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프로젝트] 賣買게임

신정근


이 세상에는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엄청 많다. 우리의 생각보다,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이 있다. 먹는 것부터 시작하여 입을 것과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는 주거 공간까지 세상에 보이는 모든 것은 결국 그것을 살 사람과 팔 사람을 나누어주는 매개체인지도 모른다. 중국의 야시장에서는 지네도 팔고, 바퀴벌레도 튀겨서 팔고, 붉은 개미는 물론이고 쥐과에 속하는 짐승들도 먹음직스럽게 좌판에 내놓고 판다고 한다.

 

내가 살던 인도네시아의 술라웨시 최북단 마나도에서는 성인 남자 팔뚝만 한 도마뱀을 팔고, 파충류과에 속하는 짐승들과 박쥐도 특산물처럼 판다고 알려져 있다. 나는 그 섬의 최남단에 살았기에 마나도까지 가 보지는 못하였지만 술라웨시 사람들은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인도네시아는 열대국가답게 많은 과일들을 판다. 아침부터 4톤가량 되는 큰 트럭에 냄새가 지독하기로 유명한 두리안(Durian)이며, 찌거나 구워 먹을 수 있는 납작한 바나나와 설익은 코코넛을 잔뜩 싣고 와서 도시의 재래시장에 그것을 놓아두고 값을 치르고는 다시 인근 소도시로 빈 트럭을 탈탈거리며 돌아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들이 운전하는 커다란 트럭에는 열대과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슬림들이 주로 먹는 닭고기 소비를 위해 이른 아침에는 수백 마리의 닭을 실은 트럭을 쉽게 볼 수 있다. 출근길에 자동차와 오토바이 운전자들은 닭털 날리는 그 옆을 또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는 것을 보면 그것은 분명 그들의 일상이며 삶 그 자체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사람들은 무언가를 계속 팔고 있었다. 소비자가 있으니 생산자도 있기 마련이다. 내가 살던 마카사르라는 도시는 인구 백만이 넘는 꽤 큰 도시였고 거주하는 사람도 많았는데, 집에서 조금만 나오면 도로가에서 순한 염소를 기르는 사람들도 있었고, 말을 키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만큼 그곳은 우리나라의 풍경을 삼사십 년 전쯤으로 되돌려 놓은 듯한 과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사람들은 서로에게 염소도 팔고, 양도 팔고, 고향에서 가져온 커피도 팔고, 딸기와 용과, 시르삭과 파인애플 같은 당도 높은 과일들을 팔기에 바빴다. 나는 그들이 파는 대부분의 음식을 거리의 포장마차와 레스토랑과 카페에서 소비하는 소비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사실 외국인인 내가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장사를 할 수도 없는 일이기도 했다.

 

대신에 나는 우리말에 관심이 있는 몇몇 사무직 노동자들과 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얼마간의 대가를 받기도 하였으며, 그림을 그리고 전시회를 열어서 몇 점의 작품을 팔기도 하였다. 다만 그것은 숟가락이나 닭튀김을 파는 일처럼 매번 손쉽게 만들어서 팔 수 있는 상품이나 음식이 아니어서 그렇게 큰 수익을 내지는 못하였다. 그곳에서 몇 년의 시간을 보낸 뒤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팔 수 있는 물건도 없고, 무언가를 살 수 있는 돈도 없이 말이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다시 연필과 붓을 잡는 것뿐이었다. 오히려 최근엔 그림을 그린다는 표현보다는 쓴다는 표현이 나에게 더 잘 어울렸다. 인도네시아에서부터 글쓰기의 매력에 빠진 나는 글을 쓴다기보다 문자를 그린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운 좋게도 귀국과 동시에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는데, 흔히들 말하는 출간이라는 단어보다는 출산이라는 명사가 더 어울릴 법했다. 작품을 생산하는 일도 한 생명을 세상에 내놓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란 걸 조금은 깨달았다. 그런 와중에 서울에서 작은 전시회도 열었다. 나는 다행히 두 점의 드로잉작품을 팔게 되었는데 비싼 작품은 아니었지만 차비도 없던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작품도, 돈도 각자의 주인을 만난 것이리라 생각하니 크게 아쉬울 것도 없었다.

 

어찌 됐든 나는 스스로 그리고, 쓴 약간의 글과 그림을 팔았다. 그리고 그것을 구매한 사람은 좋아할 수도 있고,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국숫집에서 국수를 시켜 놓고 맛있게 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올 때 찜찜한 기분에 미간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상품을 사고파는 것과 작품을 사고파는 것은 단순히 생각하면 동일한 것이고, 다르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렵다.


나는 단지 누군가에게 책과 그림을 팔았을 뿐이지만 매매(賣買)란 판매자와 구매자의 마음을 잇는 행위다. 내 책 속 어떤 문장이 타인의 가슴에 아로새겨질 수 있다면, 내 그림 속 어떤 이미지가 타인의 마음에 다른 상상의 씨앗을 심어 새로운 꽃으로 피어날 수 있다면, 그것이 매매게임의 가장 최상의 결과일 것이다.

 

글=신정근


작성 2022.03.30 11:03 수정 2022.03.30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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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