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윤문기]
남해에는 삼자가 있다. 유자, 치자, 비자다. 유자는 모두 다 아시겠지만 11월 말 남해 전역을 노랗게 물들이며 익어간다. 그 색깔도 예쁘지만, 유자청으로 만든 유자차, 유자빵, 유자막걸리 등 다양한 남해 먹거리로 재탄생했다.
치자는 남해의 유월과 칠월의 들녘에서 하얀 꽃과 매혹적인 향기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남해군화다. 그리고 비자는 열매를 구충제로 사용할 만큼 사람을 이롭게 하는 남해군목이다. 그리고 500년 넘은 오래된 나무로는 바둑판을 만든다.
비자나무로 만든 바둑판은 천년이 지나도 모양을 그대로 유지한다. 그 비자나무가 있는 동산을 지나는 길이 바로 ‘비자림해풍길’이다. 남해바래길 2코스 ‘비자림해풍길’은 이동면 행정복지센터를 지나 남해 강진바다를 끼고 걷은 길이다.
봄이면 숭어가 여름이면 전어가 뛰어오르는 남해 강진바다는 한자로 나루 진(津), 물 강(江)을 쓴다. 예전에 삼천포로 가기 위해 여객선이 다녔었는데 그때 강진바다 인근 마을에 나루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나루 진(津)을 쓴다고 하는데 나도 어릴 적에는 할머니 따라 삼천포장날에 몇 번 간 적이 있어 강진바다 인근 마을마다 부두에서 사람들을 태웠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그리고 이 길의 끝자락에는 원시어업인 죽방렴도 볼 수 있는 길이다. 남해바래길은 산으로 해안으로 연결되면서 다양한 풍경들을 감상할 수 있는데 비자림해풍길은 대부분 바다를 옆에 끼고 걷는 길이기에 바다가 없는 지역에서 오신 분들이 걸으면 저절로 탄성이 나오는 길이다.
비자림해풍길은 비지나무가 많은 숲을 지나가는 9km로 사부작사부작 걷다 보면 약 3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길이다.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로 유배 가서 제자였던 이상적이 책을 보내오고 권력의 끈이 떨어진 자기를 찾아오니 이렇게 말했다. 태사공 사마천이 이르기를, “권세와 이익으로 합한 자는 권세와 이익이 다하면 사귐도 성글어진다고 했다. 그대 또한 세상의 도도한 물결 가운데 한 사람으로, 초연히 도도한 권세와 이익의 밖으로 스스로 벗어나니, 권세와 이익이란 기준으로 나를 보지 않음인가, 태사공의 말씀이 잘못되었는가”라며 세한도를 그려 주었고 발문에 글도 써 주었다.
그 세한도에는 소나무와 잣나무가 그려져 있는데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름은 겨울이 되어야 안다는 것이다. 인간사란 것이 권력이 떨어진 다음에도 늘 한결같은 사람을 보고 진정 내 사람이란 걸 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비자림 해풍길을 걷다가 혼자 상상의 날개도 펴 보았다. 남해 유자, 치자, 비자나무는 모두 겨우내 푸르다. 추사 김정희가 남해로 유배 왔다면 세한도의 그림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노란 열매가 매혹적인 유자와 짙은 꽃향기로 유혹하는 치자, 사람의 몸을 이롭게 하는 비자나무들은 겨우내 푸르다. 유자, 차자, 비자를 삼자로 삼는 남해에 바래길이 있다. 그 바래길 중에서 ‘비자림해풍길’에서 좋은 사람들과 자연을 벗해 걷는 것은 인생의 더할 나위 없는 낙이요 행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