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라는 이름은 고씨나 조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짓는 것으로 보인다. 성씨와 합쳐서 부르면 “고아라, 조아라”가 되어 어감이 좋아서 그럴 것이다. 그러면 성씨를 빼고 ‘아라’라는 이름만 놓고 보았을 때는 어떤 뜻을 지닌 이름일까? 그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
‘아라’는 원시어소 [알/ar]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원시어소 [알/ar]은 현대한국어 ‘우렁차다, 우람하다, 우러러보다, 으리으리하다, 아름답다, 아리땁다’ 등의 어원에 해당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어른’의 어원에 해당하는 말이기도 한다. 다시 말해, 아주 큰 것, 거대한 것을 의미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신라 김알지와 알영, 알천의 이름에 쓰인 [알]이 바로 그것이다. 고구려 을파소와 을지문덕의 이름에 쓰인 [을]도 마찬가지다. 고구려 미천왕의 이름은 을불(乙弗) 혹은 우불(于弗)이었다 하며, 을지문덕(乙支文德)은 울지문덕(蔚支文德)이라고도 했다 한다. [을/울]이 혼용되었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을/울]만 혼용되었던 게 아니라 [알/얼/올/울/을/일...] 등이 모두 쉽게 넘나들었다. 김알지의 [알지]와 을지문덕의 [을지]는 사실상 똑같은 말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알동, 알금, 을동’ 같은 이름이 많이 실려 있는데, 그들 이름에 쓰인 [알]이나 [을]도 그러하다.
[알]을 연진발음하면 [아라, 아리, 아루]와 같은 형태가 된다. 신라 제2대 남해왕의 왕비 이름이 아루(阿婁)였는데, ‘아루’는 [알]을 연진발음한 형태다. 일본인들이 많이 쓰는 이름 ‘아야(あや)’는 [알→알야]로 연진발음되는 과정에서 받침소리가 약화 탈락한 형태로 발현된 것이다. [갈→가야] [말→마야] [살→사야]와 같은 식이다.
높은 산을 몽골어로 [울]이라고 하는데 한국어 ‘봉우리’의 [우리]와 같다. [울→우리]는 응집발음과 연진발음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한국어 ‘울타리’는 어떤 지역을 높게 둘러싼 것을 일컫는 말인데, [울]은 높은 것은 나타내는 말이고 [달/다리]는 땅을 가리키는 말이다. ‘울타리’와 ‘알타이’는 사실상 같은 어원에서 비롯됐고 같은 의미를 지닌 말인데, 서로 다른 모습과 다른 의미로 분화가 된 것이다. ‘알타이’는 높은 산이란 뜻이다. ‘알타이’가 금(金)을 뜻한다고 하는 건 사음훈차를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다.
신라 첨해왕 때의 인물인 석우로(昔于老)의 이름 ‘우로’는 [울]을 연진발음한 것이다. 조선시대 세종대왕의 형인 양녕대군이 홀딱 반했던 여자의 이름 ‘어리(於里)’도 마찬가지다. [얼→어리]로 연진발음한 것이다. [알→아리] [얼→어리] [울→우리]와 같은 식으로 발현된 것이다.
“우리”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은 많지만 그 이름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우리들, 즉 영어 We에 해당하는 이름인 줄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이제부터는 이름의 의미를 제대로 아시기 바란다. ‘우리’라는 이름은 봉우리에 쓰인 바로 그 [우리]다. ‘봉(峰)’과 ‘우리’는 같은 뜻을 지닌 말인데, 의미를 중복해서 쓰는 말이다. 한자어와 고유어가 중첩된 말로는 “봉우리” 외에도 “담장, 무당” 같은 것들이 있다. 표준어는 아니지만 “앞전에”라는 말도 ‘앞’과 ‘前’을 중첩하여 쓰는 것이고, 북한의 “장마당”도 ‘場’과 ‘마당’을 중첩하여 쓰는 것이다.
‘을식, 을순, 을동’ 같은 이름에 쓰인 [을]도 마찬가지다. 한자로 乙이라 표기하다 보니 한자식 이름인 줄로 잘못 알게 되고, 단순히 갑을병정의 간지를 써서 ‘갑식, 을식, 병식’ 순서대로 붙인 이름이라고 여기기 쉽다. 그렇지 않다. 본래는 거대한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큰 인물이 되라는 뜻에서 [을]을 넣어 이름을 지어주었던 것인데, 한자에 흡수되면서 인식이 달라진 것이다. 고구려의 ‘을소, 을파소, 을지문덕’의 이름에 쓰인 그 [을]이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힌 직후에 간행된 책 중에 『사리영응기』라는 책이 있는데 그 속에는 “崔올미동, 金올마대, 金어리딩, 許우루미” 등과 같이 새로 만든 한글로 표기한 이름들이 실려 있다.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는 무척 생소하게 느껴지겠지만, 여기서 설명하고 있는 [알/얼/올/울...]을 사용한 이름으로 순우리말 이름이다.
金올마대의 ‘올마대’는 [올맏]을 연진발음한 것이다. 으뜸가는 것을 [맏]이라 하는데 그 맏 앞에 [올]을 덧붙인 것이다. [맏]은 맏아들이나 맏딸이라 할 때의 그 [맏]이다. 백제 24대 동성왕의 이름은 ‘牟大(모대), 牟都(모도), 末多(말다), 摩帝(마제)’ 등으로 표기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같은 [맏]을 음차하여 적은 것이다. 우리 문자가 없었을 때라 그러한 한자로 써왔던 것이다.
‘金어리딩’은 ‘김을동’과 다를 바 없는 이름이다. [얼동→어리동]으로 연진발음된 후에 ‘초등학생→초딩’이라고 하듯 그 끝소리를 비틀어서 발음한 것이다. 그리고 [얼동→어루동(얼우동)]으로 연진발음하는 과정에서 앞말의 받침소리가 약화 탈락한 것이 ‘어우동’이란 이름이다. 역시 큰 인물이라는 뜻의 이름이다. ‘어우동’은 그 이름 자체가 난잡한 교미를 뜻한다고 설명하는 엉터리 국어학자는 하루빨리 사라져야 할 것이다. 따져보면 ‘어른이 되게 하다’는 뜻의 “얼우다”도 같은 어원에서 분화된 말이기는 하지만, ‘어우동’이란 이름의 의미를 설명함에 있어 ‘얼우다(섹스하다)’ 운운하는 것은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옛날 고구려에도 ‘을음(乙音)’이라는 사람이 있었고 백제에도 ‘을음(乙音)’이란 사람이 있었다. 신라에는 ‘아음부(阿音夫)’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들은 [arm, urm] 정도로 불렀던 이름을 한자로 차자하여 적은 것이다. 한글이 없으니 천상 乙音(을음)이나 阿音(아음)이라고 적을 수밖에 없었던 것인데, 한글이 만들어지니 그것을 ‘우루미’라고 적게 된다. 『사리영응기』에 실려 있는 ‘許우루미’는 바로 그러한 이름이다. 오늘날의 ‘아름, 아람, 우람’”과 똑같은 이름이다.
어린이 만화나 영화의 주인공 중에는 ‘아라치, 아로미, 우뢰매’ 같은 이름들이 많이 있다. 어찌 보면 우리말 이름이 아닌 것 같지만, 무의식중에도 우리말 이름의 유전자가 면면히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울타리’에 쓰인 [울]과 ‘봉우리’에 쓰인 [우리]는 그 의미가 똑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같은 어원에서 분화된 말이다. 사람들의 발음에 따라 [울]이 [알, 얼, 올, 을...] 등으로 조금씩 달라지고 그에 따라 의미도 조금씩 달라지게 된다. ‘아라’와 ‘우리’라는 이름이 지닌 의미가 똑같다고 할 수는 없다. ‘아름’과 ‘우람’도 똑같은 의미를 지닌 이름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들이 동일한 어원에서 비롯된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면, 그리고 그 분화과정을 알면, 단순히 ‘아름답다’ 혹은 ‘우람하다’라는 한정된 의미만 지닌 이름은 아니란 걸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아라, 아리, 아름, 우리, 우람, 아람’ 등이 순우리말 이름이란 거야 누구나 짐작한다. 하지만 그 유래와 의미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제부터라도 자긍심을 가지시기 바란다. 오랜 역사를 가진 순우리말 이름이 확실하고, 이름이 지닌 의미도 아주 좋으니까.
요즘 보면, 국적불명의 우리말 이름을 엉터리로 무분별하게 지어내 사용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것 같다. 말하자면 짝퉁 순우리말 이름이다. 그러한 것이 우리말을 사랑하는 길인지 오히려 우리말을 망치는 길인지는 가슴에 손을 얹고 깊이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