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중앙선 전철 안에서 바라보이는 한강은 안개가 자욱하다. 오늘같이 물안개가 자욱한 날, 한강 옆의 예봉산을 오르면 한강과 두물머리, 그리고 주위 산군을 덮은 운무의 장관을 볼 수 있다. 일출로도 유명한 예봉산에서 올해 첫 산행을 시작한다.
산 들머리인 팔당역 광장에서 도로 좌측 양평 쪽으로 약 300m 정도 이동하면 식당이 모여있는 등산로 입구가 나타난다. 예봉산 산행은 주로 이곳 팔당2리에서 출발한다. 철길 굴다리 아래를 통과해서 민가들을 지나면 작은 가게가 있는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좌로 가면 경사가 다소 급하지만 한강을 조망하면서 정상을 오르는 길이고, 바로 가면 경사가 완만한 계곡을 따라 쉼터를 거쳐 예봉산이나 예빈산을 오르는 길이다. 햇빛이 강해지면 서서히 없어질 물안개가 걱정되어 조바심을 내며 좌측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겨울 산속은 벌거벗은 낙엽송과 앙상한 나뭇가지, 등로에 쌓인 낙엽들로 스산함을 더하고 있다. 정상에 있는 강수관측소를 잇는 모노레일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걷다 보면 율리봉 산자락에 핀 하얀 상고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급한 비탈을 치고 오르다가 뒤를 돌아보며 잠시 숨을 고른다. 발아래로 한강, 팔당역, 팔당대교, 하남시 아파트 단지가 시원스레 시야에 들어오고 팔당댐 너머 검단산이 바로 코앞에 있다.
마루금으로 불어오는 차가운 겨울바람이 이마 위로 흐르는 땀을 날려 보낸다. 예봉산은 쉽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서너 개의 중간 봉우리를 통과해야만 자신의 속살을 보여주는 산이다.
산봉우리를 넘을 때마다 곧 나타날 것 같은 정상은 늘 그렇듯이 쉬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상을 향해 가고 있는 모습에서 우리네 人生을 생각한다. 불투명한 목표를 향해 쉬임없이 나아가야 하는 삶의 여정 속에서 세월은 유수처럼 흐르는 것이 아닌가?
강, 나무, 숲, 하늘, 운해 같은 보이는 자연들과 함께 자신이 하나 됨을 느끼며 산오름을 하다보니 강수관측소가 나타나고 정상 아래 간이매점에는 추위를 피하려는 산객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이윽고 1시간 반 만에 예봉산 정상에 오른다.
정상에 올라서니 마치 신선이 되어 무릉도원에 서 있는 느낌이다. 물안개 핀 한강, 주위의 산군과 두물머리는 완전히 구름바다 속으로 잠겨있다. 팔당댐 너머로 검단산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데 어찌나 안개가 짙은지 산 높이를 가늠할 수 없을 지경이다.
예봉산 건너편으로 운길산 산그리메가 보인다. 예봉산과 운길산은 연계하여 산행을 많이 하는데 예봉산에서 운길산까지는 말발굽 모양인 ㄷ자 코스로 산행이 이루어진다. 정상에서 철문봉 방향으로 내려서는 하산길은 잔잔한 바람 소리, 새소리, 들리는 모든 것들이 그저 조용조용 흐르듯이 아늑하고 향기롭다.
예봉산 정상에서 좌측으로 10분 정도 내려가면 제법 넓은 억새밭이 나온다. 조망이 터진 곳이라 등로 좌측으로 한강과 서울지역 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양지바르고 따뜻해서 식사나 간식을 즐기기 딱 좋은 곳이다.
억새밭을 지나면 다산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이 자주 오른 철문봉이 있다. 예봉산, 운길산, 수종사는 이 지역 출신인 다산 정약용과 인연이 깊은 곳이기도 하다. 솔잎과 낙엽이 깔린 편안한 흙길을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산길이 정겨워진다.
적갑산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에는 오래된 소나무가 많아 산행의 운치가 넘친다. 능선 좌우에 예사롭지 않은 낙락장송들이 빼어난 기품을 뽐내고 있다. 잘생긴 소나무들이 멋진 숲을 이루며 그윽한 솔향을 마구 뿜어내는 사잇길을 유유자적 걷는다.
적갑산에 도착하기 전에 만나는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은 예봉산 최고의 전망대다. 능선을 평탄하게 깎아서 만든 활공장 위에 서면 저 멀리 구리시와 강동대교 그리고 오른쪽으로 덕소가 보이고, 오늘은 날씨가 맑아 북한산과 도봉산까지 조망된다.
활공장을 지나면 이내 적갑산 정상이 나온다. 적갑산을 지나 부드러운 마루금을 편하게 걷다 보면 도곡리와 운길산 방향으로 분기되는 삼거리가 나타나고, 여기서 도곡리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나목들과 쉬엄쉬엄 이야기하며 느릿느릿 걷다 보니 도곡리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고향 마을로 들어가는 것처럼 굽이굽이 오솔길은 이어지고 굴뚝에서 연기까지 따스하게 피어오른다. 참으로 오랜만에 만나는 정겨운 풍경이다.
여계봉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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