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프로젝트] 당신의 결정구는 무엇입니까

신정근


그것은 공기 중에서 춤을 춘다. 보이지 않게 넘실대는 바람의 굴곡을 헤치고 몸을 흔든다.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봉오리를 피우는 꽃은 없듯이 어른 손바닥만 한 야구공도 투수의 손을 떠나 포수의 미트 속으로 들어가기 직전까지 심하게 요동치고 흔들린다. 그리고 끝끝내 혼신을 다해 홈플레이트에 당도한다.

 

이 신비한 너클볼은 그런 매력 덕분에 빠르거나 회전수가 많지 않더라도 야구의 역사에서 마구(魔球)라고 불리어 왔다. 마구, 그것은 비단 상대 타자에게 속도에 의한 위압감을 주지는 못해도 타자의 타이밍을 뺏거나 예측 불가능한 곳에 공이 도착하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기도 하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를 리 없겠지만, 너클볼의 궤적은 상당히 불확실하다. 갓 태어난 아이의 삶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마치 지구 반대편 제3세계의 유가로 요동치는 주식시장의 그래프처럼 위에서 아래로 급전직하하기도 하고, 아래에서 다시 약간 위, 때로는 완만한 곡선을 그리다가 예상된 경로를 이탈하기도 한다.

 

투수는 손에서 공을 힘껏 떠나보낸다. 투수판을 밟고 와인드업 자세부터 시작하여 온 힘을 하체 근육에 모으고, 빠르게 몸통을 회전시켜서 어깨와 팔꿈치로 보내고 마지막 손목과 손가락 관절에 포인트를 주어 결국 손끝에서 공을 챈다. 공은 때론 바람에 흩날리는 갈대처럼, 헬륨가스 가득 넣은 놀이동산의 풍선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흔들거리는 여정을 반복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난파 직전의 타이타닉처럼 흔들리던 야구공은 이내 다시 힘을 내어 제 갈 길을 간다. 결국 너클볼은 포수가 기다리는 것이 아닌, 포수에게 다가가는 공 그 자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너클볼은 낙차가 큰 포크볼만큼이나 타자에게 까다로운 볼이다. 그것은 던지는 투수뿐 아니라 모두가 아는 그 공의 불확실성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 자신 있게 던지기엔 부담스러운 결정구다. 하물며 그것을 받아내야 하는 포수의 마음은 또 어떠할까. 하지만 그것이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야구의 묘미다. 집을 떠나 길고 긴 여행을 마치고 다시 집(Home)으로 되돌아와야만 하는 것이 인생의 마침표이며, 세월의 운명이다. 그것은 비단 여행자나 이방인의 삶 뿐만 아니라 야구장의 선수들도 똑같은 운명을 짊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너클볼은 그러한 우리의 인생을 가장 잘 표현하는 공이 아닐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너클볼도, 인생도 한 치 앞을 두고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 큰 긴장감을 유발하기도 하고, 모든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한다. 물론 그것이 항상 성공적인 결말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도 비슷하다. 어쩌면 좋은 성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확률보다는 실패와 좌절을 가져다줄 확률이 더 높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만의 너클볼을 던져야만 한다. 그 공이 아니고는 우리의 삶을 이토록 잘 표현해 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너클볼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공이 겪는 바람의 방향과 세기, 속도까지 모두 말이다. 광속구를 던지는 투수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매력적이다. 팬들도, 감독들도, 동료 선수들도 그런 투수가 마운드에 서 있다면 믿음직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목표점에 누구보다 빨리, 세게 공을 던진다고 해서 월등하거나 성공적인 투수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시종일관 전속력으로 달리면 금세 지치기 마련이다. 페이스 조절이 필요하다. 적당히 느려도 괜찮다. 특히나 우리의 인생은 속도와 힘만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9회 말 너클볼을 던지는 투수가 등판하면 경기장의 모든 관중들은 얼음이 된다. 몸이 굳고, 매순간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차라리 그 순간 눈을 질끈 감는 게 속이 편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위험 부담이 많다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인생이 어디 마음먹은 대로 되는 횟수가 얼마나 되겠는가.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욕망보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절망이 우리의 삶과 더 가까운 친구일 수도 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매번 불안과 초조, 내일이라는 미지의 화살표를 따라 하루하루를 살고 있지 않은가. 마운드와 홈플레이트 사이의 18.44미터를 꾸역꾸역 날아가는 너클볼처럼 고비고비를 넘기며 살아간다.

 

그래서인지 더욱더 너클볼처럼 살고 싶다.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오후의 햇살 아래 춤을 추듯 나풀대는 너클볼이 되고 싶다. 그것이 고된 일상 속 진정한 인생 유희가 아닐까.

 

[글=신정근]

 

작성 2022.03.23 11:13 수정 2022.03.23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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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