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난곡사 이야기

겨울 난곡사에 깃든 따뜻함



우리나라에 성리학이 들어오게 된 계기를 보면, 충선왕이 세자인 충숙왕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충선왕은 연경으로 가 만권당을 만든다. 이때 충선왕을 따라 연경으로 갔던 사람 중에 안향, 권준, 이재 백이정 선생이 있었는데, 1년 후 돌아온 안향이 원나라 연경으로부터 주자전서(朱子全書)를 필사한 것이 성리학의 최초이며, 권준(松齋 權準)이 주자사서집주(朱子四書集註)를 들여온 것이 둘째이다.

 

그러나 이재 선생은 연경에 10년간 머물면서 성리학을 접하게 된다. 그 성리학을 배우고 연구하여 충선왕과 같이 귀국하면서부터 후학들에게 널리 성리학을 보급하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들여온 기본적 공로자는 안향 선생이지만, 이를 발전시킨 일등 공신은 이재 백이정 선생이라고 한다.

 

그런 이재 백이정이 남해로 유배를 왔다. 백이정이 남해에 머물던 곳에 난곡사를 세워 그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고 있다. 난곡사에서는 해마다 음력 310일이면 이 고장의 유림들이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제례를 올리고 있다.

 

남해 난곡사는 이재 백이정을 모시는 사당이긴 하지만 제자 이제현, 박충좌를 같이 배향하고 있고 또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을 도와 나라를 구하고 벽파진해전에서 전사한 남해사람 이희급도 같이 모시는 사당이다.

 

난곡사는 1925년에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이희급이란 이름이 나온다. "1597(정유년) 1010(양력 118) 사경에 비가 뿌리고 된바람이 세게 뿌렸다. 항해를 할 수 없어 그대로 머물렀다. 밤 열 시쯤에 중군장 김응함이 와서 전하는데, '해남에 있던 적들이 많이 물러간 모양입니다. 이희급의 부친이 적에게 사로 잡혔다가 빌어서 놓여 왔습니다.'라고 했다. 마음이 언짢아서 앉았다 누웠다 하다가 새벽이 되어서 이정충이 배에 왔는데 만나지 않은 것은 바깥 섬으로 달아나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적고 있다.

 

“1597(정유년) 1011(양력1119) 맑다. 조계종이 와서 왜적의 사실 형편을 말하고 또 왜군들이 우리 수군을 몹시 싫어한다고 했다. 이희급의 부친이 와서 알현하고 또 사로잡혔던 경위를 말하는데 아픈 마음을 견딜 수 없었다.”라고 또 적고 있다.

 

여기서도 이순신 장군의 백성 사랑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겨울 난곡사에 가면 백이정처럼 고고한 학자의 넋을 만날 수 있고 이희급처럼 제 몸을 바쳐 나라를 구한 의로운 넋을 만날 수 있다.

 

남해가 품은 겨울 난곡사는 춥되 춥지 않은 따뜻한 곳이다. 백이정처럼 따뜻한 학문을 나눈 사람이 있고 이희급처럼 따뜻한 애국을 실천한 사람이 있는 곳이다. 이 한겨울에 난곡사를 찾아가면 더욱 따뜻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서재심]

시인

남해군문화관광해설사

코스미안뉴스 객원기자

서재심 alsgml-2@hanmail.net


서재심 기자
작성 2022.01.12 10:59 수정 2022.01.12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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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