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프로젝트] '삼풍, 거평, 타다, 사라지는 이름들'

신명호

사진=코스미안뉴스


자기 것이지만 남이 더 많이 쓰는 것은? 정답은 이름이다. 앞으로 타다를 타기 힘들어진다. 참으로 안타깝다. 사실 나는 택시 탈 일이 많지 않은지라 타다를 타보지 못했다. 어느 자리에서 타다와 택시의 대립에 대한 의견들이 오갔는데 젊은 여성 대부분은 택시보다 타다가 더 좋다고 했다. 특히 밤에 혼자 택시를 타면 늘 불안했는데 타다는 안심이 되어 좀 비싸도 타다를 부른다고 했다


타다와 택시 어느 쪽의 편을 들 생각은 없다. 지인 중에 택시 기사도 있고 타다 기사도 있다. 가끔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둘 다 맞는 소리 같다. 물론 둘을 함께 만나지는 않는다. 혁신도 중요하고 택시기사들의 생존권도 중요하다. 나는 어느 쪽이 옳다거나 명쾌한 해법을 내놓을 수준은 못 된다. 단지 이름을 왜 타다로 지었는지 의문이 갔다.


차에 타다는 뜻도 있지만 불에 타다는 뜻도 있다. 타다를 막겠다고 자신의 몸까지 태우는 사태를 보면서 왜 타다로 지었는지 안타까웠다. 이름을 짓는 방법을 집대성한 성명학이라는 게 있다. 거기에는 이름을 지을 때 피해야 할 글자들과 뜻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들리냐는 음운론에 따라지어야 한다는 내용들이 정리되어 있다. 그걸 읽다 보면 반신반의하게 된다. ‘이름 하나 잘못 지었다고 정말 문제가 될까?’ 그런 의문에 답이 되어준 이름에 대한 전설이 몇 가지 있다.


삼풍 백화점. ‘삼풍을 소리로 풀면 풍 풍풍이다. 소리 내서 읽어보면 삼풍 백화점 무너지던 순간이 눈앞에 선하게 떠오를지 모른다. 어느 작명가 얘기로는 삼풍도 무너질 이름이고 거평하는 소리와 비슷해서 기업 이름으로는 좋은 이름이 아니라고 했다. 과연 삼풍과 거평의 결과가 이름 때문일까? 삼풍과 거평이 이 세상에 나온 이후로 수많은 사람들이 삼풍, 거평이라는 말을 수만 번 입에 올렸을 것이다


음운론자들에 따르면 그 순간마다 그들 무의식에는 풍비박산, ~! 하는 이미지가 동시에 떠오른다고 한다. 그런 무의식이 알게 모르게 현실의 작은 부분들에 영향을 미치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영향들이 쌓이고 쌓이면 눈에 보이는 결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정말 믿거나 말거나한 소리다


삼풍이 무너질 이름이라는 성명학의 음운론적 해석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신작가가 만난 그런 사람들 중에는 그 불신의 대가를 톡톡히 치른 사람들도 있다. 신작가가 삼성 신입사원 연수를 받을 때 벌어진 일이었다. 어느 날 비즈니스 게임을 했다. 조별로 가상의 회사를 경영하는 시뮬레이션 게임인데, 진행을 맡은 과장님이 당부했다. 회사 이름을 장난으로 지으면 안 된다고. 작년에도 망해라 주식회사로 지은 팀이 제일 먼저 부도가 났다고 했다.

 

우리 조는 승리 기업으로 지었고 성적은 중간 정도 했다. 대부분 평범한 이름을 지었는데 한 조가 삼풍 기업으로 지었다. 그들은 이름 때문에 망한다는 건 미신이라고 떠들며 자신들이 새로운 신화가 될 거라고 호언장담했다. 결과는 최단 시간 부도였다. 그 대가로 비즈니스 게임이 끝날 때까지 운동장을 뛰어야 했다


그때는 1, 꽤나 추운 날씨였다. 그들은 의식적으로 그런 건 미신이야, 우리는 성공할 거야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모두의 무의식에서는 삼풍 기업이 망할 거야라는 기제가 작동한 것일까? 개인의 의식보다 집단의 무의식이 더 강한가? 자기 것이지만 남이 더 많이 쓰는 이름은 자기 입장보다는 남의 입장을 생각해서 지어야 한다. 자신과 남의 관계, 남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으로 지은 이름이 소중하다.


내가 충무로에서 연출부를 두 작품 했는데 첫 작품은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였다. 당시 남부군을 연출하고 승승장구하던 정지영 감독이 야심 차게 찍은 작품이었는데 결과는 산산이 부서졌다. 충무로에서는 이름을 잘못 지어서 그렇다는 풍문이 한차례 돌았다. 사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은 하나 더 있다. 영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의 원작자가 고은이다. 두 번째 작품이 하얀 비요일이었다. 당시에는 스타였던 변우민, 옥소리, 이경영, 김민종이 출연했는데 역시 결과는 하얗게 날 샜다.

 

어떤 시각 디자이너는 타다의 로고에서 ㅌ, ㄷ의 기둥이 없어서 불안해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기업 로고로 쓰기에는 적절치 못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기둥이 없어서 무너지는 이미지가 있다는 것이다. 한 입 베어 물어 먹은 애플의 로고도 언젠가는 상할 것이라는 말도 있다. 먹던 사과라는 무의식적인 이미지가 기업의 수명에 한계를 지울 것이라는 이야기였는데 정말 미신처럼 들린다.

 

아브라카타브라는 히브리어로 말한 대로 이루어지리라라고 한다. 말 함부로 하면 안 된다. ‘말이 씨가 된다는 옛말처럼 말은 우리 무의식을 지배한다. 특히 이름은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자꾸만 사라지는 이름들을 보면서 이름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한다. 때로는 사라졌으면 하는 이름도 있다. 코로나19, 전쟁, 혐오, 차별, 독점, 왕따, n번방...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는 이름은 무엇일까? 화해, 인내, 소통, 나눔, 이해, 도움, 감사... 오늘 하루를 좋은 하루로 이름 지어 부르며 좋은 하루가 되도록 주문을 걸어야겠다.

 

좋은 하루, 아브라카타브라~!”

 

글=신명호

 

이정민 기자
작성 2021.12.28 10:15 수정 2021.12.28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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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