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식 칼럼] 서머싯 몸의 '케이크와 맥주'에서 찾는 삶의 유희와 쾌락

민병식


서머싯 몸(1874-1965)은 여덟 살 때 어머니를 폐결핵으로, 열 살 때 아버지를 암으로 잃고, 숙부의 보호 아래 학창 시절을 보냈고 런던에서 세인트토머스 의학교를 졸업했다. 산부인과 경험을 옮긴 첫 작품 램버스의 라이저가 베스트셀러가 되자 자신감을 얻고 의사직을 과감히 포기했다. 1908년에는 몸의 희곡들이 런던 4대 극장에서 네 편이나 동시에 상연될 정도로 그의 인기가 높았다.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많은 나라를 여행하며 작가 수업을 하고, 1928년 이후 프랑스 남부 카프페라에 정착했다. 자전적 소설 '인간의 굴레에서'와 고갱을 모델로 예술 세계를 파고든 '달과 6펜스', 성공에 눈먼 작가를 풍자적으로 그린 '케이크와 맥주', 한 미국 청년의 구도적 여정을 담은 '면도날' 등의 장편 소설로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케이크와 맥주, 이 작품은 1930년 발표 당시 문단의 내막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등장인물이 몸의 지인이나 유명 인사와 흡사해 세간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풍자 소설이다. 작품 속 거장으로 등장하는 주인공 에드워드 드리필드의 실제 모델로 토머스 하디가 지목되기도 했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빅토리아 여왕의 재임기(1837~1901) 후반이며, 이 시기는 영국 사회에 정치·경제·사회적 변화가 이루어진 시기다. 교회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자연과학이 힘을 얻었고, 신사 계층에도 변화가 일어나 지주나 성직자들의 대열에 부를 축적한 상인이나 전문 직업인들이 편입되었다.

 

작품의 제목인 케이크와 맥주는 물질적 쾌락, 혹은 삶의 유희를 뜻하는 관용구로 셰익스피어의 희극 십이야에 등장한다. 올리비아의 집에서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흥청거리는 앤드루 경과 토비 경에게 집사 말볼리오가 소란을 멈추라고 다그치자, 토비 경이 다음과 같이 응수하는 장면이다. “자네가 도덕적이라고 해서 케이크와 맥주가 더는 안 된단 말인가?”

 

소설의 화자인 어셴든은 유명한 작가 에드워드 드리필드의 전기를 쓰게 된 동료 작가 앨로이로부터 그에 관한 정보를 알려 달라는 청을 받는다. 어셴든은 드리필드가 무명 시절부터 친분이 있었다. 어셴든은 젊은 시절 패기와 열정이 넘치던 드리필드와 그의 첫 번째 부인이었던 로지를 회상한다. ‘케이크와 맥주라는 제목이 시사하듯 이 작품의 주요한 주제는 삶의 유희와 쾌락이다.

 

드리필드가 유명한 작가가 되기 전 첫 번째 아내 로지와 블랙스터블에 살던 시절을 어셴든은 알고 있다. 어셴든은 숙부, 숙모와 사는 십대 소년이었고 우아한 것과는 거리가 먼 그 부부와 어울려 자전거를 배우고 카드놀이를 하며 그들과 어울린 시간들이 있었다. 그 우정은 기이하고 은밀한 성장통의 일부였다. 그 부부는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려 블랙스터블을 도망치다시피 하듯 떠나고 어셴든은 의대생이 되어 다시 그들과 재회한다.

 

그 재회는 드리필드의 어린 아내 로지와의 어셴든의 애정 행각으로 이어지는데 로지는 너무나 자유분방했다. 로지는 남편을 두고 뭇 남자들과 어울리고 그녀를 질투하는 어셴든에게 기회 있을 때 인생을 즐겨야지. 어차피 100년 후엔 우리 모두 죽을 텐데 뭐가 그리 심각해? 할 수 있을 때 우리 좋은 시간 보내자.” 라고 말한다.

 

이 작품에서 드리필드는 로지가 곁을 떠나고, 설상가상 후견인을 자처하는 트래퍼드 부인이 그를 구속하면서 성공한 작가로서의 달콤함을 누리는 대신 서서히 생기와 개성을 잃어간다. 하지만 안팎의 타격에도 불구하고 결국 드리필드는 작가로 살아남았다. 삶에서는 케이크와 맥주를 잃었지만 말이다.

 

로지의 과거를 보자. 소설 속 주인공 로지는 시골 보수적이고 좁은 동네 블랙스터블에서 술집 접대부로 일하던 중 작가 드리필드의 아이를 임신하여 그와 결혼한다. 결혼 전부터 관계를 갖고있던 조지와도 계속 내연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아이를 병으로 잃고, 소설 속 화자인 애션든을 포함 주변 예술가 지인들과 애정 행각을 벌인다. 마지막엔 남편 몰래 한 가족의 가장인 조지와 미국으로 도망친다. 로지는 빅토리아기의 덕목인 정조와 체면을 비웃기라도 하듯 케이크와 맥주에 충실한 삶을 산다. 결혼하고도 자유로운 삶을 즐기는 여성으로 도덕적이지 못한 행동을 일삼으면서도 아주 가볍게 모든 일을 생각하고 모두 100년 후면 죽을 건데 뭐 어떻냐-는 태도를 보이는데 소설이기에 용납 가능했다고 해야 하나 현실에서조차 남녀 할 것 없이 지탄받을 만한 인물이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세상 사람들은 조지, 로지 모두 사망한 걸로 알고 있으나 어셴든은 미국 출장중 로지의 연락으로 70대인 로지를 만난다. 그녀는 소문과 달리 노년을 잘 보내고 있다. 일반적 정서와 달리 로지는 자신 삶의 발자취를 다 알고 있는 어셴든을 대함에도 거리낌이 없다. 그녀는 남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인생을 즐겼다. 자신을 원하는 남자들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것들을 기꺼이 준다. 어셴든은 늙고 살찐 로지와 재회하게 되지만 그녀가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그녀가 남들이 얘기하는 저속하고 천박한 삶이 아니라 딸을 잃은 상처와 편견을 딛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제대로 살아낸 사람임을 깨닫는다.

 

로지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케이크와 맥주를 찾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위선과 체면, 억압을 넘어선 자유분방함은 있었지만 드리필드에 대한 사랑은 없었다. 반면 드리필드 는 아내보다는 작가로써의 출세를 원했다. 사랑이라는 것은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고귀하고 외부적인 영향에 흔들리지 않게 견고해야하나 로지는 행동의 옳고 그름을 떠나 스스로의 사랑 방식을 선택했다. 도덕과 양심은 살아감에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 마음 가는 대로 살았다. 모든 틀을 깨고 자신의 행복하다고 여기는 것을 찾아서 말이다.

 

그러나 꼭 삶의 유희와 쾌락이 즐기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한다는 것 자체가 유희와 쾌락일 수 있다. 공부도 일도 취미도 또 숭고한 사랑도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면 최고의 유희이고 쾌락일 것이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던 로지보다 출세를 위해 삶의 유희와 쾌락을 잃었던 드리필드의 삶이 꼭 성공한 삶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이유다.


[민병식]

인향문단 수석 작가

대한시문학협회 경기지회장

문학산책 공모전 시 부문 최우수상

강건 문화뉴스 최고 작가상

詩詩한 남자 문학상 수필 부문 최우수상

2020 코스미안상 우수상

민병식 sunguy2007@hanmail.net

작성 2022.03.16 13:08 수정 2022.03.16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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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