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월류봉에서 석천을 따라 반야사로

여계봉 선임기자

영동 월류봉 전망대에 서니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휘어져 나가는 초강천 뒤로 송곳처럼 우뚝한 봉우리 5개가 부챗살처럼 펼쳐져 있고 그 위를 한낮의 햇살이 강하게 내려앉는 바람에 월류봉(月留峯, 해발 386m)은 더욱더 반짝인다. 산봉우리 사이 굽이굽이 물이 흐르는 초강천 옆 커다란 바위 위에 서 있는 월류정(月留亭)이 운치를 더한다. ‘달이 머물다 갈정도로 경치가 빼어나다는 월류봉은 우암 송시열이 즐겨 찾던 명승지 한천팔경(寒泉八景)’의 제1경인데, 월류봉 주변의 뛰어난 절경을 모아 이름을 붙인 것이 바로 한천팔경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월류봉과 월류정


상상도 하지 못한 기가 막힌 풍경을 마주하고 보니 바로 여기가 선경(仙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세상 근심이 일순간에 다 사라지는 듯하다. 광장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월류정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있다. 징검다리 너머에는 숱한 돌탑들이 서 있다. 강가에 뒹구는 돌들을 주워 모아 자그만 돌탑을 쌓는다. 돌 하나에 소망을 담고, 돌 둘에 용서를 구하고, 돌 셋에는 근심을 덜어낸다.

 

월류정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


월류정 아래에 도착한다. 아쉽게도 안전 문제로 정자 위로는 올라갈 수 없어 돌아서 다시 나와야 한다. 징검다리에서 바라보는 월류봉 절벽은 검붉은 색으로 우뚝 솟아올라 강직하고 기개가 넘쳐 보이는데 그 모습이 너무 강렬하여 가히 인상적이다


월류정. 물가에 수달래가 피면 진정한 봄이다.


물길을 따라 길이 만들어져 있어 그 길을 따라 걸으며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평일이라 인적이 거의 없는 석천을 따라 걸으며 맑은 공기를 마시고 맑은 소리도 들으니 맑은 생각이 절로 피어난다. 월류봉과 월류정을 바라보면서 마음의 붓으로 수묵화를 한 점 그려보고, 당나라 시인 이백(李伯)산중문답(山中問答) 한 수도 읊조리며 잠시 신선이 되어본다.  

 

묻노니, 그대는 왜 푸른 산에 사는가

웃을 뿐, 답은 않고 마음이 한가롭네

복사꽃 띄워 물은 아득히 흘러가나니

별천지 따로 있어 인간 세상 아니네.

 

問余何事棲碧山(문여하사서벽산)

笑而不答心自閑(소이부답심자한)

桃花流水杳然去(도화유수묘연거)

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

 

반야사로 가는 석천 둘레길


월류봉에서 석천 물길을 따라 반야사까지 가는 총 8.4길이의 둘레길은 강과 산과 절을 함께 음미할 수 있는 걷기 좋은 ()의 길이다. 석천 물길 바로 옆 암벽에 매달아 놓은 테크길을 따라 여울소리길, 산새소리길, 풍경소리길 3개의 둘레길을 차례로 따라가면 반야사에 도착하는데, 원래 반야사는 도착지이고 출발지는 반대편 월류정이지만 어느 방향으로 걸어도 무관하다. 차량으로 이동하려면 원촌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석천계곡을 6쯤 따라가면 계곡이 끝나는 곳에 반야사가 나온다.


반야사 일주문. 절 골짜기는 기암절벽이 많아 저승골이라고 불렸다.


반야사(般若寺)는 백화산에서 흘러내리는 큰 물줄기가 태극 문양으로 산허리를 감아 돌면서 연꽃 모양의 지형을 이루고 있는데 그 연꽃 중심에 절집이 있다반야사는 '문수보살'이 머무는 곳이라는 의미다. 신라 문무왕 때 원효가 창건했다는 설도 있으나 720(성덕왕) 의상의 십대제자 중 한 사람인 상원(相源)이 창건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반야(般若)는 불교에서 진리를 깨닫기 위한 근원적인 지혜를 의미한다. 그 지혜는 인간의 판단 능력인 지혜(分別智)와 다르다. 그 지혜는 집착에서 벗어난 텅빈 충만의 상태에서 존재를 바라보며 얻는 지혜(無分別智). 그 자리에 반야사가 반듯하게 서 있다

 

반야사의 보물 호랑이 형상, 3층 석탑, 배롱나무


반야사는 호랑이 형상으로 잘 알려진 절이다. 반야사 대웅전 마당에서 좌측으로 고개를 돌리면 백화산 기슭에 호랑이의 모습이 당당하게 드러난다. 수천 년 동안 흘러내린 돌무더기가 주변에 있는 나무들과 경계를 이루어 만들어 낸 신기한 형상이다. 높이가 80m에 이르고 길이는 300m에 달한다. 올해가 호랑이해인 임인년(壬寅年)인 만큼 호랑이의 용맹성을 본받아 용맹정진하고자 하는 불자들과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절집 마당에서 바라본 백화산 능선


반야사 극락전 뜰에는 보물로 지정된 삼층 석탑 옆에 500년 된 배롱나무가 있다. 높이가 8m에 이르는 배롱나무(백일홍)는 어쩌면 반야사의 최고참 선승에 속할지도 모른다. 이미 일체의 잎을 떨구고 알몸으로 서 있는 노승(老僧)은 오백 차례의 늦가을마다 군더더기 털어내듯 훌훌 잎을 떨구었을 터이다. 삶이 힘들다고 느껴지면 반야사 배롱나무 아래로 가보시라. 500년 동안 매년 100일 동안 피어 있는 꽃의 이야기를 상기하면 새로운 삶의 에너지가 충전되리라


반야사 대웅전. 백화산의 한성봉 자락 안쪽에 자리한 도량이다.


반야사 옆을 지나는 석천(石川)은 상주에서 영동을 지나 금강으로 접어드는데, 그중 반야사에서 옥동서원까지를 구수천이라고 부른다. 백화산 산허리를 따라 맴돌고 휘돌아나가며 팔탄(八灘, 여덟 여울)을 만들었다. 호랑이 너덜지대를 조심스레 지나니 맞은편에 폭이 50m쯤 되는 반석이 깔려있다. 이곳은 세조가 목욕을 했다는 영천이다. 뒤로는 만경대의 절벽이 가파르다. 그 위에는 지혜의 완성을 상징하는 문수보살을 모신 문수전이 있다. 돌계단을 올라가면 절벽 아래로 보이는 눈 덮인 산과 계곡의 겨울철 풍광이 가히 백미다.

 

망경대 백척간두에 서 있는 반야사 문수전


일주문을 지나 절집을 나서는데 문수전에 계신 문수보살께서 일갈(一喝)하신다.

 

항상 새벽처럼 깨어 있으라.

반야의 지혜를 길어 올려라.

 

그러나 내 안에 뒤엉킨 삼독(三毒)은 진흙처럼 뻑뻑해서 사라질 기색이 없으니 이를 어쩌랴.

 

 

여계봉 선임기자

yeogb@naver.com

 



작성 2022.03.17 11:29 수정 2022.03.17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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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