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산정천리] 가장 제주다운 곳, 금오름과 성이시돌목장

여계봉 선임기자

제주에서 가장 인상적인 풍경을 꼽으라고 한다면 기자는 단연 켜켜이 펼쳐지는 오름의 군상(群像)이다. 그 오름들을 오르면서 만나는 거친 바람과 억새들의 물결, 산정에서의 조망은 가장 제주다운 모습이기 때문이다.

 

제주 사람들에게 오름은 삶과 죽음이 함께 있는 공간이다. 오름 자락에서 가축을 방목하고 밭과 과수원을 일구며, 죽어서는 낮은 돌담으로 두른 무덤에서 잠든다.

 

한라산은 세계 최고의 오름 지대다. 오름은 화산폭발 당시 주 분화구인 백록담으로 용암이 솟구쳐 오르다 옆으로 가지를 뻗어 나간 작은 분화구들인데, 한라산의 오름은 368개나 된다. 유럽 최고의 화산인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에트나산(3,323m)260여 개의 기생화산을 거느리고 있는데, 한라산보다 훨씬 적다.

 

서부 중산간지역의 대표 오름인 금오름


한림읍 금악리에 있는 금오름(금악오름)은 서부 중산간 지역의 대표적인 오름이다. 금오름의 <()>은 신()을 지칭하는 <>과 같은 의미로, 예로부터 신성시해 온 오름임을 이름을 통해 가늠할 수 있다.

 

금오름은 오름 입구와 주차장이 딱 붙어 있어서 접근성이 좋고, 대략 20분 정도만 걸으면 산정 능선에 오를 수 있을 뿐 아니라 산정에서의 전망도 아주 뛰어나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 명소다.


금오름 오르는 숲길


금오름으로 가는 길은 삼나무와 소나무, 비자나무가 쭉쭉 뻗어 있는 숲길이다. ‘희망의 숲길이란 이름이 붙어 있는 이 길은 제주 4.3사태 때 난리를 피해 숱한 사람들이 절망 속에서도 삶에 대한 희망을 품고 이 숲으로 찾아든 사연이 깃든 곳이다. 숲속에서 힐링하면서 가다 보면 침엽수림이 끝나고 시야가 터진 시멘트 길이 나타나는데, 이제까지는 향긋한 나무 냄새로 코가 호사를 누렸지만 지금부터는 툭 터진 시원한 조망이 눈을 즐겁게 해준다. 오름 아래 황량하면서도 낭만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황무지와 목장들을 내려다보면서 산허리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능선에 올라선다.

 

금오름 정상의 능선

산정(427.5m) 아래에는 대형의 원형 분화구가 있고 남북으로 2개의 봉우리가 동서의 낮은 안부로 이어진다. 능선 오른쪽은 활공장으로 가고, 왼쪽으로는 방송시설물 방향인데, 첨탑이 있는 곳이 오름에서 제일 높은 곳이기도 하다.


물 대신 돌탑이 가득한 금오름 분화구


타원형의 분화구(깊이 52m) 내 호수는 물이 고이면 마치 작은 백록담을 보는 기분이라고 하는데 현재는 화구 바닥이 드러나 있다. 정상 분화구에 보통 분화구(굼부리)를 멀리서 바라만 보게 통제하는데 이곳은 걸어 내려가서 여기저기 돌탑들이 세워진 화산의 분화구 바닥을 직접 밟을 수 있다. 굼부리 안은 마치 신기(神氣)가 흐르는 듯하고 영험한 기운이 맴도는 느낌이 든다.

 

오름이 낮다고 풍경이 작은 것은 결코 아니다


산정의 능선에 서면 하늘이 열리고 서부 지역 애월과 한림의 정겨운 마을들, 그리고 그 너머로 제주의 푸른 바다가 시야를 가득 채운다. 정상 능선을 따라 풍경을 감상하며 걷다 보면 비양도를 비롯한 서부 오름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주변 목장의 초지대는 한겨울에도 파릇파릇하다.

 

오름과 오름 위에 부는 바람은 바로 제주다.


오름들은 산굼부리처럼 아예 평지에서 밑으로 꺼진 특이한 것도 있지만 대개는 50~200m 정도의 둥그스름한 산체가 초원 위에 솟아올라 친근하면서도 목가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등성을 따라 이어지는 오름의 곡선미는 가히 일품이고, 그 가운데에 점을 찍은 민트색 산불감시초소가 유난히 눈에 띈다.

민둥산처럼 속살을 다 드러낸 오름은 더 살갑다.


오름 정상에서 바라본 실루엣처럼 펼쳐지는 오름 군락과 능선에 부는 칼바람은 자유에 대한 갈망이자 제주 자연의 숨결이 아니던가. 작은 수고 뒤에 보상받은 몇 배의 희열과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방송시설물 부근에 있는 숲길로 유유자적하며 내려오면 희망의 숲길과 만나게 되고 이어서 주차장이 나온다.


금오름 근처에 있는 성이시돌목장


금오름에서 내려와 천주교 금악성당을 지나 세미소오름 방향으로 20여 분 걷거나, 차량을 이용해서 1116번 도로를 따라 5분 정도 이동하면 성이시돌 목장으로 갈 수 있다. 성이시돌 목장은 스페인 농부 출신인 이시돌 성인의 이름을 따서 1954년 맥그린치 신부가 세운 목장이다. 젖소와 말을 방목하는 목장인데 직접 생산한 유기농 유제품을 판매하는 우유카페로 유명한 곳이다. 이색적인 건축물로 사진이 잘 나오는 포토존으로 인기가 많고, 푸른 초원을 배경으로 웨딩 촬영지로 아주 유명했던 곳이기도 하다. 일단 주차장과 입장료가 무료라 부담 없이 편하게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색 명소 ‘테쉬폰’


목장 안으로 들어서면 처음 만나는 이색적인 건물이 바로 테쉬폰(cteshphon)’이다. 여기서 찍은 사진이 인터넷에 많이 올라오는 성이시돌 목장의 핫플레이스(hot place). 테쉬폰 양식은 바그다드 근처 테쉬폰이라는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지어진 건축양식인데, 아일랜드 건축가가 이 방식을 이용해 건축물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외관은 물결 모양처럼 곡선 형태로 지어졌는데 태풍 등 자연재해에 잘 견딜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져 바람 많은 제주에 적합한 건축양식이라고 한다.

 

목장을 나오면서 입구에 있는 카페 우유부단에 잠시 들린다. 유기농으로 만드는 아이스크림과 밀크티 위주로 판매를 하는 곳인데, 이름이 흔히 알고 있는 우유부단(優柔不斷)’과 한자도 똑같다. 그런데 그 뜻이 너무나 다르다. 카페 안에 적혀 있는 우유가 너무 부드러워 끊을 수 없다는 설명을 보니 꿈보다 해몽이 좋아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성이시돌목장의 케노피 천막 카페


카페 앞 초원 위에는 바람을 막아주는 우유곽 모양의 투명한 케노피 천막이 군데군데 있다. 그 안에서 카페에서 구입한 따뜻한 우유와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유기농인지라 부드러우면서 달콤한 맛이 더욱 진하게 느껴진다. 결단력 부재와 결정 장애로 항상 비난의 대상이 되는 우유부단이란 말이 오늘처럼 매력적으로 다가온 적이 없었음도 같이 느낀다.



[여계봉 선임기자]

 yeogb@naver.com



작성 2022.02.03 13:56 수정 2022.02.03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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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