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서민이고 보통사람인 내가 주제넘게도 수행(修行)을 한다고 까불고 있다. 수행이란 보통 사람들은 이루기 힘든 경지에 이르기 위해 수행자들이 뼈를 깎는 각고의 노력을 하는 과정이기도 한데 일개 범인(凡人)인 내가 수행이라니 그야말로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그렇다고 늘 생각해 오던 것을 해보지도 않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초보 농부 겸 만년수행자(晩年修行者)인 나의 방식은 청소다. 거창하게 심신(心身)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나름의 방식으로 하는데 그것이 곧 청소다. 늘 그렇듯 수행의 시작은 괭이며 낫, 톱으로 시작한다. 오늘은 갈퀴로 낙엽을 깨우는데 며칠 전에 봄비가 내리긴 했지만 50여 년 만에 왔다는 겨울 가뭄으로 낙엽이 썩지 않고 그대로 포개져 지구를 덮고 있다. 스스로는 썩지도 못하면서 두꺼운 이불이 되어 온갖 것들을 덮어주고 있는 것이다.
이미 낙엽이불을 뚫고 파랗게 올라온 난(蘭)가족이 다치지 않게 긁어내자 이웃한 곳에 웅크린 채 도란거리고 있는 노란 아기 난초 가족이 있다. 엊그제 태어난 강아지 가족처럼 서로의 체온으로 데워주는 듯 예쁘고 귀엽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다 그렇듯이 말이다. 그러면서 조금 더 이불을 덮고 있으면 안 되겠냐고, 좀 천천히 나가면 안 되겠냐고 응석을 부리고 있다. 내 욕심 때문에 괜히 너희들을 깨웠구나. 미안하다.
나는 내 안의 무엇을 깨워야 할까. 얼마나 청소를 하며 살아야 할까. 한해살이풀에게도 사연이 많을진대 60여 년을 살아왔으니 알게 모르게 얼마나 많은 허물이 쌓였겠는가. 봉사랍시고 주말을 이웃들과 함께하기도 하고 길거리 걸인들을 한 번도 지나치지 않았지만 내가 보지 못하고 의식하지도 못한 많은 일들 또한 있었을 것이다. 끝없이 청소(수행)하며 감사의 마음으로 살아야지, 인연업과(因緣業果)의 삶을 반추(反芻)하면서.
며칠 동안 자기만의 천하를 호령하던 황소개구리가 생을 다하고 허연 배를 물 밖으로 내밀자 이번엔 작은 개구리들이 메기양어장을 메운다. 자연 섭리의 바톤터치다. 어제는 오래된 가전품을 무료수거팀에 내주었다. 수리되어 새로운 주인을 만날지, 분해되어 부속품으로 쓰일지, 생을 다하고 폐기처분이 될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쌓여있는 낙엽을 쓸고, 잡초를 메고, 땅을 판다. 청소할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장갑이며 호미 등 도구에 대한 고마움은 실로 크다. 바람 없는 날엔 모아 두었던 나무쓰레기를 태우기도 하는데 맨 마지막엔 전정(剪定)한 감나무 가지 중 깨끗한 것을 골라 태운다. 비질로 작은 것들까지 쓸어 모아 깨끗하게 모든 것을 태워 보내는 것이다.
오늘은 작은 텃밭까지 만들었다. 구석진 곳에 몇 년간 쓰레기로 방치되어 있던 곳을 청소하고 밭을 만드니 주변까지 깨끗하다. 며칠 후 씨앗을 뿌리면 얼마 안 가서 상추며, 쑥갓이 올라올 것이다. 고추 모종도 조금 심어야지 하는 생각에 젖어 있으려니 땅거미가 조용히 내려와 나의 어깨를 두드린다. ‘그래, 오늘도 청소수행 한다고 수고했구나.’
저녁엔 고구마와 두유로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고 책상에 앉으니 법정스님 책 표지에 작은 얼룩이 보인다. 저자에게도 책에게도 미안하다. 물휴지로 깨끗하게 닦아낸다. 책이 새책이 된다. 내 마음까지 깨끗해진다. 결국 청소는 원하든 그 반대이든 나의 이익이다.
내일은 곧 올라올 호박 모종을 생각하며 안식처가 될 구덩이를 준비할 것이다. 가급적 깊게 파고는 아궁이 속의 재와 퇴비 등 거름도 듬뿍 채워서 가족을 맞이하게 해야지, 이처럼 청소는 또 다른 시작이기도 하니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진형]
수필가
칼럼니스트
교육부, 행정안전부 범죄안전 강사
이순신 인문학포럼 대표(이순신 국제센터)
제3회 코스미안상 금상
이메일 bluepol7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