어린이들의 대답은 이렇다. “우분투, 네가 있어 내가 있다. 다른 애들을 두고 어떻게 혼자서만 행복할 수 있나요?”

너와 내가 더불어 함께 공존을 모색하는 인식. 무한 경쟁 게임의 대안이다.

그러나 가야 할 길은 멀어 보인다. 한편으론 자본주의 경쟁을 비판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그 경쟁에 열렬히 참여하려는 욕망이 있는 우리 현실 모순은 생각보다 더 단단하기 때문이다. 

<남상욱 경제부 차장>

자, 이제, 2021년이 저물고 새해 2022년이 밝아오는 이때에 희망찬 앞날을 위해 지난해 2020년 5월 14일과 지난 여름 2021년 7월 11일 그리고 지난달 2021년 11월 19일자 코스미안뉴스에 올린 우생의 칼럼 글 셋 우리 다시 한 번 더 깊이 되새겨보리라.

[이태상의 항간세설] <우린 모두 ‘우분투 ubuntu!’ 코스미안이어라>

“깨어나라. 이 시대를 버려라. 너부터 변화시켜라.”

반역자 양성소 ‘건명원建明苑: FUTURE NEW SCHOOL 인문-과학-예술 학교’의 설립자 오정택 이사장의 주문이다. 체제 순응적인 능력자가 아닌 반역자를 키우겠다는 취지에서 오정택 두양문화재단 이사장이 사재를 쾌척해 2015년 설립된 건명원 개원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의 세대까지는 열심히 하면 밥 먹었고 남의 것 베껴서도 밥 먹었다. 그러나 30년 후 여러분의 시대는 새로운 사고, 새로운 방식이 아니면 답이 없다. 30년 전의 답을 꺼내 봐야 통하질 않는다.”
40년 전 2평 공간에서 단추공장을 시작해 수백억 원대의 재산을 모은 기업가가 미래세대를 위해 운영자금으로 100억 원을 기부하고 자신의 서울 가회동 한옥도 배움터로 내놓았다고 한다.
2015년 첫 1기로 19 ~ 29세까지 연령대 30명을 선발하는데 900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다고 한다. 8명의 교수진이 10개월 동안 매주 수요일 저녁 4시간을 돌아가면서 강의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한 달에 한 번은 세계적인 학자를 초청해 토론하는 시간도 마련하며, 성공적으로 수료한 수강생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한 달간 세계여행 경비를 전액 지원한단다.
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19 감염증 집단 감염 및 지역사회 확산 방지를 위하여 당초 5월 2일 예정이었던 건명원 수업 개강이 5월 30일로 연기되었다고 한다.
“30년 간 상인으로 살아온 제가 인문학을 접하면서 유인원에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됐다. 한국식 교육으로는 스티브 잡스 같은 인재가 태어나기 어렵다”는 충격적인 말을 듣고 건명원을 설립하게 되었다는 것이 오 회장이 설명하는 동기이다.

이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라틴어로 두 발로 서서 걸어 다니는 사람과의 영장류 동물을 지칭하는데, 지구상의 사람을 통틀어 인류라고 말한다.
위키백과의 정의에 따르면 사람은 사람을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고 영향을 미치려는 욕망 때문에 과학, 철학, 신화, 종교를 통해 자연적인 현상을 다루려고 한다. 

인류학적으로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고 본다. 해부학상 현생인류의 기원에 대한 과학자들의 가장 지배적인 견해는 아프리카 기원설이다. 인간이 아프리카에서 진화하여 5만 년에서 1만 년 사이에 아시아에서의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와 유럽에서의 호모 네안데르 탈렌시스Homo neanderthalensis의 인구를 대체하면서 이주했다는 학설이다.

최근 코스미안뉴스에 연재되고 있는 [최용완 칼럼]에선 “고구려의 음양오행은 인류의 종교와 과학의 시작이었다. 그리스와 로마에 숨겨진 우리 문화, 동이족(백제, 고조선, 흉노, 고구려)이 다스린 중국과 세계역사, 미대륙의 원주민은 우리민족이다. 인더스 문명에 나타난 우리 문화. 이집트 문화의 근원, 홍산문화는 현대 인류 모든 문화의 시작이었다…고인돌 문화는 인류문명의 시작이었다…동아세아는 모든 문명의 어머니…” 등 환골탈태가 아닌 천지개벽의 새로운 학설 ‘한반도 기원설’이 제기되고 있다.
1972년 초 내가 근무하던 미국의 대학교재 전문 출판사의 전근발령을 받고 영국에 도착해서 그 당시 출시된 레코드 ‘아프리칸 상투스 African Sanctus’ 를 접하고 나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 아프리칸 상투스는 영국의 민속음악 학자 데이빗 팬쇼 David Fanshawe (1942-2010)가 1969년부터 1975년까지 지중해로부터 빅토리아 호수까지 커누를 타고 나일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이집트, 수단, 우간다, 케냐 등지에서 아프리카의 전통적인 아름다운 토속 음악을 녹음해 유럽의 라틴계 미사 성곡의 하모니 대위법으로 접속시켜 작곡한 13악장의 합창곡이다.
1975년 부활절에 방영된 BBC1의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면서 특히 한 장면이 놀라웠다. 어느 한 산꼭대기 분지로 모여드는 여러 부족들이 하늘을 향해 다 함께 찬가를 부르는 소리가 그야말로 모두가 하나로 어울리는 혼연일체가 되어 혼연천성(渾然天成)의 우주적 화음을 이루고 있었다. 

1994년엔 팬쇼가 ‘도나 노비스 파셈 – 세계 평화를 위한 찬가 Dona Nobis Pacem – A Hymn for World Peace’란 한 악장을 더 작곡해 이 ‘아프리카 상투스’에 추가했다.
이 지구상에 아직도 미소 냉전의 유일한 잔재로 남아, 남북이 동족상잔의 대치상태인 한반도에서 뭣보다 시급히 필요로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좌파다 우파다 하는 빨갱이, 파랭이, 노랭이 타령일랑 어서 걷어 치워버리고, 지난 수 세기 동안 전 세계를 식민지화한 서구 기독교의 신본주의와 백인남성 위주의 인본주의, 근시안적 물질문명의 자본주의를 탈피하고 우주적 안목을 가진 코스미안을 양성하는 것이리라. 
현재 창궐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로 촉발된 우리 인류의 발상의 전환이 절실 절박하게 된, 이 천우신조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다시 말해 ‘만물의 영장’ 이라고 자부하고 자만하던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지구인’의 안목을 졸업하고, 우주적 비전을 가진 ‘반역자,’ 우주 나그네 ‘우주인’ 곧 ‘코스미안’으로서의 우리의 진정한 주체성을 깨닫는 일이다. 

만백성이 코리아 ‘코,’ 인류의 살길 진로(進路)의 길 ‘로路,’를 찾아 ‘코’리아‘로’ 눈과 마음을 돌려 어서들 ‘나’오라는 ‘코스모스의 숨은 메시지 Hidden Message of the Cosmos’인 ‘코로나’가 아니겠는가.
지난 2018년 11월 4일자 코스미안뉴스 항간세설 칼럼에 나는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앞에 언급한 ‘건명원’에서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을 해외로 파견해 안목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겠지만 그보다는 자고로 진리는 가까이 있고 등잔 밑이 어둡다고 우리 동양 선인들의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깨우침인 ‘피아일체彼我一體’와 ‘물아일체物我一體’ 곧 단군의 홍익인간弘益人間과 홍익만물弘益萬物
(대한민국의 비공식적인 국시로,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라”라는 뜻으로 해석됨) 그리고 우리 천도교天道敎(동학을 계승하여 발전된 한국의 신흥 종교)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지구촌 온 인류에게 계몽 주지시키기 위해 앞으로 휴전선 비무장지대 DMZ에 조성될 세계평화공원 근처로 지난 동계 올림픽이 개최되었던 평창에 코스미안 대학 설립취지문을 나는 코스미안뉴스 회장으로서 공표했다.
[격문] 변혁의 논리, 태서泰誓
코스미안대학 설립
 
고대 중국 하나라 걸왕에게 은나라 탕왕이 띄운 격문, '탕왕의 호소'를 빌어 아주 특별한 서약을 해봅니다.

사람들이여, 함께 생각해 봅시다. 우리 모두 하나같이 지구라는 이 작은 별에 태어나 잠시 살다 우주로 되돌아갈 나그네인 '코스미안 Cosmian'이 아닌가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만물이 모두 대우주의 축소판인 소우주라면 너를 사랑하는 것이 곧 나를 사랑하는 것이며 결국 온 우주를 위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다 해결됩니다.

그동안 잃어버렸거나 망각했던 우리 자신의 우주적 정체성과 본질을 깨닫고 되찾아 우리의 삶과 사랑을 나누는 일을 증진시키고자 기존 대학과는 전혀 다른
'코스미안대학'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적극적인 동참을 바랍니다.
 
나이지리아에서 사용되는 언어 중 하나인 요루바Yoruba어로 강江의 여신 오슘 The River Goddess Oxum에게 바치는 찬가가 있다.

lya mi ile’ odo
Gbogbo ashe’
Obi ni sa’la’ ma’ wo’e

영어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My mother’s home is the River
She who is omnipotent
Women who flee seeking protection, Visit her

우리말로 옮겨 보자면

내 어머니의 고향은 강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여신
보호를 받으려는 여인들은 강으로 가지

우리도 연어처럼 대양의 고향 강물을 거슬러 원점으로 돌아가리.

남아프리카 부족 중에 하나인 바벰바족 사회에는 범죄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바벰바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학자들은 이 부족을 연구하여 마침내 놀라운 이유를 발견했다.

이 마을에서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나오면 그를 광장 한복판에 세운다. 마을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모여들어 그를 둘러싸고 돌아가며 비난이나 돌을 던지는 것이 아닌 그가 과거에 했던 미담, 감사, 선행, 장점의 말들을 한마디씩 쏟아내는 것이다.

“넌 원래 착한 사람이었어.”

“작년에 비 많이 왔을 때 우리 집 지붕을 고쳐줬잖아. 고마워.”

그렇게 칭찬의 말들을 쏟아내다 보면 죄를 지은 사람은 흐느껴 울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한 명씩 다가와 안아주며 진심으로 위로하고 용서해준다. 그렇게 칭찬이 끝나고 나면 그가 새사람이 된 것을 인정하는 축제를 벌이고 끝을 맺는다고 한다.

중요한 건,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거의 없어 이런 축제를 하는 일이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당장 우리 사회에 적용됐으면 좋겠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가족끼리라도 먼저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 그러다 보면 학교에서도, 기업에서도, 나아가 사회 전체에 적용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In the Babemba tribe of South Africa, when a person acts irresponsibly or unjustly, he is placed in the center of the village, alone and unfettered. All work ceases, and every man, woman and child in the village gathers in a large circle around the accused individual. Then each person in the tribe speaks to the accused, one at a time, each recalling the good things the person in the center of the circle has done in his lifetime. Every incident, every experience that can be recalled with any detail and accuracy, is recounted. All his positive attributes, good deeds, strengths, and kindnesses are recited carefully and at length. This tribal ceremony often lasts for several days. At the end, the tribal circle is broken, a joyous celebration takes place, and the person is symbolically and literally welcomed back into the tribe.”
 
 - Excerpted from ‘The Art of Forgiveness, Lovingkindness and Peace (2002) by Jack Kornfield (born in 1945)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단어이지만 이 말의 의미를 우리 다 함께 깊이 음미해보리라.

‘우분투 ubuntu’는 위키피디아Wikipedia의 정의에 따르면 사람들 간의 관계와 헌신에 중점을 둔 윤리 사상으로 남아프리카의 반투어에서 유래된 말로서, 아프리카 전통적 사상이며 평화 운동의 사상적 뿌리이다. 말하자면 너 때문에 나는 두 배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뜻이란다.

아프리카 부족에 대해서 연구중이던 어느 인류학자가 한 부족 아이들을 모아 놓고서 게임 하나를 제안했다고 한다. 나무 밑에 아프리카에서 보기 드문 싱싱하고 달콤한 딸기가 가득한 바구니를 놓고 누구든 먼저 바구니까지 뛰어간 아이에게 과일을 모두 다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인류학자의 예상과는 달리 그 아이들은 마치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손에 손을 잡은 채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과일바구니애 다다르자 모두 함께 둘러앉아서 입안 가득 과일을 베어 물고서 키득거리며 재미나게 나누어 먹었다.

그 인류학자는 아이들에게 “누구든지 1등으로 간 사람에게 모든 과일을 다 주려고 했는데 왜 손을 잡고 달렸느냐?” 라고 묻자, 아이들의 입에서는 ‘우분투ubuntu’라는 단어가 합창하듯이 쏟아졌다고 한다. 그리고 한 아이가 이렇게 말하더란다.

“나머지 다른 아이들이 다 슬픈데 어떻게 나만 기쁠 수 있는 거죠?”

이렇게 ‘우분투ubuntu’는 아프리카 반투족의 말로서 ‘우리가 함께 있기에 내가 있다!’란 뜻이라고 한다.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 (1918-2013) 전前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1994-1999)이 강조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우분투!’는 그동안 어디를 가나 일등 아니면 최고를 따지는 세상에서 ‘당신이 있기에 우리 모두가 있다. 우주 만물이 있기에 내가 있다’는 코스미안 사상이라 할 수 있으리라.

이 아프리카 아이들처럼 모두가 함께 했을 때 더 커지는 달콤한 행복을 우리 다 같이 느껴보리라. 당신이 행복하면 당신 주위에 있는 평균 5명이 그날 하루를 함께 행복해 한다는 통계도 있다. 혼자가 아닌 함께 하는 세상이 인내천 지상천국이 아니겠는가.

우린 모두 ‘우분투ubuntu!’를 외치는 ‘우’주의 나그네 손님 되시는 ‘분’으로 아무런 흉이나 허물이 없이 깨끗한 ‘투’명한 ‘우분투 ubuntu!’ 코스미안이어라.

[이태상 칼럼] '우분투, 코스미안 정신 Ubuntu, The Spirit of Cosmian'

‘난 아프리카 소녀 I AM A GIRL FROM AFRICA: A Memoir’
 
지난 2021년 4월 20일 출간된 책 제목이다. 한 아프리카 소녀가 임사체험臨死體驗을 통해 인도주의人道主義에 헌신獻身, 온 지구촌에 변화를 촉발시키는 ‘심오深奧하고 상한 영혼을 치유하는 실화實話 profound and soul-nourishing memoir’라는 평을 얻고 있는 책이다.
 
저자 엘리자베스 니아마야로 Elizabeth Nyamamyaro는 짐마브웨 Zimbabwe 태생의 정치학자로 전前 유엔 고위 자문위원이고 남녀 성평등性平等을 위한 ‘여성을 위한 남성 발안發案 HeForShe initiative’를 창시했다.
 
이 책의 제목은 저자 개인의 놀라운 도전과 성취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전 대륙의 여성혐오女性嫌惡와 남성주의男性主義로 인한 깊은 상처로부터 회복 가능성에 대한 비관주의悲觀主義를 극복하자는 선언宣言이다. “As Africans we must uplift each other.”
 
이것이 어디 아프리카인들만의 일인가. 온 지구촌 인간가족 전원 아니 피아일체彼我一體와 물아일체物我一體인 코스미안의 입장에서 우주 만물 모두가 하나 같이 다 존귀한 존재로 서로서로 존중하고 공생共生 공존共存하면서 상생相生을 도모할 일 아닌가.

2021년 4월 17일자 미주판 중앙일보 오피니언 페이지 [삶의 뜨락에서] 칼럼 필자 정명숙 시인은 ‘시인의 눈’이란 제목의 글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노인이 되면 관념의 틀 속에 살게 된다. 관념은 우리를 능수능란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경이로움을 빼앗는다. 사물과 사람을 깊게 관조하지 않고 이성적으로만 생각할 뿐 놀라워하거나 감동하지 않게 된다. 바로 감성이 기능을 멈추고 무뎌진다. 세상이 그저 그렇고 회색이 된다. 빛이 없고 활기가 없다. 일상이 단조롭고 변화가 없으면 삶의 의욕을 잃고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 이때 필요한 묘약이 바로 ‘시인의 눈’이다. 시인의 눈으로 주위를 보고 느끼고 감동하면 세상의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인다.”
 
이런 ‘시인의 눈’이란 우리 모두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갖고 있던 ‘어린아이의 눈’이 아닌가. 모든 어린이는 우주의 도인道人 시인詩人 철인哲人 곧 코스미안으로 태어난다. 그리고 나이 들면 제2의 유년기를 맞아 다시 어린아이로 우리 모두의 고향 우주로 돌아간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최근년에 있어 온 무슬림 혐오증 Islamophobia에 이어 요즘에는 반反 아시아인Anti-Asian 증오범죄가 코로나 펜데믹 같은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넬슨 만델라 Nelson Mandelal(1918-2013)의 어록語錄 중 하나를 인용해보리라.
 
“아무도 피부색이나 출신 배경이나 종교 때문에 다른 사람을 미워하도록 태어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증오하도록 세뇌가 돼야 하고, 그럴 수 있다면 동시에 사람을 사랑할 줄도 알 수 있는데 이 사랑은 그 반대인 미움보다 더 자연스런 인간의 본성이다. No one is born hating another person because of the color of his skin, or his background, or his religion. People must learn to hate, and if they can learn to hate, they can be taught to love, for love comes more naturally to the human heart than its opposite.”
 
-Nelson Mandela, Long Walk to Freedom
 
검은 고라니 사슴이란 뜻의 ‘블랙 엘크Black Elk’라 불린 북아메리카 평원 인디언으로서 오그랄라(붉은 구름과 성난 말의 부족) 라코타 수어족語族 Sioux의 마법사Hehaka Sapa, commonly known as Black Elk (1868-1950)가 병든 사람이나 동식물을 위해 외던 주문呪文 가운에 이런 것이 있다.
 
땅 할머니시여,
내 말 좀 들으시오.
당신 품 안에서 우리는 
관계를 맺고 있지요.
두 다리, 네 다리, 날개 달린 짐승, 
그리고 당신 몸 안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 다 당신의 자손들이지요.
그러니 우리 모두다 
서로 친척임을 알지요.
 
미대륙의 원주민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우리 한민족과 같은 몽고족이라 하지 않나. 그렇다면 단군 할아버지 아니 우리 곰할머니께 빌어 볼거나.
 
비나이다
비나이다
물아일체
피아일체
홍익인간
홍익만물
인내천
우주인
나그네
코스미안
동식광물
하늘과
별들과
바다와
그 속에
숨 쉬는
모든 것
숨 멈춘 듯한
무생물까지도
나 자신으로
느낄 수 있게
깨우쳐주소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현재 온 인류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사회적 거리 두기로 격리 상태에서 고립된 고독감에 심하게 외로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은데 다음과 같은 내 막내 조카의 어릴 적 회상이 떠오른다.
 
“걸음마도 하기 전 아주 어렸을 때 시골집 마루에서 혼자 뒹굴며 온종일 놀던 때가 있었어요. 엄마는 장에 가시고. 햇빛의 색깔과 촉감이 달랐어요. 아침의 햇살과 한낮의 더운 기운 그리고 저녁에 지는 햇볕의 스며드는 느낌이. 구름과 바람, 하늘과 별과 달, 새와 벌레 소리, 주위의 모든 것이 나 자신과 분리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였는지 몰라도 난 조금도 무섭다거나 외롭다는 것을 모르고 그냥 즐겁고 편안했어요.
 
또 좀 컸을 때였어요. 보리밭 옆 풀숲에 깔아 놓은 포대기에서 일어나다간 넘어지고 몇 걸음 걷다간 또 넘어지고 하면서 길을 따라 언덕배기까지 아장걸음을 했었나 봐요. 그때 내 키보다 큰 보리 줄기들이 흔들리는 것이 눈에 띄었어요. 솨-솨- 하는 바람 소리도 들리고요.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하나의 장엄한 황금나무 숲이 내 눈앞에서 흔들거리고 있었어요. 하늘과 땅, 세상천지가 다 함께 웃음소리를 내며 춤을 추는 듯했어요. 나도 한가지로 어우러져 온 우주와 더불어 흥겨웠던 것 같아요. 이것이 내가 처음으로 듣고 본 아니 체험한 대자연의 음악이며 교향시였어요. 그때 황홀했던 그 기분과 느낌은 그 어떤 말이나 글로도 도저히 표현할 길이 없어요.”
 
아, 그러니 우리 모두 돌아가, 돌아갈거나, 원점으로, 우분투 Ubuntu 외치면서…

[이태상 칼럼] <'코스미안 게임' 창안創案을 제의提議하며 Proposing 'Cosmian Game'>

2021년 11월 13일자 미주 뉴욕 전자판 한국일보 오피니언 [발언대] 칼럼 <‘오징게임’vs.‘오징어 도박’> 필자 레베카 김은  “문화콘텐츠의 강국 대한민국, 살인적이고 폭력적인 사회에서 비윤리적이고 문제가 되고 있는 내용들을 어떻게 다른 방법으로 제작할 수는 없겠는가?”라고 이렇게 묻고 있다. 

[발언대] <’오징어 게임’ vs. ‘오징어 도박’

‘게임’과 ‘도박’은 함께 사용될 수 없는, 즐거움과 파괴를 내포하고 있는 서로 다른 두 단어다.

'도박'하면 라스베가스, 홈리스, 알코올 중독, 범죄가 함께 그려진다. 이들은 육체적으로 죽진 않는다. 다만 도박으로 인하여 갖고 있는 돈을 잃게 되고 사회에서 고립된다. 개인적으로 거리에서 구걸하는 자, 공동체에서 가정을 깨는 자가 되고,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소리, ‘한탕’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일상생활을 지속하기가 어렵다.

반대로 ‘게임’하면 어린이같이 천진하고 순진해 보이는, 가족 친지 사람들과 친목을 도모하기위해 웃음과 화해가 함께하는 다양한 놀이를 떠오르게 한다. 게임의 정의에 대하여 위키백과는 ‘… 즐기는 놀이’, 나무위키는 ‘놀이문화의 일종으로서 스트레스 해소 수단’, 레지 피서메이 닌텐도 아메리카 사장은 ‘게임은 즐거운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요즈음 넷플릭스에서 하늘로 뜨고 있는 ‘오징어 게임’이 있다. 필자는 ‘오징어 게임’은 아니지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줄다리기’, ‘구슬치기’, ‘딱지치기’, ‘삔 치기’등에 대한 동심의 추억이 있다.

뉴욕타임스는 11월3일자에 한국이 만들어낸 K팝스타 ‘BTS’와 ‘블랙 핑크’, 영화와 드라마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 등을 소개하면서 어떻게 한국이 전 세계를 강타하는 문화콘텐츠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기사화했다. 사람들이 보고 듣기를 원하는 이야기를 충족시켜주었고, 소득 불평등과 계급 갈등에 기반한 내용으로 한국만의 감성을 더함으로써 성공할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재미교포로서 문화콘텐츠의 강국이라는 표현, 자랑스럽다.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폭력적이고, 살인적이고,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불법 장기적출… 이렇게 잔인한 플롯이 ‘오징어 게임’에 들어갔어야 했는가? 의문을 제시해본다.

‘오징어 게임’ 참가자들은 빚에 쫓기며 삶의 벼랑 끝에 서있는, 공동체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게임’이라는 순한 단어가 접근한다. 단 한 명에게 부여되는 상금 456억, 456명이 참가한다.

‘오징어 게임’은 게임이 아니고 도박이다. 목숨을 내건 도박. 게임이 도박으로 둔갑하여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오징어 게임’이 ‘오징어 도박’으로 둔갑한다. 표면상으로 ‘오징어 도박’이라 했다면 상업적으로 흥행을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게임’이라는 그 단어에 쉽게 걸려든다. ‘도박’이라는 말 대신 ‘게임’이라는 친숙한 말에 사회에서 생각하는 그 불편함을 덜어낼 수 있기에, 그래도 쉽게 그 게임에 목숨을 담보로 내논다.

문제는 한사람이 이기기 위해 그 ‘한탕’ 을 갖기 위해 몇백 명이 죽어야하는, 컴퓨터에서 하는 게임이 아닌, 라스베가스에서 돈만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 사람의 목숨이 날아가는 ‘살인 도박’이다. 어떤 이는 말하길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고 빚에 찌들려 죽기는 마찬가지, 누가 아느냐 내가 그 ‘한탕’을 할 수 있을지? 모두가 똑같은 생각으로 살고 죽는 게임에 참가한다. 이건 틀림없는 ‘게임’이 아니고 ‘도박’이다.

문화콘텐츠의 강국 대한민국, 살인적이고 폭력적인 사회에서 비윤리적이고 문제가 되고 있는 내용들을 어떻게 다른 방법으로 제작할 수는 없겠는가?

<레베카 김 뉴저지>
 
같은( 2021년 11월 13일자 미주 뉴욕 전자판) 한국일보 오피니언 페이지 [시론] 칼럼 ‘우리말 용어의 중요성’ 필자 이경원 엘케이파트너스 대표 변호사는 “우리 문화를 외국에 알릴 때 웬만하면 우리말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도 새로운 현상에 대한 우리말 용어를 직접 만들어 쓰는 것만큼 중요하다. 왜냐하면 언어가 사고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고방식에 가장 걸맞은 도구가 우리말이기 때문에 외국의 표현이나 용어에서 더 빨리 벗어나야 한다. 영어를 쓰면 유식하다고 생각하던 시대는 지났다. 일본어는 말할 것도 없고.”라고 칼럼 글을 맺고 있다.

[시론] ‘우리말 용어의 중요성’ 

인구 5,000만 명을 넘는 세계 주요 국가 가운데 대한민국의 백신 접종률이 사실상 가장 높다고 한다. 중증 환자 비율은 물론 사망자 수도 주요 국가들 가운데 최상위권이다. 보건 분야는 물론 경제·군사 분야에서 세계 10위 이내고, K팝을 필두로 영화·드라마 등 문화 영역에서도 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다. 일시적 유행이라 생각했던 국내 여론과 달리 더 큰 영향력을 가질 것이라는 것이 외신의 평가다. 우리는 급속한 산업화·경제화를 위해 선진국의 교육제도를 받아들였고, 외국으로 무수한 유학생을 내보냈으며, 서구나 일본의 연구 체계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 충분한 고려 없이 외국의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지만 이에 대해 국민의 반감은 적었다. 하지만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코로나19 사태에 많이 사용된 용어 중 하나가 ‘의료붕괴’다. 유래를 검색해봐도 잘 나오지 않는다. ‘의료 체계의 마비 또는 불안정’ 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데 굳이 ‘붕괴’라는 표현을 썼다. 또 다른 예로 돌파감염을 들 수 있다. ‘breakthrough infection’을 직역한 것으로 보이지만 ‘돌파’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의미를 설명해야 한다. 그냥 ‘예방접종 후 감염’이라고 표현하면 뒤따르는 설명이 필요 없다. 단계적 일상 회복이라고 하면 될 것을 ‘위드(with) 코로나’라고 써서 설명해야 한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면 ‘breakthrough’나 ‘with’의 어감을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때 삼겹살을 외국에 ‘(grilled) pork belly’로 소개한 적이 있었다. 이런 용어로는 삼겹살이 가지고 있는 뜻(돼지의 특정 부위에 대한 의미), 불판을 이용한 한국식 조리법, 채소와 반찬을 이용해 먹는 법, 가족이나 친구들이 소주를 마시며 친목을 다지는 문화 등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지난 10월6일 영국 옥스퍼드사전에 26개의 한국어가 등재됐다. 앞으로도 계속 등재할 계획이라고 한다.
 
필자는 의대 본과 1학년 때 항상 낯선 용어의 바다 속에서 해부학은 라틴어나 영어 이름 외에 우리말 이름도 외워야 해서 이중의 고통을 겪었다. 사회 경험이 늘어남에 따라 외국 용어가 아닌 우리말 용어를 만들어 쓴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됐다. 개념에 대한 이해의 속도와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최초로 개발하거나 만들기 어려운 것은 기술이나 발명만이 아니다. 새로운 현상에 대한 개념을 정의하거나 용어를 만드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일본식 표현인 노포보다는 ‘오래된 가게’ 또는 ‘고포’라고 불러야 한국인은 빨리 이해한다. 오징어 게임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영어 더빙 및 자막인 ‘green light, red light’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미국인도 꽤 있었다고 한다.

우리 문화를 외국에 알릴 때 웬만하면 우리말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도 새로운 현상에 대한 우리말 용어를 직접 만들어 쓰는 것만큼 중요하다. 왜냐하면 언어가 사고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고방식에 가장 걸맞은 도구가 우리말이기 때문에 외국의 표현이나 용어에서 더 빨리 벗어나야 한다. 영어를 쓰면 유식하다고 생각하던 시대는 지났다. 일본어는 말할 것도 없고.

<이경권 엘케이파트너스 대표변호사>
 
자, 이제 ‘코스미안 게임’ 창안을 주문해보리라.
 
2021년 11월 4일자 미주 뉴욕판 오피니언 [정숙희의 시선] 칼럼 '지금 글래스고는 잘하고 있는가' 필자는 "우리는 모두 ‘지구호’라 는 한 배를 타고 있다. 아무도 배 밖으로 뛰쳐나갈 수 없고, 혼자서 만 생존할 수도 없다. 지금부터라도 푸른 행성 지구를 아끼고 치유 하고 보존해 한다."고 칼럼 글을 맺고 있다.
 
[정숙희의 시선] ‘지금 글래스고는 잘하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 우리의 무덤을 파고 있다. 이제 더는 안 된다.” (안토니오 구테레스 유엔사무총장)
 
“인류는 오래전에 남은 시간을 다 썼다. 지구 종말시계는 자정 1분 전이며, 우리는 지금 행동해야 한다.”(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지금은 정치를 뛰어넘어 행동해야 할 때이다. 우리의 아이들, 그 아이들의 아이들을 위해서.”(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이것은 훈련이 아니다. 지구는 ‘코드레드’ 상황이다.”(그레타 툰베리 환경운동가)
 
지금 영국의 글래스고에서는 기후변화 문제를 다루는 중요한 회의 가 열리고 있다. 26차 유엔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6), 전 세계 정상들과 기업인 언론인 환경운동가 등 3만명이 참석해 탄소배출 량 감축을 위한 협상과 협약을 이어가는 회의다. COP당사국은 197개국이며 130여명의 정상이 여기 참석했는데 탄소배출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중국, 러시아, 터키, 브라질, 남아공화국의 정상들은 빠졌다. ‘지은 죄’를 알고 손가락질 당하지 않으려는 뻔뻔한 발뺌이다.
 
유엔 기후총회에 올해처럼 큰 관심이 쏟아진 적은 없었다. 1995년 베를린에서 처음 시작된 이래 (작년에 팬데믹으로 건너뛴 것 외에는) 26년 동안 매해 개최됐지만 ‘교토의정서’가 채택된 3차 COP와 ‘파리기후협약’이 결의된 21차 COP 외에는 대체로 지지부진, 흐지부지했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전 지구적 기후재앙을 목도한 결과다. 지역을 가리지 않는 홍수, 가뭄, 폭염, 태풍, 산불이 이어지자 공동의 위기의식이 커진 것이다.
 
COP의 일관되게 가장 큰 목표는 2050년까지 지구온도 상승폭을 1.5℃ (2.7℉)로 제한하자는 것이다. 기준은 산업혁명 이전이고, 지금현재는 그때보다 1.2도 상승한 상태다. 그러려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45% 줄여야하는데, 현재의 추세론 오히려 16.3%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많은 기후과학자들은 COP26에서 어떤 합의가 나오더라도 2050년까지 1.5도 목표는 달성되지 않을 것이라고 비관한다.
 
지금 글래스고에 모여든 기후운동단체들도 COP26 회의에 큰 기대와 희망이 있어서가 아니라 세계 지도자들의 무책임과 실패에 대해 항의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집결한 것이다. 행사장 밖에서 시위 를 벌이는 이들은 이제 기후위기의 해결을 각국 정부에 맡기지 말 고 세계시민들이 나서자며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그 한가운데에 미래세대의 상징이자 기후운동의 아이콘이 된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가 있다.
 
툰베리는 15세 때인 2018년 8월 스톡홀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후를 위한 학교파업’ 1인 시위를 시작한 소녀다. 이후 금요일 마다 등교를 거부하고 지구온난화를 방치하는 정치인들에게 항의 하는 그의 ‘기후파업’에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기 시작했고, 석달 후에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이란 이름으로 전 세계 청소년과 환경단체들이 함께하기 시작했다. 그해 COP 24에 초청돼 “미래가 사라질지도 모르는데 제가 왜 공부해야 하나 요?”라는 한마디로 유명해진 툰베리는 최연소 환경운동가로 노벨 평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심플한 영어로 단호하고 퉁명스럽게 질타 하는 툰베리의 어록을 제발 정치인들이 귀 기울여 듣기를 바란다. 
 
“여러분, 제가 매일 느끼는 공포를 느껴주세요. 그리고 행동해주세요. 위기를 당한 것처럼, 집에 불이 난 것처럼 행동해주세요.”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죽어가고 있습니다. 생태계 전체가 붕괴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량멸종의 시작점에 있는데 여러분이 말하는 것은 오직 돈과 영원한 경제성장 이야기뿐입니다.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어요?”
 
“우리 젊은이들은 여러분의 배신을 알기 시작했어요. 우리를 실망 시킨다면 결코 여러분을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치가들에게 과학에 귀를 기울이고 더 늦기 전에 행동하라고 촉구합니다.”
 
“기후위기는 오늘의 정치 경제 시스템 안에서는 해결될 수 없습니 다. 이건 의견이 아니라 팩트예요. 진실은 불편하고, 인기없고, 이득도 없지요. 모두가 벌거숭이 임금님이에요. 전체 사회가 하나 의 거대한 누디스트들의 파티입니다.”
 
이번 기후총회에서 아직은 이렇다 할 규제협약이 도출되지 않았다. ‘1.5도 상승억제’라는 총론은 있지만 이를 시행하기 위한 각론은 없는 상태다. 2일 미국이 대폭적인 메탄배출감축 계획을 발표했 고, 100여개국이 산림파괴를 멈추는 ‘산림·토지이용선언’에 합의 했지만, 이 정도로는 지구온난화의 속도를 따라잡기조차 어렵다. 12일까지 계속되는 COP26에서 보다 획기적인 조치들이 나와 주기를 기대한다.
 
한가지 희망적인 사실은 이제 기후문제가 전 지구적 관심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만 해도 크나큰 진전이다. 문제의식이 생기면 행동이 따르게 마련이니까.
 
우리는 모두 ‘지구호’라는 한 배를 타고 있다. 아무도 배 밖으로 뛰쳐나갈 수 없고, 혼자서만 생존할 수도 없다. 지금부터라도 푸른 행성 지구를 아끼고 치유하고 보존해야한다. 
 
<정숙희 논설위원>
 
지난해 10월 13일자 코스미안뉴스에 올린 우생의 칼럼 우리 되새겨보자.
 
[이태상 칼럼] '때는 바야흐로 신천지개벽(新天地開闢) 코스미안 시대가 열리는 것이리라'
 
“저는 어른들이 희망을 품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저는 어른들이 두려워하기를 바랍니다. 저는 어른들이 제가 매일 느끼는 공포를 느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는 어른들이 행동하기를 바랍니다. 저는 어른들이 우리 집이 불타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기를 바랍니 다. 왜냐하면 우리 집이 지금 불타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웨덴의 10대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 2003 - )의 말이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코스미안이라 할 수 있는 이 소녀는 2018년 부터 다음과 같은 말도 했다.
 
“(세상을 바꾸는 데는) 나이 어린 것이 문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알게 됐다. I have learned you are never too small to make a difference.”
 
“바로 여기, 바로 지금 당장 우린 선을 그어야 한다. 세상이 깨어나고 있다. 싫든 좋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Right here, right now is where we draw the line. The world is waking up. And change is coming whether you like it or not.”
 
“우리 함께 힘을 합하면 아무도 우릴 막을 수 없다. Together and united, we are unstoppable.”
 
“행동해야 한다. 불가능한 일을 감행해야 한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You must take action. You must do the impossible. Because giving up is never an option.”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정치적인) 권력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여론을 선도할 수 있는) 대중매체 미디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현재 우리가 직면한 기후변화와 코로나19 팬데믹) 이 위기를 인류 생존의 실존적인 비상사태로 즉각 대처하는 절체절명絶體 絶命의 계기로 삼는 일입니다. I have a dream that the people in power, as well as the media, start treating this crisis like the existential emergency it is.”
 
“머지않아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을 미래를 위해, 아무도 이 미래 가 존재할 수 있도록 아무 일도 하지 않는데, 어떻게 내가 그 무슨 공부를 할 수 있겠습니까? Why should I be studying for a future that soon may be no more, when no one is doing anything to save that future?”
 
“우리가 뭔가를 성취하기로 결정하는 순간, 우린 어떤 일도 다 할 수 있다. The moment we decide to fulfil something, we can do anything.”
 
“우리에겐 안전한 미래가 있어야 하고 그런 안전한 미래를 보장해야 한다. 이것이 어떻게 무리한 요구가 될 수 있겠는가? We deserve a safe future. And we demand a safe future. Is that really too much to ask?”
 
우리 모든 사람 속에 살아 있을 어린애 코스미안 순례자를 옛 소련의 천재 소녀 시인 니카 트루비나(Nika Turbina 1974-2002)가 대변했듯이, 아마도 니카 트루비나가 환생(還生/幻生)한 것이 그레타 툰베리임에 틀림없어라.
 
"날 무섭게 하는 것은
사람들의 무관심이에요.
우리의 냉담한 무관심이
세상을 삼킬 것만 같아요
작은 이 우리의 지구를
우주 한가운데서 뛰는
이 작은 코스모스 심장을"
 
또 이 작은 코스모스 심장의 대변아代辯兒는 ‘점치기 Telling Fortunes’라는 시에서 이렇게 탄식했다.
 
"내가 점쟁이라면
그 얼마나 좋을까
난 꽃으로 점치고
무지개로 세상의
모든 상처들을 다
아물게 할 텐데
 
What a shame that
I’m not a fortune teller.
I would tell fortunes
only with flowers
and I would heal
the earth’s wounds
with a rainbow."
 
아, 이 두 요정妖精 같은 구원久遠/救援의 소녀상少女像 코스미안의 엄중嚴重절박切迫한 메시지를 즉각 행동에 옮겨 인류를 포함한 이 지구별에 잠시 머무는 만물을 살리고 보존하는 일은 아직 살아 숨 쉬고 있는 우리 모든 코스미안의 몫이어라.
 
그래서 우주 일 년의 주기 중 우주의 선천 '봄개벽'과 여름이 모두 끝나고 우주의 가을이 새로 시작되는 우주의 후천 '가을개벽', 곧 새 하늘 새 땅이 열리는, 신천지개벽新天地開闢 코스미안시대가 열리고 있는 이제 때는 바야흐로 한류는 인종과 국적, 이념과 사상 의 지평선을 넘어 우주적인 비전을 제시할 때가 왔어라.  
 
이 우주적 비전이란 다름 아닌 우리 홍익인간/홍익만물과 인내천의 우도宇道코스미안주의 Cosmianism을 뜻하는 것이어라.
 
머리 좋고 가슴 따뜻한 한국인 특히 코스미안뉴스 애독자 여러분 께서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모색해주실 것을 간곡히 당부하면서 우견을 이렇게 제의해보리라.
 
지구호가 뜻밖의 코로나라는 암초에 걸려 수많은 사람이 카오스로 변한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절체절명의 이 위기를 맞아 너 죽고 나만 살자는 '오징어 게임'을 우리 모두를 살리는 '코스미안 게임'으로 업그레이드upgrade 격상格上 승화昇華시켜 주실 것을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이 ‘코스미안 게임’이란 곧 ‘코스미안 프로젝트’를 뜻하는 것으로 지구촌 온 인류 모든 사람의 적극적인 동참을 앙망해 마지 않는 다.
 
코스미안 프로젝트

1. 유엔을 대체할 씨유 - 그 본부를 서울에 창설 Founding The CU(Cosmian Uniion) to replace The UN – Hosting Its Headquarters in Seoul

2. 비무장지대에 세계평화공원 조성 Building The WPP (World Peace Park) at DMZ

3. 한반도 평화통일 정당 코스미안당 창당 Founding The Cosmian Party (Peaceful Unification of Korea Political Party)

4. 글로벌 코스미안대학 평창에 설립 Founding The Global Cosmian University in Pyongchang, Korea

5 코스미안상 - 올해로 제3회째가 된 코스미안상을 노벨상을 능가하는 영예롭고 뜻깊은 상으로 격상 Sponsorship of The Cosmian Prize (the 3rd this year) eventually to surpass the Nobel Prize in honor and significance, and etc.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1230ts@gmail.com


전명희 기자
작성 2021.12.16 10:20 수정 2021.12.16 11:10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전명희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동영상 더보기
2025년 4월 25일
2025년 4월 25일
전염이 잘 되는 눈병! 유행성 각결막염!! #shorts #쇼츠
2025년 4월 24일
2025년 4월 23일
2025년 4월 22일
나는 지금 '행복하다'
2025년 4월 21일
2025년 4월 20일
2025년 4월 19일
2025년 4월 18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6일
2025년 4월 15일
2025년 4월 14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