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랭이 지겟길
어제도 남해바래길을 걸었지요
파도랑, 까치수염과 같이 걸었지요
넘어지기도 하고,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혹시 산딸기가 고소해할까 봐
아무렇지도 않은 척
후다닥 일어나면서
그 길에서
우리끼리 놀면서 무심했더니
물안개가 귀 볼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지요.
"나도 여기 와서 자주 놀다 간다."
산딸기랑, 까치수염, 물안개가
살고 있는 다랭이지겟길에서
당신 그녀와 미팅해보지 않으실래요.
그날부터 당신은 그녀에게 반해서
헤어나지 못할걸요.
치료약도 없는 상사병에 걸릴지도 몰라요.
그녀에게 발목이 잡힐까 봐
두렵지요?
발목이 잡혀도 전혀 억울해하지 않을
멋쟁이 여인이 그곳에 있답니다.
뭉게구름이 넘실넘실거리는 하늘과 그 하늘만큼이나 푸른 바닷물, 신록이 실룩실룩 춤을 추고 이름 모를 들꽃들이 지천인 바래길 제11코스 다랭이지겟길에서 칠월의 풍경은 글로서는 다 담아낼 수가 없을 만큼 경이롭고 신비롭다.
가천다랭이마을에서 시작되어 사촌해수욕장을 거쳐 평산항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구불구불 정겹고 푸근한 길이다. 이 길에서는 남해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더불어 척박한 생활환경을 극복하기 위하여 산비탈을 깎아 논을 만들고 밭을 만들었던 모습들을 자연스럽게 만나 볼 수 있다. 남해사람들의 억척스러움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것이다.
다랭이지겟길이 끝나는 평산항은 조선시대 평산포만호가 주둔하던 곳이다. 평산항에서 마주 바라도 보이는 곳이 조선시대 전라좌수영이 있던 여수인데 임진왜란 일어나자 충무공 이순신은 왜구가 부산포로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남해안 바다를 부하에게 둘러보게 하는데 난중일기에 평산포만호는 평산포를 비워 놓았다고 적고 있다. 평산포만호는 군영을 비워놓고 어디로 갔을까?
평산 마을에서 굽이굽이 돌아가는 바래길은 바다가 보였다가 숲에 가려졌다가 다시 나타나곤 하는 풍경이 그대로 그림이다. 이곳을 지킨 사람들은 오래전 그 비탈에 논과 밭을 조성하면서 필요한 거름을 남해사람들의 인분만으로는 충당할 수가 없어 바다 건너 여수로 가서 여수사람들의 인분을 수거해 와 그것으로 거름으로 사용하면서까지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땅을 기름지게 하려고 이런 수고로움을 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남해사람들이다. 이것 하나만 보아도 남해사람들이 비좁고 척박한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는지 짐작이 간다.
그렇게 해서 뒷바라지 한 아들딸들이 도시에서 각자 제 역할들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소리 내지 않고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묵묵히 부모 역할을 하다 보니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자식들이 반듯하게 된 듯하다.
평산항에서 다랭이마을까지 16km의 길, 그 길을 느리게 느리게 걷다 보면 그 눈부신 자연에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리고 콧노래가 저절로 흥얼거려질 것이다. 자연을 벗 삼아 5시간쯤 생각을 비우고 그냥 느릿느릿 걷기만 해도 저절로 신선이 될 것 같은 길이다. 그런 길이 남해에 있다.
[서재심]
시인
남해군문화관광해설사
코스미안뉴스 객원기자
서재심 alsgml-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