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구 칼럼] 아름다운 수의

문경구

 

미국으로의 첫발을 딛던 날 내가 꾸어왔던 꿈을 꼭 이루리라는 믿음으로 걸었던 길을 가장 잊지 못한다. 어린 시절 한국은 자고 나면 몰라보게 변해가던 도시들과는 달리 어느덧 반세기가 흐른 뒤 찾아온 이곳은 그때와 조금도 변함이 없다.

 

십 년 세월이면 강과 산조차도 그 모습을 지켜낼 수 없다는 한국에서의 말이 어색하기만 했다. 얼굴에 땟국물이 가득한 멕시칸 어린아이들이 반짝거리는 눈으로 뛰어놀던 그 거리와 미국 사람인 백인을 한 사람도 볼 수 없었던 거리가 너무도 똑같다. 조금도 변하지 않았던 거리를 생각하면서 어떻게 미국이란 나라가 세계를 변화시키는 나라가 될 수 있었을까 곰곰이 생각하며 옛 거리를 걸었다.

 

미국인들의 나라 미국에는 온통 백인들이 넘쳐 댈 것이라는 환상과 미국은 나를 그 백의 세계로 데려다줄 거라는 꿈이 깨지는 데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내 나라 거리를 걷듯 모두 한국 사람들 뿐이다.

 

그것이 나에게 첫 실망의 시련을 시작된 대한민국 엘에이 나성시에서였다. 갑자기 한국에서 보았던 미국인 두 명이 생각났다.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산동네 집집을 방문하던 모습이다. 선교활동을 하던 그들의 인상 깊던 까만 양복의 흰빛 와이셔츠가 빛났던 기억이다. 강하게 남겨진 그 미국인 선교사의 풋풋한 얼굴조차 찾아볼 수 없는 미국이라는 것이 너무도 아쉬워 보였다.

 

미국 사람이 없는 미국의 거리는 마치 내가 넥타이를 맨 양복 윗도리에 한복 바지를 입고 엘에이 거리를 거니는 기분이었다. 순간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에 온 내가 아닌 가부장적 유교의식도 벗지 못한 채로 미국 거리를 활보하는 것 같았다.

 

여기저기를 걸어 보아도 걸어가는 사람들 모두가 한국 사람들이었다. 멈춰 선 신호등 앞에서 길을 건너는 사람들이 모두 한국 사람의 물결로 밀려났다. 동창 중에는 한국의 날 퍼레이드 인파 속에서 기적처럼 하나는 이쪽에서 건너가고 또 다른 하나는 반대쪽에서 건너오다가 만나 지금까지 떨어져 살 수 없는 인연이 되었다고 했다.

 

당연히 그런 극적 만남이야말로 꼭 만나야만 할 인연일 것이다. 그들이 들려주는 동문 모임이 있는가 하면 가족들끼리 교회에서 야유회도 간다고 하는 말을 내가 재미있게 듣는 줄 안다. 내가 갖고 있는 미국 생활의 기대를 알 수 없는 그들은 그렇게 기적 같은 인연의 환상으로 재미있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나의 미국 생활의 시작을 마치 내 몸에 맞지 않는 거북스런 옷으로 갈아입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내가 미국 사람이 많이 있는 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이란다. 가끔 차 타고 여행 삼아 그들이 사는 쪽으로 한번 둘러보면 미국 사람 원 없이 본다고 하니 나의 의도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백인들 세상에서 살아본 들 어항을 나온 물고기 꼴로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언젠가는 다시 한국타운 수족관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고 했다. 애초에 자리 잘 잡으라고 미국을 먼저 온 선배 친구들이 하는 말이니 명심하라고 조언했었다.

 

한국타운에서 편하게 내 나라 언어로 한국의 얼 지키며 사니 얼마나 좋으냐고 해대던 그 친구들을 뒤로하고 떠난 지 30년도 더 넘기던 세월이 자꾸 회상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가까운 거리의 헐리우드 조차도 가보지 못한 미국 촌뜨기였던 내가 왜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 걸까. 다시 찾아온 한인타운은 그 옛날 친구들이 했던 말들이 낡은 확성기 속 끓는 물소리처럼 들리고 있었다.

 

그 거리를 삼 십년 더 기다려 줄 수 없어 명을 다 채우지 못하고 떠난 친구도 있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 친구는 저세상으로 나설 때 어떤 복장을 차려입고 관속에 누웠을까. 한국 반, 미국 반, 양복저고리에 넥타이 매고 한복 바지의 수의로 떠났을 것 같은 생각을 했었다. 나는 늘 호기심 많던 미국 사회에서 공부하며 살고 싶었다.

 

백인 부모들과 내가 살다 온 한국 부모들의 다른 교육 방식은 내게는 놀라운 일들 중 하나였다. 자식 나이가 열여덟이 되면 학업을 위해 스스로 갈 길을 가게 하는 백인 부모들이라고 했다. 덜 성숙한 자식은 부모가 주는 기회를 모두 써버린 철이 덜 든 자식으로 결국 문밖으로 걸어 나가게 한다는 이곳 이야기이다.

 

낳아서 결혼까지 뒷바라지 해주어도 부족하다는 한국 부모들 이야기와는 너무 다른 놀라운 감동이었다. 나는 벼르는 제사에 물도 못 떠 놓는다는 속담 속 주인공이 되어 성공하지 못하고 그들이 사는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두려웠다. 벼르기만 하다가 기회를 놓치지 말고 본격적으로 미국 사회에서 산다면 언젠가는 나도 제사상에 물 정도는 떠 놓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도전적이고 건설적이고 매력적인 미국 속에서의 내가 만들어 가는 세상을 꿈꾸었지만, 백인 속에 물들어 가며 그렇게 굴러가 버렸다. 그런 내가 지금 누릴 수 있는 여유라는 것은 모두가 가버린 세월의 거리를 멍하니 바라보는 일이다. 영어 한마디도 필요 없이 살 수 있다는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그들만의 철학으로 살고 있을까. 내가 미국을 어렵게 살려 한다는 친구들 말도 맞다. 한 번뿐인 기회의 땅에 까지 와서 그들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그때 나의 신념도 전혀 틀린 것은 아니었다.

 

늙어지니 사회연금이 찾아오는 이런 안전빵이 또 어디 있냐고 말하던 친구들 말도 사실이다. 지금 바라보는 세상일 모두가 맞다. 백인이 우글대는 곳에서 산다는 것은 호박과 수박 문제처럼 영원히 풀 수 없는 함수 관계라고 웃어대던 친구들 말이 바로 철학이었다. 그러나 내가 유창한 영어로 일하는 공무원이 아니었어도 한국식 영어를 쓰는 미국 속 한국인의 다큐멘터리 인생인지 모른다.

 

어느 스님께서는 수의조차 마다하시고 입으신 그대로 관도 필요 없이 떠나는 길을 부탁 하셨다고 했다. 세상을 살았던 모습 그대로라면 수의에 집착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학창 시절에 단체로 관람했던 영화 속의 주인공이 끝내는 감옥의 섬에서 바다로 뛰어내려 탈출에 성공하는 모습처럼 나는 나의 인생을 그렇게 살았다고 하면 될 것 같다.


[문경구]

화가

수필가

코스미안뉴스 칼럼니스트

문경구 kimurgin@hotmail.com

 

작성 2022.02.15 12:39 수정 2022.02.15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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