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9년 조선 중종 때 조선에는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난다. 기묘년에 선비가 크게 화를 당했다 하여 선비 사(士)를 쓴다. 이때 화를 당했던 사람 중에 정암 조광조, 충암 김정, 자암 김구가 있다. 정암 조광조는 화순 능주로 유배 가서 그해 겨울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하고, 자암은 남해도로 유배 와서 13년을 살다가 유배가 풀려 고향에 돌아가 1년 있다가 생을 마감한다. 충암은 제주도에서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한다.
오래전에 작가 최인호가 쓴 '유림'이란 책을 읽었다. 유림은 1권 정암 조광조 도덕정치(道德政治),2권 공자의 인(仁),3권 퇴계 이황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4권 맹자의 사단칠정(四端七情), 5권 율곡 이이의 이(理)와 기(氣)의 상관관계, 6권 고봉 기대승의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으로 중국과 조선 최고 유림들의 사상을 다룬 소설이다. 유림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소설이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처음 다룬 선비가 정암 조광조였는데, 작가 최인호는 정암 조광조를 가리켜 자기 다스리기가 끝나지 않고 남을 다스리다가 크게 화를 당한 경우라고 했다. 사람은 자기 다스리기를 끝내고 남을 다스려야지 나를 다스리지 않고 남을 먼저 다스리려 하면 먼저 자신이 화를 당한다고 했다. 참 인상적인 문장이었다. 예순이 가까운 지금의 이 나이에 생각해 보니 30대였던 세 선비가 자기 다스리기가 가능했을까?
그래서 그 젊은 나이에 꿈도 펼쳐보지 못하고 두 사람은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하고, 또 한 사람은 서울에서 천리 길 남해로 유배 와서 청춘의 전부를 다 보내고 말았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 당시 기묘사화에 연루되지 않은 선비들은 역사에서 이름도 찾을 수 없는데 자암이나 정암, 충암은 우리가 기억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피워보지 못 한 꽃이다.
자암 김구가 남해로 유배 와서 노량에서 13년을 살면서 남해를 꽃밭이라고 노래하면서 쓴 시가 화전별곡(花田別曲)이다. 남해가 꽃밭이라고 노래한 것이다. 그 시로 인해 남해는 문화재를 하여도 남해문화재가 아니라 화전문화재라고 한다. 남해의 별칭이 화전이요 지역화폐 이름도 화전이다. 물론 지역화폐 화전은 돈을 꽃같이 쓰라고 화전(花錢)으로 명명했다. 그래서 자암 김구의 화전별곡에서 얻어 온 이름 남해바래길 7코스는 '화전별곡길'이다. 남해 물건방조어부림에서 천하 마을까지 17km 약 7시간 소요되는 길이다.
화전별곡이라고 하면 꽃이 만발하려나 짐작할 수도 있지만 물건방조어부림에서 바람흔적미술관, 나비생태공원 그리고 내산편백자연휴양림을 지나가는 길이며 바래길 중에 유일하게 바다가 거의 보이지 않는 내산길이다. 봉하 마을에서 내산자연편백휴양림까지 4km 정도는 양쪽으로 단풍나무가 가로수로 있기에 가을이면 그 단풍이 발갛게 물든 것이 꽃처럼 예쁘다.
그런 화전별곡길, 꽃처럼 예쁜 길에서 자암 김구가 쓴 화전별곡이란 시를 읊어본다.
하늘 가 땅끝 한 점 신선의 섬
왼쪽은 망운산 오른쪽은 금산
봉래와 고내 흐르네
산천 수려하고 호걸 남아 많이 나서 인물 번성하니
아, 하늘 남쪽 아름다운 곳 그 경치가 어떠한가
풍류 주색 즐기던 한때의 인물들이
풍류 주색 즐기던 한때의 인물들이
아, 나까지 몇 분이나 되었던가
뜻이 맞는 사람들과 화전별곡길을 총총히 걷다 보면 우리는 남이 알아주거나 알아주지 않거나 흔들리지 않는 신선의 경지에 가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