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칼럼] 이방인

고석근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재한다.

- 알베르 카뮈

 

아주 오래전에 어머니가 내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너는 어릴 적에 참 똑똑했는데, 바보가 되어버린 것 같아.”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좀 나빴지만, 어머니께서 나를 충분히 그렇게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나는 마냥 신났던 것 같다. 기와집 하나 없는 가난한 작은 시골 마을이라 다들 고만고만하게 살아 모두 한 가족처럼 지냈다. 그러니 똑똑한 아이는 항상 즐겁지 않았겠는가? 다른 아이들보다 더 잘났을 테니, 무엇 하나 부족함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며 나는 말 없는 침울한 아이가 되어 갔다. 읍내에 있는 학교라 반은 읍내 아이, 반은 시골 아이였다. 읍내 아이들은 가까이 갈 수 없는 별세계에 사는 듯했다. 우리들은 소매가 항상 반들반들했다. 흘러내리는 콧물을 소매로 수시로 훔쳤으니까.

 

읍내 아이들은 우리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휴지를 갖고 다녔다. 그들은 우리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텔레비전 얘기를 했다. 그들은 힐끔한 얼굴로 항상 쾌활하게 웃고 떠들었다. 여자아이들이 지나가면 향내가 코를 스쳤다.

 

그러니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늘 물 위에 뜬 기름처럼 그들 주변을 동동 떠다녔다. 그래도 나는 그 귀족 아이들에게 노비는 아니었다. 분단장이라도 해서 청소 검사도 하고 숙제 검사도 했으니까.

 

하지만 그들 무리에 끼지 못하니 나는 스스로를 주변인, 아웃사이드로 만들어갔다. 포도를 따 먹지 못하는 여우가 저 포도 시었어!” 하듯이, ‘나는 그들과 어울리기 싫어!’ 스스로 외톨이가 되어 치욕의 시간들을 견뎌냈다.

 

그런데 이런 이방인 의식이 차츰 나의 정서로 자리 잡아 갔다. 그들 무리에 낄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왔지만, 그들과 겉으로만 친한 척 지냈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내 책 보자기, 꿰맨 바지가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책가방, 줄을 세운 바지 앞에 내가 어디에 눈을 두어야 한단 말인가?

30대 중반에 교직을 그만두고 자유인의 길로 들어섰다. 아마 이방인의 의식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대학원에 진학해 주류의 언저리로 갈 수 있었음에도, 왜 미로로 들어섰을까?

 

의식적으로는 많은 이유를 대겠지만, 주류에서 이탈한 김삿갓 같은 나의 롤모델을 따라간 게 아니었을까? ‘나는 주류에 못 끼는 게 아니야! 나는 비주류가 좋거든.’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MBTI 성격 검사를 해보면 나는 돈키호테로 나온다. 천하를 주유하다 집으로 돌아와 제정신으로 돌아오자마자 죽어버렸다던 돈키호테, 돈키호테의 기질로 태어나 철이 들며 아웃사이드의 길을 오래 가다 보니, 나의 돈키호테는 이제 제2의 천성이 되어버린 것 같다.

 

자유인으로 살면서, 주류에 편입될 기회가 두어 번 있었다. 시민단체 활동을 하며 도의원 제의가 온 적이 있다. 수락하면 당선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내가 한 질문은 이랬다. “6개월 정도만 하고 그만 두어도 되나요?” 그는 그러면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어처구니가 없었을 것이다. ‘이 사람 도대체 철이 없는 거야?’

 

나는 돈키호테처럼 꿈꾸는 사람, 거기다 비주류까지 더해졌으니, 남이 볼 때는 허무맹랑할 때가 많았을 것이다. 또 성인 대상의 글쓰기, 논술지도법 강의를 하러 다닐 때, 알고 지내던 입시학원 국어 강사가 내게 한 학부모가 내게 논술 과외를 부탁해보라라고 했다고 했다. 고액의 논술 과외 제의였다.

 

나는 며칠을 생각한 후 거절했다. 왜 그랬을까? 몇 년만 논술과외강사의 길을 걸으면, 돈을 꽤 모을 것 같았는데. 그 돈으로 문화센터를 만들까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돈의 탐욕에 물들 것 같았다.

 

그러나 이것은 의식적인 생각이고, 무의식에서는 주류에 대한 거부감이 아니었을까? ‘나는 너희들과 달라.’ 나의 심성이 맑고 깨끗해서가 아니라, 어릴 적 주류들에게 받은 상처에 대한 반발심으로 그렇게 했을 것이다.

 

지금도 비주류의 삶을 산다. 해외여행 한 번 가지 않고, 명품 하나 갖지 않고, 자동차 면허도 없고, 오랫동안 핸드폰도 없이 지냈다. 최근에 ㅅ 마을협동조합의 이사장직을 맡으며 할 수 없이 핸드폰을 갖게 되었다.

 

비주류의 정서가 나의 아비투스(문화적 습성)’가 되어버린 듯하다. 주류와 만나면 불편하다. 조금만 화려한 집에 가거나, 식당에 가도 나의 행동이 자연스럽지 않다.

 

이제 노년이 되어 나는 나의 비주류를 사랑한다. 비주류의 삐딱한 눈을 갖다 보니, 남들은 보지 못하는 게 잘 보인다는 생각이 든다. 가난한 소작인의 자식으로 태어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누구나 그 어떤 영적 충동, 즉 무한한 것에 대한 갈망을 지니고 있다(보들레르)’

 

내가 오랫동안 이방인의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면, 내가 영적 충동, 무한한 것에 대한 갈망을 소중히 가꿔왔을까?

 

너는 누구를 가장 사랑하느냐, 수수께끼 같은 사람아,

? 아버지냐, 어머니냐, 또는 누이냐, 아우냐?

- 나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이도, 아우도 없다.

- 친구들은?

- 당신이 지금 한 말은 나는 오늘날까지 그 뜻조차도 모른다.

......

- 돈은?

- 당신이 하느님을 싫어하듯 나는 그것을 싫어한다.

- 그래! 그럼 너는 대관절 무얼 사랑하느냐, 괴상한 이방인아?

- 나는 구름을 사랑한다…… 흘러가는 구름을……

- 저기에…… 저기에…… 저 신기한 구름을!

 

- 샤를 보들레르,이방인부분

 

나는 이제 이방인이 되어 남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에게 지기 싫어 그렇게 되어버렸지만, 얼마나 다행인가? 나도 시인처럼 이렇게 중얼거리게 되었으니. ‘나는 구름을 사랑한다…… 흘러가는 구름을……/ 저기에…… 저기에…… 저 신기한 구름을!’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6회 민들레 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hanmail.net


작성 2022.02.03 10:54 수정 2022.02.03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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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