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의 깊은 계곡 어승생악 동쪽, 산세가 뛰어난 한라산 아흔아홉골에 위치한 석굴암 탐방로는 소나무와 활엽수가 혼재한 울창한 숲 사이로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도심 속의 찌든 때를 씻어 주기에 더없이 안성맞춤인 곳이다. 제주 시내와 가까워 접근성이 좋을 뿐 아니라 한라산 탐방로 중 가장 짧은 코스여서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곳이다.
1100고지에서 바라본 산의 입구가 밝다. 눈부신 햇살이 들이치니 머리에 눈을 가득 인 한라의 숲은 터질 듯 부푼다. 하늘이 깊은 방죽처럼 푸르다. 살얼음이 낀 듯 얼굴이 반사되어 비칠 것만 같다.
충혼묘지 주차장를 지나 천왕사로 들어가는 삼나무 숲길은 가지런하다. 이 길 끝에 절이 있으니 깨닫음이 있는 길이다. 늘어선 삼나무들은 경전(經典)이고, 우짖는 새들의 낭송은 독경(讀經)이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자연은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 산길 중간에 갑자기 산새들이 합창하는 소리가 들려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드니 감나무에 달린 까치밥을 놓고 새들이 즐거이 식사하는 정경이 비친다.
숲 사이 여기저기로 촛농처럼 흐르는 눈들이 가득하여 산은 오직 푸르기만 한 게 아니라 희고 밝다. 폭포수는 고드름으로 흘러내려 바위 아래 연못과 한 몸이 된다. 두 손 모은 기도처럼 순한 풍경이다. 바람에 실린 희미한 염불 소리 기척으로 산사가 멀지 않았음을 알겠는데 이윽고 천왕사가 눈앞에 드러난다.
산사 주변은 산이 크기에 사방팔방 능선들의 파동이 장중하다. 산이 깊기에 바깥세상의 티끌도 소음도 저승처럼 멀다. 산사에 오르는 길 위에 구름 그림자 내려 고즈넉하다. 산은 첩첩(疊疊)하고 나무는 울울(鬱鬱)하지만 답답한 구석이 하나 없다. 멀리 하늘의 치맛자락을 거머쥐고 공간을 이등분한 산마루는 후련하고 유현하다. 산사 뒤편 언덕에 굳센 노송들이 따사로운 눈길로 뜰을 굽어보니 설원이 된 절 마당에 온기가 돈다. 잠시 뒤 바람 소리 담긴 차가운 솔향이 지나가니 이내 코끝이 얼얼해진다.
법당 뒤로는 청정한 산죽이 목화처럼 눈꽃을 피우고 있다. 산죽 사이로 난 계단 끝에는 돌부처님이 철부지 세상 사람들을 굽어보고 있다. 온기를 머금은 미소를 보고 있자니 언 몸이 스스로 녹는다. 절집 지붕에 얹힌 하얀 눈꽃이 난분분 난분분(亂紛紛 亂紛紛) 떨어지니 나그네의 헛욕심도 바람결에 씻기고 있다. 한라산 아흔아홉골에 부는 찬바람이 오히려 고마울 뿐이다.
천왕사를 뒤로하고 충혼묘지 주차장 인근에 있는 석굴암 탐방로로 내려온다. 석굴암 탐방로는 제주불교 성지순례길 코스이기도 하다. 여기서 석굴암까지 왕복 3Km인데 2시간이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다. 대설로 한라산 탐방로가 모두 막혀도 석굴암 탐방로는 늘 열려 있는 편이다.
석굴암 오르는 산속은 적막하다. 좌선한 나무들, 침묵이 흘러내리는 산자락들, 묵중한 바위들. 앞서 지나간 사람의 발자국을 따라 눈길을 오르는 내 발걸음 소리만이 고요를 깬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는 석굴암 가는 산길은 걷다 보니 시인이자 명상가이신 틱낫한 스님이 왜 땅과 입맞춤하듯 천천히 걸어가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적막하고 고즈넉한 산길을 느릿느릿 걷는 것처럼 마음에 충만을 주는 행위도 드물기 때문이리라.
숲은 실로 이상적인 공간이다. 산은 진정 순수한 지혜의 도량이다. 숲길은 걷는 순간 스스로 사람답다고 느낀다. 산이 보듬어주는 덕택이다. 온갖 수목들이 섞여 우거진 숲속 깊이 들어갈수록 시원하고 어둑하다. 소나무숲은 길게 이어진다. 솔 그림자 잠잠하게 내린 오솔길은 구불구불 줄기차게 이어진다. 한라산 아흔아홉골 산자락은 한낮인데도 산그늘이 접혀 먹물이 번진 듯 수묵호처럼 변해간다.
길은 굽이치거나 일어서 번번이 깔딱고개다. 숨이 가빠진다. 도란도란 길섶에 웅크린 산죽들이 얼굴을 내민다. 나무 그림자 내린 눈길은 푹신하고, 맑은 한지처럼 순수하다. 등으로는 땀이 흐르지만 산길이 해맑아 온몸으로 산과 섞인다. 여기에 그 어떤 욕심도, 고뇌도, 오류도 없다. 그저 그 자체로 무구하고 아름답다. 길이 도(道)이고 도가 길인 이유가 이와 같다. 길 끝에서 이윽고 암자가 나타난다.
출렁거리는 숲속의 계곡, 절벽 아래 작고 초라한 암자가 겨울 햇살에 노승처럼 졸고 있다. 절을 절집 크기로 가늠함은 어리석은 일이다. 전각이 산을 덮고, 불탑이 하늘을 찌르면 부처가 가까운가. 아닐 것이다. 부처는 천년의 바람이 지워버린 폐허 위에도 있다. 마음이 청산이라면 거기가 법당이고 무문관이다.
절은 왜 산에 숨는가. 수행(修行)이란 죽을 힘을 다해 매달려야 하는 절체절명의 고독한 여행이다. 몸둥이가 갈기갈기 찢어지더라도 집착의 화살을 뽑아내지 못하는 한,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 것이 선가(仙家)의 결의(決意)다. 그래서 승냥이 우는 후미진 산방에 홀로 머물러서 도(道)를 구한다. 이렇게 구한 도로 중생을 구한다.
법구경 염불 소리를 뒤로하고 절집을 나선다. 산협 사이를 맵시 있게 휘어지며 돌아나가는 오솔길에 내린 산 그림자가 속살같이 애틋하다. 며칠 전 95세로 입적하신 불교 지도자이자 평화운동가이신 틱낫한 스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침잠한 숲 사이로 뻗은 오솔길을 내려선다.
어제를 후회하지 마세요
내일을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이 순간만을 생각하세요
[여계봉 선임기자]
yeogb@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