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리아의 시간여행

주연이 엄마

수에나

4. 주연이 엄마

리아의 우주선으로 과거를 다녀 오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별도로 준비할 것도 없이 캡틴 다랑이 모든 과정을 알아서 처리해 주기 때문이다. 캡틴 다랑은은 한 치의 실수도 발생하면 안되기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면서도 우리에게 힘든 내색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다지 어렵지만 않다면 내심 나의 어렸을 적으로 가 보고 싶어졌다. 혹시나 하고 리아에게 물어본다.

리아, 나의 과거를 알았으면 좋겠어. 언제부터 혼자였는지, 아가였을 때 나의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는지 얼굴도 보고 싶고 어떻게 지내고 있었는지 알고 싶어. 이 여행이 계획 된 것이어서 나의 개인적인 과거 여행이 안될 수도 있겠지만 어떤 방법이 없을까?”

그래, 나도 너의 과거로 가 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 너도 축복받으며 태어났을 텐데 늘 혼자였다는 건 슬픈 일이야. 캡틴 다랑에게 물어보자.”

리아와 나는 캡틴 다랑에게 갔다. 리아가 내 이야기를 하며 과거로 갈 수 있는지 물었다. 캡틴 다랑은 제복 가슴에 달린 조그만 단추를 몇 번 만졌다. 그러자 미세하게 기계적인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주연, 과거 여행을 동행하는 지구인에게는 두 번의 기회가 있어. 주연이는 두 번 과거로 갔다 올 수 있다는 거지. 내가 먼저 말 하기 전에 주연이가 요구해야만 내가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었어. 이건 당사자가 간절히 원해야 들어 줄 수 있기 때문이야.”

정말이요? 두 번이나요?”

, 두 번이야. 과거로 간다고 해도 미래를 바꿀 수는 없어. 많은 사람들이 과거로 가서 미래를 바꾸려고 하지만 이건 불가능해. 과거로 돌아가 미래를 바꾼다면 우리의 만남과 출발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버리거든. 우리가 출발하는 시점이 미래이기 때문이지. 다만 미래에 영향을 주지 않는 정도에서의 작은 일 정도는 할 수 있어.”

. 알겠어요. 과거로 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나의 과거 여행이 가능하다는 말에 리아가 큰 소리로 축하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두 손을 맞잡고 기뻐했고 캡틴 다랑은 곧 준비한다고 했다. 나는 언제쯤의 과거로 갈 까 고민해 본다. 나의 어렸을 적 기억을 짜내려고 애써도 떠오르는 기억은 없다. 어렴풋이 고아원 시절만 떠오를 뿐이었다.

리아와 함께 도착한 곳은 놀이터다. 어린이들이 뛰어 놀고 있고 엄마들은 벤치에서 아이들을 보고 있다. 미끄럼틀, 그네, 회전놀이기구에서 신나게 노는 모습을 보니, 마치 처음 접하는 풍경마냥 새삼스럽다. 아이들이 가족처럼 친근하게 다가왔다. 나의 어린 주연이는 어디에 있을까 하고 두리 번 거리며 찾아보았다. 내가 1살이 되었을 때의 시간으로 왔으니 놀이터에서 뛰어 놀지는 않을 거다.

저 쪽 할머니 계신 데로 가 볼래?”

리아가 말하는 곳은 놀이터 맨 끝에 있는 벤치였다. 거기에는 할머니 한 분이 어린아이와 함께 있었다. 근처까지 다가가 어린아이를 살피던 리아가 말했다.

아이가 너와 닮았어. 눈하고 입술이 너를 닮았어.”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날 닮은 건지 잘 모르겠다. 이 아이가 맞는다면 아이는 1살짜리 나인 것이다. 기분이 묘하다.

할머니, 아이 이름이 뭐예요?” 리아가 할머니께 물었다.

이름? 주연이야.”

나는 할머니의 주연이라는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차마 어린 내 자신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내 앞에 있는 아이를 보는 것이 편하지가 않았다. 아이의 앞날이 나와 같은 사실에 순간적으로 눈물이 솟구치려 했다. 지금은 이렇게 어리고 귀여운 아이인데 장차 펼쳐질 고난의 시간들이 주어진다는 것이 괴로웠다. 리아가 내 마음을 알았는지 잠시 저쪽에 있으라며 어깨를 두드렸다.

놀이터 가장자리로 몇 걸음 걷다가 리아와 어린 내가 있는 곳을 보았다. 리아는 할머니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할머니는 아이를 안아 무릎에 앉힌다. 이십 여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할머니가 있는 쪽으로 엄마나 아빠가 주연아!’ 하며 오지는 않을까 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둘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보다 어린아이의 얼굴이 궁금하다. 조금 전 보다 마음이 진정되고 있었다. 나는 벤치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할머니와 리아는 내가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인사를 나누어서인지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 받고 있었다.

할머니, 제 친구 이름도 주연이에요.” 리아가 말하자 할머니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요? 같은 이름을 만나다니 반가워요. 우리 주연이도 언니처럼 잘 자라야 할 텐데 걱정이에요.”

잘 클 거에요. 걱정 하지 마세요. 이렇게 예쁘게 자라고 있는 걸요.”

리아의 대답에 할머니가 한 숨을 쉬더니 말했다.

내가 건강도 좋지 않아 아이를 혼자 돌보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네요. 집에 있으면 자꾸 엄마를 찾으니 가슴이 미어져요. 밖에 나와 있으면 그나마 괜찮아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리 행복했었는데 이렇게 덜렁 둘이 살아가야 할 줄은 꿈에도 몰랐지요.”

엄마, 아빠가 안 계세요?”

정말 깜짝 놀랐다. 아직 1살 정도의 어린 나이인데 벌써 부모님이 안 계시다면 대체 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 났단 말 인가. 기가 막혔다. 이 정도의 과거로 온다면 나의 엄마, 아빠를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었다.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렸다. 한 손으로 벤치 난간을 잡고서야 버틸 수 있었다.

할머니는 괜한 소리를 했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리아가 할머니 팔을 붙잡았다.

할머니, 잠깐만요. 제가 가져 온 게 있는데 아이한테 주고 싶어요.”

리아는 메고 있던 작은 가방에서 비스킷을 꺼냈다. 비행선에서 먹어봤던 것들이다.

이거 아이한테 줘도 될까요? 제가 매일 먹는 비타민 과자인데 아이 성장에도 좋아요.”

그래요? 그럼 아이한테 줘 보세요. 먹을지 모르겠어요. 아무거나 먹지 않아 먹이는 것도 쉽지 않아요.”

리아는 비스킷을 아이에게 주었다. 아이가 냄새를 한 번 맡아 보더니 까까하고는 한 입 베어 먹는다. 아이는 맛 있는지 오물거리며 비스킷을 먹기 시작했다. 리아는 몇 가지를 더 챙겨줬다. 아이는 받은 양이 많았는지 먹던 비스킷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할머니에게 주었다. 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마냥 측은하다. 내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나는 힘 없이 말을 꺼냈다.

맛있어?”

까까 좋아.”

어린 내가 오물거리며 말한다. 한 없이 초롱초롱 한 눈동자, 맛있는 비스킷을 먹는 입 모양, 다듬지 않아 길게 자란 머리카락, 작고 귀여운 손등 하나라도 더 유심히 살펴보았다. 1살 무렵의 나를 간직하고 싶었다. 옷을 입은 것도 남자 옷 같았다. 누군가에게 얻어 입힌 옷일 것이다. 여기에 오지 않으면 결코 볼 수 없는 나의 어린 시절이다. 자꾸만 가슴이 아파온다. 지금 여기서 이러면 안 되는데, 참아야 하는데, 자꾸만 가슴이 아파왔다. 나는 어린 나를 안아주고 싶다.

주연이가 맛있게 먹네요. 입맛에 맞나 봐요. 처음 만났는데 이렇게 따스하게 대해주니 고마워요.”

할머니, 주연이 정말 예뻐요. 동생 같기도 하고요. 아이는 엄마를 닮았나요?”

리아가 말했다. 할머니는 어린 주연이를 보더니 말했다.

엄마를 많이 닮았어요. 애 엄마가 내 딸이지만 참 똑똑하고 착했어요. 주연이도 그런 성격을 닮은 것 같아요. 엄마 찾느라 보챌 때 빼고는 하는 게 그래요.”

할머니는 하늘을 바라보셨다. 또 다시 긴 한 숨을 허공에 뱉는다. 한 손은 어린 주연이의 어깨를 쓰다듬으셨다. 할머니는 나의 할머니다. 엄마, 아빠를 만나지 못하게 된 대신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사실, 할머니는 생각도 못한 존재였는데 어린 나를 돌보신 분은 할머니였다. 할머니에게 감사하다. 할머니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애 엄마가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했어요. 대학을 갈 줄 알았는데 공군사관학교에 갔지요. 군인이 되고 싶었대요. 아버지가 좀 빨리 돌아가셔서 그랬는지 외동딸 임에도 남자다운 기질이 많았어요. 집안 가장이라도 된 것처럼요. 그러니 군인이 되겠다는 것도 납득할 만 했지요. 공군 전투기 조종사가 되고 나서 자부심이 대단했어요. 여군으로 공군 전투기를 타는 사람은 몇 명 안 된다고 들었어요. 공부할 것도 많았고 힘든 훈련도 다 했으니 제가 봐도 대견한 딸이었어요. 같이 근무하는 사람도 우리 집에 가끔 왔었는데 칭찬이 자자했어요. 그럴 때마다 딸 하나 둔 것이 아주 뿌듯했지요.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을 정도로 행복했어요. 일이 바쁜데도 나한테 무척 세심해서 고맙기도 했고요.”

주연이 엄마가 정말 대단하신 분이셨군요. 잘은 몰라도 여군이 전투기를 타는 건 아주 특별한 경우거든요.” 리아가 감탄하며 말했다.

나의 엄마에 대해 듣고 나니 감격스러웠다. 내가 살아 온 것과 너무 판이한 삶을 사신 엄마는 나처럼 유약하지 않으셨다. 나는 늘 주눅들고 약한 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전혀 그런 분이 아니셨다. 엄청 강하신 분이었다. 나도 왠지 힘이 나는 것 같다.

저도 부모님을 뵌 적이 없어요. 그래서 많이 그리워하며 외롭게 자랐어요. 주연이를 보니 저의 모습이고 할머니는 제 친할머니와 같아요. 오늘 할머니를 만나게 된 건 제게 큰 축복이에요. 주연이 엄마가 훌륭하신 분이었다는 말씀을 들은 것만으로도 큰 선물을 받은 거나 마찬가지예요. 제가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오늘처럼 감사한 날은 없었어요. 할머니, 주연이가 잘 크도록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할거예요. 외롭지 않게 자주 만나서 주연이를 보살피고 즐겁게 살아가도록 할게요. ”                           

할머니는 가끔이라도 와서 아이와 놀아주면 좋겠다면서 고맙다고 한다. 나는 여기에 이대로 남고 싶다. 그럼, 어린 주연이도 외롭지 않고 할머니의 힘든 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앞으로 과거 여행 안 하고 이곳에 머문다면 아무런 후회할 일도 없을 것 같다. 나의 미래가 어떻든 상관 없다. 어린 주연이가 잘 자라면 미래의 나도 괜찮을 거다. 내가 결심한 듯 말하자 리아가 말했다.

오늘 처음 만났는데 정말 가깝게 느껴져요. 할머니, 주연이, 그리고 제 친구요. 언제 다시 만나자고 약속할 순 없지만 또 만날 수는 있어요. 제가 할머니 어려움을 덜어드릴 만한 것도 생각해볼게요.”

내가 리아를 바라보자 다시 내게 속삭였다.

과거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어. 정해진 시간이 되면, 우리는 여기에서 안개처럼 사라지게 돼. 우리는 과거에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래. 미안해.”

이 말을 듣고서야 캡틴 다랑이 한 말이 떠 올랐다. 어린 주연이를 바라본다. 그리고 속으로 말했다.

아가야. 주연아,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좌절하지 마. 세상은 널 버리지 않아. 잘 될 거야. 어려워도 견뎌줘. 내가 미래에서 왔듯이 우리의 미래도 괜찮아질 거야.’

내가 아이를 다독이며 입술을 굳게 깨물었다. 할머니가 나를 보더니 말씀하셨다.

어째, 아이 엄마 습관하고 같은 데가 있네요. 내 딸애도 그렇게 입술 꾹 깨물곤 해서 무슨 결심을 그리 하냐고 묻곤 했거든요. 그러면 할 수 있고 잘 될 거야. 이런 뜻이지.’ 하며 웃었어요.”

, 저도 비슷해요.”

내 습관이 엄마 습관과 같다니 나는 엄마 딸이 맞는 거였다. 나는 멋진 우리 엄마를 닮은 거다. 그러면 아빠는 어땠을까? 그래도 할머니에게 여쭙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지금 할머니는 어린 아이만 남긴 채 떠나 버린 두 분으로 인해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계시다.

할머니는 나를 더 유심히 보신다. 내가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요. 습관은 사람마다 비슷할 수 있지요. 그런데 아가씨 얼굴이 애기 엄마와 닮은 것 같아요. 우연인지 인연인지?”

. 그래 보여요. 저도 제 친구 얼굴이 아이와도 닮았다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인연인가 봐요. 오늘 이렇게 만났잖아요.

리아의 말에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심 편안한 사람을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 같았다. 리아가 할머니에게 물었다.

주연이는 엄마가 전투기 조종사가 되고 나서 태어났나 봐요?”

그랬지요. 조종사 되고 3~4년 지나서 주연이가 태어났어요. 군인 부모 딸로 씩씩하게 태어났지요. 울음도 우렁차서 아빠, 엄마를 다 닮고 태어났구나 했지요.”

그럼, 두 분 다 군인이셨어요?”

그래요. 공군이었어요. 비행기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거라 위험한 거라 생각은 했어도 걱정을 하지는 않았어요. 아이 엄마가 비행기 중에서 가장 안전한 게 전투기라고 해서 그렇게 믿었거든요. 내가 걱정할 까봐 그리 얘기했던 건데 난 그대로 믿었지요. 그런데 전쟁에 나갈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전쟁은 남의 나라 일이라고만 여겼으니까요. 내 딸도 전쟁에 나가겠다고 해서 깜짝 놀랬어요. 그 전쟁에 나갔던 사위가 돌아오지 못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전쟁도 아닌 남의 나라 전쟁에 너마저 왜 가냐고 말렸지요. 아이가 돌도 안 지났는데 큰일 난다며 말렸어요. 그 때 아이 엄마가 그러데요.

엄마, 걱정하지 말아. 돌아올게. 주연이 아빠는 주연이도 못 보고 떠났어. 그 곳 하늘에다 우리 딸 주연이 예쁘게 태어났다고 말해 주고 싶어. 주연이 아빠도 분명히 기뻐할 거야. 내가 나중에라도 주연이에게 할 말이 있어야 하잖아. 엄마는 주연이의 이름을 하늘을 새기고 왔다고. 그리고 내 가슴에는 어떤 한도 남기고 싶지 않아.’

나도 사위를 잃어 환장하겠던데, 남의 나라 전쟁에서 남편을 허망하게 보낸 내 딸은 오죽했을까요. 딸은 출산을 앞두고 떠난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는데 돌아오지 못한 남편은 원망했었어요. 그 뒤에 전투기를 탄 다는 게 얼마나 힘든 결정이었을 지 말 안 해도 알아요. 결국 다시 전투기를 타겠다는 것은 원망을 털어 버리려고 했던 거였어요.”

나는 할머니의 말을 통해 엄마의 유언을 들었다. 엄마는 내 이름을 하늘에 새겼다. 주연이라는 이름을 하늘에 새기시기 위해 나를 먼저 떠나야만 하셨다.

. 주연이 엄마 아빠가 떠나신 게 얼마 되지 않았네요. 할머니에게 뭐라 위로 드려야 할지. 전쟁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큰 고통을 줘요. 누군가의 야망이나 욕심이 가정을 깨뜨리고 삶을 망가뜨려요.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얼마나 악마와 같은 존재인지, 그들에게는 어떤 자비도 베풀어서는 안 되요. 이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어요. 엄마 아빠를 빼앗아 간 죄는 용서 받을 수 없어요.”

리아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전쟁이지만 나의 삶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찢기고 갇힌 거나 다름 없었다. 내 엄마와 아빠를 빼앗아 간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 그 전쟁은 나의 전쟁이었다.

맞아요. 그 사람들 용서 받으면 안 되요. 이 어린 애가 천하의 고아가 된 것도 전쟁 때문인데 그 놈들이 이런 고통을 알기나 할까요? 마땅히 천벌을 받아야 해요.” 

할머니도 리아의 말에 공감했다.

할머니, 주연이는 이제 할머니 밖에 없어요. 주연이가 할머니 사랑 받고 잘 자라서 평생 감사함을 잊지 않을 거니까 힘 내셔야 해요. 정말 감사해요. 제가 저의 할머니에게 하고 싶은 말이에요.”

나는 할머니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할머니가 내 손을 잡았다.

아가씨가 내 딸하고 많이 닮아서 혹시 내 딸인가 하고 잠시 착각했어요. 정신이 이래서야 안 되지요. 내가 아직은 경황이 없어요.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하기만 해요. 우리 집에 연거푸 닥친 황망한 일이라 매일이 악몽 같아요. 그래도 정신을 차리려고 애써요. 어린 주연이를 보면서 정신 차려야 한다고 다짐하지요.”

할머니는 군인가족 맞으세요. 잘 이겨내실 거에요. 주연이 엄마를 훌륭한 군인으로 키워내셨잖아요. 제가 이거 기념으로 드리고 싶어요. 혹 사시면서 어려운 일 생기면 파실 수 있는 거니까 쓸모 있을 거에요.”

리아는 말이 끝나자 마자 가슴에 있던 흉장을 떼었다. 흉장에는 두 개의 네모난 구슬이 박혀 있었다. 할머니는 한사코 받지 않으려 하셨다. 두 사람의 실랑이에 어린 나는 영문을 모르고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얼른 어린 나를 끌어 안았다. 울지 마, 울지 마 괜찮아. 싸우는 거 아니야.

이건 할머니와 주연이를 만난 기념이고 애기한테 주는 선물이니 받아 주세요.”

옷에 있는 걸 떼서 주려고 하니 내 이걸 어떻게 받아야 할지 난감해요.”

할머니는 주연이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말에 수긍하면서 흉장을 받았다. 그리곤 주연이에게 주었다. 어린 주연이는 흉장을 입에 갖다 댄다. 할머니는 그런 주연이를 꼭 안아주셨다.


[수에나]

한국, 미국, 독일 20여 회 개인전

60여 회 그룹 전시 활동

미네소타 뉴욕 밀스 아트 리트릿 레지던시 활동

자하 갤러리 공모 전시 심사위원 역임

수에나 www.suena.creatorlink.net

 


작성 2022.03.24 12:30 수정 2022.03.24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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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