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구 칼럼] 나의 자서전

문경구

 

주치의를 만나기 위해 약속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해 차 안에서 기다리는 동안 많은 일들을 떠올리는 것이 내게는 큰 버릇이 되었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역사 속 기억들은 세월에 탈색된 그 모습 그대로 내게 다가온다.

 

아침 출근 때 버스에 탄 사람들을 젓갈을 담그듯 눌러 담던 그때가 그리워지면 내가 몰고 온 자동차가 싫어진다. 나는 그때의 기억을 만난다. 인생의 자서전을 쓰는 일이란 그렇게 오고 가는 기억들을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글로 남겨 놓는 것이다. 기록은 기억보다 위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서전은 위인이나 정치가, 혹은 재력가들만 쓰는 것이 아니다. 평범하고 보잘것없고 낮은 사람들의 자서전이 더 진솔하고 감동과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주치의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이 순간에도 나는 자서전을 쓴다.

 

책 속에 묶어두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시간이다. 안타까운 나의 추억을 만나고 싶은 순간이고 방황하던 나의 인생 이야기를 펼쳐놓고 싶은 순간이다. 이 순간의 기억들은 편집도 수정도 할 수 없는 채 써 내려간.

 

반백의 머리카락을 거울 속에서 만나면 너무 낯선 사람이 되어있는 나를 자서전에 옮긴다. 지금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면 그 옛날 미국회사에서 시험을 볼 때 본 사람들의 얼굴과 너무도 똑같다. 그때 유학을 다녀와 나와 함께 시험을 본 응시생들의 부잣집 아들 같은 고급스러웠던 외모를 지금까지 기억하듯 그들도 초라한 외모로 주눅이 들어 있던 나를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세련되고 지적인 외모에 눌렸던 주눅이 지금까지도 내 안에 눌어붙어 있다. 하지만 그들로 인하여 나에게는 손꼽아 셀 만큼 아름다운 추억이 차고 넘고 있다. 타자기가 있는 집도 없었고 타자수란 타이틀은 여자들에게만 국한되었던 그 시절, 두꺼운 종이 위에 헌 단추들로 타자기 자판을 만들어 놓고 장님이 점자를 더듬듯이 배운 것을 인터뷰 때 과시했던 기억이 내 삶의 보배로운 유산이라는 이야기도 나의 자서전에 자주 써 놓는다.

 

유학을 다녀온 응시자들은 나처럼 한글 타자와 영문 타자 자격증 두 개 모두를 갖추지는 못한 이유로 합격이란 행운을 내게 양보해야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무슨 수로 엉어가 능숙한 그들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 또한 나의 인생에서 잊지 않고 싶은 멋진 추억이다.

 

미국회사는 영문과 한글 타자를 동시에 쳐서 돌맹이 하나 던져 두 마리 새가 떨어지는 꼴을 보자는 게 그들 식이였다. 미국 상사가 써준 기안을 타이핑해서 내가 직접 운전하며 외국 은행이며 한국 기업을 찾아 나서야 하는 혼줄은 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났다.

 

부셔놓은 라면 같은 그들의 글씨체가 익숙할 때쯤이면 상사가 바뀌어 또 다른 글씨체를 익히는데 얼마나 혼구멍이 났었던가. 영어가 능숙지 못하니 사전을 한 손에 펴놓고 미국 사람에게 들은 말을 한글로 써두었다가 사전을 찾아보면서 앵무새처럼 영어를 반복해가며 일을 마치고 나면 등줄이 홈빡 젖어 버렸다.

 

대기업 총수들과 회의 중 미국 직원들 점심을 호텔 레스토랑에서 주문할 때, "메요 뺀 센드위치 하나를 주문하라고 할 때 그놈의 "메요" "마요네즈"인줄 몰라 받은 망신살로 배를 채운 날도 있었다. 마요네즈라는 당당한 말을 두고 왜 바보같이 "메요"라고 하는지 그들을 탓할 시간도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 한국 신문에 곁 달린 반장의 영자신문 외엔 흔치 않았던 그때였다. 그날도 국내 최고 기업에서 회의를 마칠 때까지 빈 회의실에서 내조 상궁처럼 기다리는 시간을 영자신문 속 단어들과 익숙해지는데 온 정신을 쏟았다.

 

이 젊은이는 여기서 뭘하시는가누군가의 소리에도 나는 관심이 없었다. 마치 선풍기 바람에도 날아갈 듯 거미처럼 앙상한 몸매의 노인이 내게 한 말이다. “, 이 젊은이, 젊음 좀 보게나, 바지가 터질 듯한 다리 좀 보게나하면서 양옆에 서 있는 깍은밤 같은 정장의 두 남자와 뒤에 서 있는 인민군 복장처럼 각진 정장을 한 여자에게 말하니 모두 눈으로 웃는 등 고개만 끄덕이면서 자리를 떠났다.

 

나는 그때 그들이 누군지 알 필요조차 없었다. 당장 발등으로 떨어지는 공사전문 영어단어 하나라도 앵무새처럼 외어 나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 전부였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 노인이 되어 그날을 기억한다. 얼마나 늙음이 안타까웠으면 지금의 나처럼 밤잠을 못 이루었을까 하는 짐작이 지금 나를 심히 괴롭히고 있다.

 

그 후 그 빌딩을 다시 찾았을 때 그 노인분과 함께하던 사람들 중에 한쪽에 섰던 사람이 나를 먼저 알아보면서 놀라워했다. 고개만 끄덕 나눈 인사에서 그 노인은 한국에서 가장 돈이 많은, 최고의 그룹 회사 창시자였다는 거창한 말로 나를 이해시켰다. 그 소리에도 시큰둥했던 이유는 그분의 얼굴에서 백만장자의 모습을 찾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나를 보고 떠난 뒤 그 노인은 나의 젊음을 애써 잊지 못하는 것 같다는 말이 더 기억에 남았다.

 

회장님의 부러움을 샀던 그 젊은이는 그때 아무 소리도 낼 수 없는 앵무새였지만 지금 추억을 바라보는 늙은 몸이 되어있습니다. 당신께서 몹시도 부러워하시던 그 젊음 하나 믿고 당당하게 살던 그 날들은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어른께서는 그렇게 많이 소유하셨던 부를 본래의 무소유의 자리로 돌려놓으셨습니까.

 

저는 본디 허락된 소유가 없었습니다. 어른께서 부러워하셨던 유일한 저의 젊음도 그만 모두 써버리고 말았습니다. 바로 그때의 그 젊은이가 오늘 이렇게 가버린 날들과 가야 할 날들에 대한 실어증 환자로 남았습니다. 창졸지간 속 기억이라도 한국 역사에서 돈이 가장 많으신 분과의 추억이 담긴 벅찬 가슴이 있어 행복합니다.

 

그래도 저는 무소유의 지금 이대로가 좋습니다. 다음 세상에서 뵈면 어르신과 반반씩 나누어 살면 어떻겠습니까. 그 반속에는 저의 서슬 퍼렇던 젊음의 기억을 덤으로 드리겠습니다. 내 안의 인생의 답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두기보다는 이렇게 바람에 모두 흩날려가게 하고 싶습니다.”


[문경구]

화가

수필가

코스미안뉴스 칼럼니스트

문경구 kimurgin@hotmail.com


작성 2022.01.18 11:13 수정 2022.01.18 11:37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전명희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동영상 더보기
새의 자유
가을하늘
백범의 길 백범 김구 찬양가 #애국의열단 #애국 #의열단 #독립운동가 ..
바다
광안리 바다의 아침
2025년 8월 18일
정명석을 조종하고 있던 진짜 세력
갈매기와 청소부
즐기는 바다
광안리 야경
2025년 8월 15일
의열투쟁단체 ‘다물단’ 이규준 | 경기도의 독립영웅
불빛으로 물든 바다
흐린 날의 바다
바다, 부산
2025년 8월 14일
동학농민 정신 #애국의열단 #애국 #의열단 #독립운동가 #반민특위 #친일..
전봉준 동학농민혁명 #애국의열단 #애국 #의열단 #독립운동가 #반민특위 ..
#국가보훈부 #이승만 #독립운동가
#친일반민특위 #국민이주인 #민주주의 #가짜보수 #청산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