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荷知)’는 중국의 『남제서(南齊書)』라는 역사서에 실려있는 가라국왕의 이름인데, 도대체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지 못해 그동안 수많은 연구자들이 저마다 이런저런 억측을 남발해온 대상이다. 차자표기를 모른 채 역사를 연구하다 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이 글은 가라왕 ‘하지(荷知)’의 이름을 올바르게 파악함으로써 엉망으로 흐트러져 있는 우리의 고대사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쓴 것임을 미리 밝혀 둔다.
하지(荷知)라는 가라왕의 이름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물론이고 『일본서기』나 그 외 다른 어떤 문헌에도 보이지 않는 이름이다. 오로지 『남제서』에만 실려있는데, 해당 부분의 내용을 발췌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가라국(加羅國)은 삼한(三韓)의 종(種)이다. 건원(建元) 원년(479), 국왕(國王) 하지(荷知)가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쳐왔다. (이에) 조서를 내려 말하였다. "널리 헤아려 비로소 (남제 조정에) 올랐으니, 멀리 떨어진 오랑캐조차 두루 감화되었도다. 가라왕(加羅王) 하지(荷知)가 바다 바깥에서 관문을 두드리며 먼 동쪽에서 폐백[贄]을 바쳐왔으니, 보국장군(輔國將軍)·본국왕(本國王)을 줄 만 하다." - 『남제서』 열전 제39. 만동남이(蠻東南夷) |
가라국(加羅國)은 삼한(三韓)의 종(種)이다. 건원(建元) 원년(479), 국왕(國王) 하지(荷知)가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쳐왔다. (이에) 조서를 내려 말하였다. "널리 헤아려 비로소 (남제 조정에) 올랐으니, 멀리 떨어진 오랑캐조차 두루 감화되었도다. 가라왕(加羅王) 하지(荷知)가 바다 바깥에서 관문을 두드리며 먼 동쪽에서 폐백[贄]을 바쳐왔으니, 보국장군(輔國將軍)·본국왕(本國王)을 줄 만 하다."
- 『남제서』 열전 제39. 만동남이(蠻東南夷)
‘건원(建元)’은 남제(南齊)의 고제(高帝) 때 사용한 연호이고, 건원 원년은 서기로 479년에 해당한다. 서기 479년에 가라왕 하지(荷知)가 중국 남북조시대의 제나라 초대 황제 소도성(蕭道成)에게 조공을 해왔으므로 그에게 보국장군 본국왕을 제수했다는 내용인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가라왕 하지(荷知)’는 도대체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동안 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설득력이라곤 전혀 없는 3류 잡설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종래의 설들에 대하여 일일이 비판하는 것은 시간낭비라 여겨 건너뛰기로 한다. 이 글에서는 차자표기를 바탕으로 한 인명풀이를 위주로 하는 언어적인 관점에서만 논하기로 하겠다.
◆질지(銍知)는 [가마-지]란 이름을 차자한 표기
일연 스님이 쓴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가야국의 역대왕들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 제1대 수로왕에서부터 마지막 제10대 구형왕까지 역대 왕들의 이름이 모두 기록되어 있고, 재위연도도 밝혀져 있다.
하지만 표에서 보듯 ‘하지(荷知)’라는 이름의 왕은 없다. 479년에 조공을 보낸 왕이라면 제8대 질지왕이 재위하던 때로 보이지만, 이상하게도 지금까지의 연구자들은 하지(荷知)와 질지(銍知)를 동일인이라 주장하려고 하지를 않았다. 한눈에 봐도 연대가 합치되는 인물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그 사실을 외면하고 엉뚱한 쪽으로만 연구를 하는 해괴한 행태를 보여왔다.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 재위연도가 엉터리라면서 하지(荷知)는 겸지(鉗知)와 동일인이라고 주장하거나 가실왕(嘉悉王)과 동일인이라고 주장하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견해들만 난부하였다. 아마도 차자표기에 대한 지식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다음에 계속]
[최규성]
방송 작가
수필가
칼럼니스트
최규성 ; crazychop@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