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항저방심미기 角亢氐房心尾箕
두우여허위실벽 斗牛女虛危室壁
규루위묘필자참 奎婁胃昴畢觜參
정귀유성장익진 井鬼柳星張翼軫
어릴 때 식중독이나 토사곽란을 만나 열이 나고 혼수 상태에 빠지면 증조부님이 이 진언을 외면서 악귀를 물리쳤던 기억이 난다. 이 의식을 두고 우리는 "물린다"라고 말했다.
증조부님은 아파서 열이 펄펄 끓는 나를 대문을 향하여 앉게 하고는 바가지에 물을 담아 밥을 조금 말아서 숟가락과 칼을 들고 내 머리 위에서 이 진언을 외웠다. 진언을 외움과 동시에 대문 바깥 쪽으로 칼과 숟가락을 집어던지면서 고함을 치며 악귀를 쫓았다.
쨍그렁 소리가 나면서 숟가락과 칼이 땅에 떨어지면, 칼끝이 대문을 향한 것을 확인하고는 칼을 주워 땅에 열 십자를 긋고 칼날이 대문으로 향하게 꽂아 두었다. 칼끝이 집 안쪽으로 향해 떨어지면 다시 주워서 대문 바깥쪽으로 향할 때까지 새로 던졌다. 그런 후에 바가지 속의 물과 밥을 대문 쪽으로 확 뿌렸다.
이런 '물림' 의식을 치르고 나서 방으로 와 누워 있으면 곧 몸이 진정되고 열도 내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를 두고 플라시보 효과라고 해도 좋다. 증조부님이 외웠던 이 진언은 하늘에 있는 별자리 28개를 지칭하는 것이다. 북극성을 중심으로 달이 한달 동안 지나가는 길목에 있는 동북서남 각각 7개의 별자리를 말한다. 우리민족의 전통 윷놀이도 이 28수 별자리 그림을 그려 놓고 도 개 걸 윷 모로 운행을 하는 것이 신기하다.
대학교 1학년 때 교양과정 한문을 가르치는 교수님이 적벽부, 귀거래사, 춘야연도리원서 등을 강의하시다가 어느날 '각항저방심미기'를 알려 주셨다. 그 때 그 교수님은 '각항저방심미기'를 크게 외치면 사악한 귀신의 대가리가 깨지는 위력이 있다고 했다.
나의 할머니는 글을 모르는 분이었는데, 어느날 밭에서 일을 하다가 이 진언을 정확히 외는 것을 보았다. 할머니의 친정 아버지는 평소 호랑이 이빨을 하나 갖고 다니면서 아픈 애들을 보면 그 호랑이 이빨로 애들 이마와 머리를 톡톡 치면서 이 진언을 외웠다고 말씀하셨다.
역병이 돌거나 무서운 밤길을 걸어갈 때에도 우리 조상들은 '각항저방심미기' 진언을 외웠다. 악몽을 꿀 때도 이 진언을 외면 악몽에서 벗어난다고 했다. 여기서 한 가지 밝혀둘 것은 '奎婁胃昴畢觜參'을 '규루위묘필자삼'이라고 하는 이들이 많은데 '參'은 별자리 '참'으로 읽어야 한다. '규루위묘필자참'이 맞다.
'물림 의식'을 했던 나의 증조부 해산 이은춘 공은 영남의 선비로 86세 때 북망으로 가신 분이다. 돌아가시는 날 아침에 화장실에 가서 속을 깨끗이 비우고 "나 오늘 오후에 간다"고 하신 후에 아들 딸들이 다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날 오후에 홀연히 가셨다. 발인 날짜와 시간, 장지 묘소의 위치, 좌향까지 나에게 알려주시고 좌탈입망으로 생을 마감했다.
'물림 의식'은 우리민족의 고유한 문화다. 이것을 두고 어찌 미신이라고 단순히 치부할 수 있겠는가. 나는 앞으로 여러 구전들을 채록하고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 이런 민족문화를 발굴 복원하는 일을 해볼 생각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논설주간 이봉수 ogokd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