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리아의 시간여행

5 나무박사

수에나

5. 나무 박사

 

나의 과거를 보고 난 이후에 찾아 온 시골의 한적함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뭔가 풀리지 않는 미로에서 잠시 해방감을 맞는 기분이다. 할머니로부터 전해들은 엄마, 아빠에 대한 이야기는 큰 위로가 되었고 나에게 삶의 용기를 심어 주었다. 할머니는 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돌봐주지 못한 게 분명하다. 그 후 할머니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우선은 잊기로 했다. 이제는 과거 여행에서 만날 사람에게서 인생의 보람을 경험해 보기로 했다.

 

초여름의 날씨에 햇빛이 강렬하다. 나무 그늘 아래에 있으니 더위가 그리 나쁘지는 않다. 여름 날씨의 화창함과 불어오는 바람 속에는 자연의 냄새가 배어 있다. 코 속으로 맑은 공기의 상쾌함이 들어온다.

 

우리 앞에는 숲이 우거진 둥근 산과 넓은 밭이 보인다. 사람들이 밭에 쪼그리고 앉아 어떤 일을 하고 있다. 이곳 한적한 시골에서는 어떤 분을 만나게 될까? 리아와 내가 있는 곳으로 한 사람이 걸어 오고 있다. 가까이 다가온 모습은 밀집모자를 쓴 노인이시다.

 

어서 와요. 이 동네가 내가 제일 아끼는 곳이에요.”

여기서 농사를 지으세요?”

 

내가 물었다. 보이는 게 농촌이니 당연한 물음이었다.

 

허허허. 농사라? 맞아요. 농사를 지어요. 나는 평생 나무농사를 지었어요.”

나무 농사요? 그건 무슨 농사에요?”

 

앞에 있는 밭이 종자 목 키우는 곳입니다. 저 밭에서 새싹 나무를 키우지요. 그 옆에 나무 숲이 보이지요? 저런 숲도 밭에서 길러 낸 나무 묘목을 옮겨 심은 겁니다. 이게 내가 평생 해 온 나무 농사지요.”

 

묘목을 밭에서 기르는군요. 전혀 생각도 못 해본 거예요. 나무는 아무데나 다 있으니까 그냥 있는 거로 알았지 저렇게 키우고 가꾸는 건 처음 봐요.”

 

그래요. 지금은 온 산이 나무로 들어차 녹음으로 뒤 덮여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산은 그렇지 못했어요. 전국이 벌거숭이 산이었지요. 아마 학생들은 그런 광경을 본 적도 없을 겁니다. 좋은 시대에 태어난 거예요. 허허허.”

 

. 어르신 같은 분이 계셔서 혜택을 받고 자란 거 맞아요. 어르신은 어떻게 해서 이런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얘기를 들려 주세요. 그리고 저희에게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저희는 손녀쯤 되는걸요.”

 

그럴까? 내가 학생 때 얘기를 하지. 나는 원래 철학이나 문학을 공부하고 싶었어. 형님이 일본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오셔서 나도 그 길을 가길 원했지. 책 읽는 걸 좋아해서 형님이 보던 책을 읽었거든. 그런데 집안 가세가 기울어서 그럴 수 없었어. 아버님은 나를 수원에 있는 고등농림학교에 입학하도록 하셨지. 농림학교는 내 적성에 하나도 맞지 않았어. 철학과 농업이 무슨 관계가 있었겠어? 철학자를 꿈꾸던 내가 학교에서 흙이나 파헤치고 나무나 키우는 일을 하려니 하루하루가 고통이었지. 매일 아침이 되면 또 시작될 흙과의 하루가 괴로웠어. 마지 못해 학교는 다녔지만 한 1년 동안 숱한 방황을 했어.”

 

그런 시절이 있었군요. 하기 싫은 일하며 공부하시기 어려웠겠어요. 그럼 농림학교는 나중에 그만 두셨나요?”

 

리아가 물었다. 철학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농사일을 배우는 학교에 다녔다니 졸업은 했는지 모르겠다.

 

다행이랄까? 졸업은 했지. 사춘기 시절이라 감성이 아주 풍부했어. 그 만큼 방황도 한 것이고. 더욱이 내가 꾼 꾸던 인생과 농림학교는 거리가 멀었잖아. 학교에 다니면서도 철학에 대한 미련이 남아 책은 놓지 않았지. 그러다가 우치무라 간조의 전집을 접하게 됐어. 미래의 나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는 차에 어떻게 하면 나의 천직을 알 수 있을까?’ 라는 부분에서 감명을 받았어. 핵심 내용은 이래. ‘누구든지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고, 그리고 그 사명대로 사는 길은 지금 자기가 처해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는 것이다.’ 이 말이 아주 절실하게 와 닿았어. 이후부터 인생관이 바뀌게 되었지.”

 

책이 박사님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나 봐요. 사람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감동을 받고 인생에 적용하는 경우도 흔한 일은 아니에요. 대부분은 지식의 방편으로 삶죠. 박사님은 책의 내용을 마음으로 읽으신 게 분명해요.” 리아가 말했다.

 

그땐 정말 간절한 마음이 있었지. 우치무라 간조의 말은 인생에 대한 나의 욕심을 내려 놓게 했어. 나는 비로소 사명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나 자신 외의 것에 대해 눈을 뜨게 된 거야. 인생이란 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아서는 안돼. 마땅히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삶의 최고의 가치인 거야.”

 

맞아요. 저희가 박사님을 찾아뵈려고 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런거에요. 인간이 할 수 있고 해야만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거든요.”

 

이 분은 박사님이신가 보다. 농부를 만나러 온 줄 알았는데 시골 산속의 박사님이다. 박사님이 계속 말씀하셨다.

 

그렇게 사명에 대해 생각하니까 조국의 산하가 내 눈에 들어왔어. 고향에서도 그랬고 수원에서 학교 다니면서도 늘 보이는 게 둥글둥글한 황토 산 이었어. 산에 있어야 할 나무가 없으니 산등선이 훤히 보였지. 우리의 산은 속이 훤히 비치는 속옷처럼 창피한 모습이었어. 전에는 이런 산을 보아도 남의 일처럼 별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우리의 강산이 이런 몰골인 것이 못내 속상했어.”

 

산에 그렇게 나무가 없었어요? 상상이 안 가요. 세상 가득 넘치는 게 나무인데요.”

 

산에 나무가 없어서 산속이 훤히 보이는 광경을 본 적이 없어 물어보았다. 산에 나무 있는 것은 당연한 건데 나무가 없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산림이 아주 황폐해졌어. 온갖 공사판에 쓰일 나무, 집 짓는 데 쓰는 나무, 공장, 탄광, 일본으로 가져가는 나무 모두가 우리 산에서 베어졌지. 거기에 더해 전국의 집집마다 땔감도 필요하고 난방도 나무로 해야 하니 천지의 나무가 남아날 수 없었던 거야. 나무를 심는 건 고사하고 어린 나무까지 씨를 말리다시피 했으니 오죽했겠어? 나무 한 그루 심어서 키우려면 10년 이상이 걸리는데 묘목도 없고 심는 사람도 없으니 불 보듯 뻔한 거지. 산에 나무가 없어서 생긴 것이 민둥산이라는 말이야.”

 

정말 심각한 지경이었네요. 당장 필요하니 쓰기만 했지 나중을 위한 대책이 아예 없었어요. 누가 나선다고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닌 거잖아요.”

 

나는 나무 없는 산을 상상하며 말했다. 얼마나 허전하고 초라한 모습일까? 최근까지의 내 모습이 연상되는 산이라면 보기도 싫을 것 같다.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비참함인가? 자신의 알 살이 흉물스럽게 드러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산의 운명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다. 남에 의해 벌어지는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고아였고 고독한 시간을 보낸 것도 내가 선택한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현실적으로 벌어지던 것이었다. 민둥산도 눈물을 퍽 흘렸을 것이다.

 

나는 결심했어. 어차피 농림학교 학생이니 여기서 나의 사명을 찾아보자 했지. 우리나라의 산을 다시 살리는 데 내 힘을 다한다면 얼마나 보람 있겠나 생각하니 공부에 대한 욕심도 생기기 시작했어. 이 일은 한 사람이 해 낼 수 있는 분야는 아니야. 그렇지만 한 사람의 시작으로 강산을 푸르게 하는 밑거름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내가 마침 임업을 전공하고 있었으니 안성맞춤이었지. 그때부터 학교생활은 나의 사명을 찾아가는 출발점이 된 거야.”

 

, 그런 결심을 하시다니 남다르세요. 생각도 엄청 건전하셨어요. 바른 청년의 상이 연상되네요.” 리아가 말하자 박사님이 웃으신다.

 

박사님, 그 다음은요?”

 

학교를 졸업하고 임업 시험장 취직을 준비했어. 우선은 생활을 해야 했으니까. 그런데 동기생이 나더러 그러는 거야. 너는 실력이 좋으니 더 공부해서 나라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라고. 그 친구가 월급을 나의 일본 유학 학비로 지원해 준 덕분에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지. 우리나라에는 임업에 대한 학문이 아예 있질 않았어. 서양의 많은 신학문이 우리나라엔 없던 시절이었지. 내가 1911년생인데 그때도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말이야. 새로운 학문을 배우려면 일본에 가는 게 최고의 방법이었어. 일본은 백 년 전부터 유럽의 학문을 받아들여서 선진학문을 갖추고 있었거든. 일본에서 조림, 식물 생리학 등에 관해 공부를 했지. 한국으로 돌아와서 임업시험장에 취직했어. 무엇보다 임업시험장은 실험과 연구를 집중할 수 있는 직장이었어. 조선총독부가 관리하는 곳이어서 자유롭진 못했지만 임업에 대해 연구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 하지만 역시 시대 상황은 좋지 않았어. 일본이 일으킨 전쟁 막바지에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위험한 곤경에 빠지지 않은 사람이 없었거든. 해방되어서도 나라가 혼란스러워서 연구활동을 할 수 없었어. 그 와중에 6.25 전쟁이 터졌지. 우리의 남은 산림이 불길에 휩싸여 버렸어. 엎친 데 덮친 격이었지. 산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망가져 버린 거야. 나는 속 옷마저 벗겨진 산을 보며 어떻게든 임업을 일으켜야겠다고 다짐했지. 일제시대의 수탈을 견뎌냈는데 앞으로 못해 낼게 무어냐 생각했어.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의욕이 더 불타올랐던 거야.”

 

리아와 나는 박사님의 얘기에 집중했다. 그 시대에 자신의 인생을 나라의 미래를 위한 열정으로 가득 채웠던 분의 이야기다. 어쩌면 나는, 개인의 삶에 국한되어 큰 세상 밖을 들여다 볼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힘들었다는 것은 아주 작은 열매가 매말라가는 정도의 아픔은 아니었을까? 박사님의 관점은 학창시절부터 나와 뭐가 달라도 다르다.

 

전쟁 중에 미국은 한국의 재건을 돕기 위해 다방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어. 농사를 지을 땅도 엉망이었고 사람도 부족하고 거름도 없으니 식량난이 심각했지. 미국은 밀가루로 우리의 식량난을 해결하도록 해줬어. 우리가 즐겨먹는 칼국수나 수제비도 그때부터 대중화가 이루어진 거야. 미국 국무성은 한참 전쟁 중인 1951년에 각계의 사람을 선발해서 미국에서 공부할 기회를 주었어. 한국의 재건을 위한 초청 프로그램이었지. 나는 임목 분야 대표로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임목 육종학을 배우게 되었어. 이 학문은 일본에서 배우지 못한 새로운 분야였어. 우리나라의 산림을 복원하는데 이만한 게 없더라고. 대학에 가 보니 연구환경이 기가 막혔어. 이 사람들은 나무를 잘 키울 수 있는 것도 연구하지만 각기 다른 지역의 기후 환경에 적응할 새로운 나무 종자를 연구하고 있었어. 나는 이거야말로 우리나라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학문이라는 확신이 들었어. 우리나라는 산림을 복원하는 것이 급선무였으니까 빨리 우리 토양에 적응하는 나무를 찾아야 했거든. 우리 산은 너무 망가져서 천천히 갈 시간이 없었어. 한시가 급했지. 나라가 부강해지려면 숲이 울창해야 돼. 숲이 없는 나라는 미래도 없는 거야.”

 

박사님은 보온병에서 물 한 컵을 따라 마셨다. 우리에게도 권했지만 갈증이 나지 않아 사양했다. 말씀을 계속하신 박사님에게 필요한 물이었다.

 

내가 임업을 연구하면서 보람 있었던 결과물이 있는데 몇 가지 얘기해 줄게. 먼저 리기테다 소나무 얘기야. 캘리포니아대학에서 배운 수종교배를 통해 새로운 소나무 종자를 수백 개 만들어 국내로 들여왔어. 이 종자는 리기다소나무의 암꽃에, 테다 소나무의 꽃가루를 교배해서 만든 거야. 새로운 종자의 이름은 두 나무의 이름을 합성해서 리기테다 소나무라 명명했지. 리기다소나무는 척박한 토질에서도 잘 자라는 대신 목질이 균일하지 않아 목재로서의 효율이 낮았어. 반면 테다 소나무는 목질도 좋고 성장력이 우수하지만 추위에 약했어. 두 소나무의 장점만을 합하면 쉬울 것 같았는데 서로의 개화 시기가 맞지 않아 교배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 우여곡절 끝에 만든 종자로 국내에서 실험 재배를 거쳐 추위에도 강하고 목질이 우수한 리기테다 소나무를 탄생시켰어. 우리나라의 맨땅이 된 산에 리기테다 소나무를 심기 시작했을 때 나와 함께 고생한 연구진들이 기쁨의 눈물을 흘렸지. 정말 감격스러운 일이었어. 그 때가 1960년 초니까 나무 심기 운동을 전국적으로 벌일 때야. 자연환경을 우리 스스로 만들기 시작한 최초의 운동이라고 할 수 있지. 리기테다 소나무는 미국에서도 잘 자라고 있어. 미국 산림국에서 미국 동북부의 황량한 탄광지대를 녹화시키려고 했지만 마땅한 수종이 없었지. 마침 미국 학회지에 소개된 리기테다 소나무에 대해 관심 갖고 우리에게 종자를 요청했거든. 우리가 만든 소나무가 거기서도 아주 성공적으로 녹화사업을 마무리하게 되었어. 미국 사람들이 리기테다 소나무를 기적의 나무라고 극찬했지.”

 

그런 나무가 있었어요?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리기테다? 이름도 생소해요.”

 

그럴 거야. 보통 사람들은 소나무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아. 평소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주변의 일상적인 것에서도 모르는 게 많은 법이지. 어때? 내 얘기 들을 만해?”

 

. 모르는 부분이어서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그리고 나무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요.”

 

나도 리아의 말에 맞다 고 화답했다.

 

두 번째는 은사시나무 얘기야. 유럽이 원산지인 은백양나무와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수원사시나무를 교접해서 만든 나무지. 유럽 은백양나무는 하천이나 평지에서 잘 자라고 수원사시나무는 산기슭에 많아. 이 두 나무에서 탄생한 은사시나무는 빨리 자라고 병충해나 공해에도 강한 특성을 지녔어. 그래서 가로수로도 많이 심어졌고 공원이나 주택가에서도 인기가 많았어. 물론 산에도 많이 심었지. 사시나무 떨듯이한다는 말 들어봤을 거야. 그 말의 사시나무가 바로 이 나무 종류야. 내가 연구에 집중한 과제는 건강하게 빨리 자라고 목질이 좋은 것을 우선시 했어. 은사시도 그런 나무에 속하는 거였고. 은사시는 호주로 수출된 나무이기도 해. 호주에서는 낙엽병으로 골머리를 앓다가 은사시나무로 대체하고 나서 산림이 아주 좋아졌어. 호주에서 나무 이름을 지어 달라해서 여기(Yeogi)’로 지어줬어. 은사시가 주로 수원 여기산에서 많아 자라거든. 그래서 호주에서는 여기 나무로 불리고 있지. 이건 여담인데, 박정희 대통령이 녹화사업의 성공을 축하하는 차원에서 은사시나무를 내 성을 붙여 현사시나무로 부르도록 했어. 그래서 공식적인 이름은 현사시나무야.”

 

우리나라 산림녹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게 이 나무들 덕분이네요. 게다가 리기테다 소나무, 은사시 나무가 외국에도 심어졌다는 게 놀라워요. 박사님은 누구도 못한 멋진 일을 해내셨어요.”

 

박사님의 인생이 고귀하다는 생각을 했다. 한 사람이 이토록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누리는지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자신의 능력을 타인을 위해 베푸는 것이다.

 

우리가 효과적으로 일을 하게 되면서 더 빛을 발한 거야. 전국에 나무 묘목을 배포한 것도 큰 효과가 있었어. 묘목을 무료로 나눠주면서 어디든 땅이 있기만 하면 심도록 했거든. 그땐 3~4년만에 거목으로 클 수 있는 속성수 보급도 상당히 많이 했어. 그것을 팔아 농가 수입도 생기고 했고 목재 생산량을 증가시켜 산업화에 쓸 수 있도록 했지. 그러면서 10년 이상 자라야 하는 종묘도 함께 식수해서 장기적으로 산림이 안정되도록 했어. 관민이 적극적으로 나서 주었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우리의 산이 푸르게 변한 거야. 전 국민이 참여했으니 얼마나 신나게 일을 했는지 몰라.”

 

전 국민이 동참한 운동이었군요. 나라를 위한 일에 나서지 않은 사람이 없다니 놀라워요.”

 

리아가 감탄하며 말했다.

 

초등학생부터 어르신까지 모두 동참했지. 그 당시 초등학교를 다녔다면 나무 한 그루 이상 심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어. 전쟁이 끝나고 나서 계속 나무 심기를 했는데도 1968년도에 UN에서는 한국의 산림은 복구 불가능하다고 판단할 정도였으니 우리의 산이 얼마나 황폐된 상태인지 짐작할 수 있지. 그런데 1982년도에 UN 식량농업기구에서 다시 발표했어. 2차 세계대전 이후 산림복원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라고 말이야. 최악의 평가에서 최고의 극찬을 받은 게 14년 만이야. 우리나라 사람들의 노력이 성공적이었다고 인정받은 거야. 나도 아주 기분이 좋았지. 공식적인 인정을 받기까지의 수고보다 실제 우리의 산이 녹음으로 울창해진 광경이 가슴 벅찼거든.”

 

박사님은 산도 많은 우리나라에 기적을 만드셨어요. 만약 아직도 민둥산이 대부분이라면 얼마나 끔찍할까요? 지금이야 온 산이 푸르러서 이런 생각도 안 하겠지만요. 산에 나무가 없다면 어떤 일이 생기죠?”

 

산에 나무가 없다면? 먼저 야생 동물이 살아갈 터전이 사라지게 되지. 그리고 비가 오면 홍수를 막을 방법이 없게 되고 농경지까지 피해를 보게 돼. 산에서 자라는 약초도 구경하기 어려워지고 맑은 공기를 내뿜어주거나 공기를 정화시켜주는 기능도 사라지는 거지. 목재가 부족해지니 건축산업에도 문제가 생기고 이 모든 피해는 사람이 고스란히 겪게 되어 있어. 무엇보다도 환경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니 그 피해를 어디에 비견하겠어. 산에 나무가 자라고 숲이 만들어지면 이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는 거야. 숲은 인류의 자산이고 미래야.”

 

나무는 우리에게 너무 소중한 거였어요. 여기 이 나무도 그냥 서 있지만 정말 유익한 거네요. 나무에게 고마워해야겠어요.”

 

나는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는 나무를 쓰다듬었다. 리아도 나무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이건 무슨 나무인가요?”

 

이 나무가 전부 리기테다 소나무야. 심은 지가 벌써 30년이 넘었군. 1세대 리기테다 소나무지.”

 

우와, 그래요?”

 

리아와 나는 감탄하며 소나무 숲을 살폈다. 소나무 향기가 더욱 짙어지는 것 같다. 곧게 자란 것이 늠름해 보인다. 이렇게 직접 숲을 이루고 있는 리기테다 소나무를 보게 되니 박사님의 업적이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박사님에게 나무는 인생 그 자체네요. 정말 뿌듯하시겠어요.”

 

리아의 말에 박사님이 말씀하셨다.

 

솔직히 우리나라 어딜 가도 내 자식 같은 나무가 장관을 이루고 있어서 기분이 좋아. 심을 때는 어린 애들이었는데 이렇게 장성한 걸 보면 기특하고 사랑스럽거든. 이 나무가 내게 주는 기쁨이 아주 크지. 내가 나무를 심었다기 보다 나무가 나의 인생을 이끌어줬다는 생각도 해. 그래서 지금도 묘목을 가꾸는 게 큰 즐거움이야.”

 

아직도 묘목을 키우세요?”

 

내가 묻자 박사님이 손가락으로 밭쪽을 가리키신다.

 

저기가 묘목밭이야. 한번 가 볼까?”

 

우리는 박사님을 따라 밭으로 향했다. 무슨 농작물을 키우는 곳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 가 보니 모두 어린나무들이었다. 콩나물만한 크기의 묘목이 넓은 밭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사람들은 한 그루 한 그루마다 표 딱지를 붙이고 있었다. 수천 그루? 아니 수만 그루는 될 정도의 묘목이었다. 그 나무를 일일이 관리하는 모습은 경이적이었다.

 

이건 무슨 나무에요?”

은사시나무 묘목이야. 예쁘지?”

. 정말 예뻐요. 이렇게 어린나무는 처음 봐요.”

 

나무가 참 예쁘다. 박사님의 예쁘다는 표현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사랑스러움이 느껴졌다. 이렇게 많은 나무를 가꾸는 아저씨들의 손길도 나와 같은 마음인가 보다.

 

여리고 여릴 때부터 나뭇가지가 잘 나왔는지, 뿌리가 견실한지 살펴봐야 해. 싹이 텄다고 해서 그냥 자라는 게 아니야. 정성을 들여 돌보면 이 작은 것들도 응답을 한다는 게 신기한 일이야.”

 

그래서 이렇게 정성스럽게 돌보는 거군요. 사람들도 서로 이렇게 아끼는 사랑을 나누면 좋겠어요. 사람끼리는 어려운 일인가 봐요.”

 

내 말에 박사님이 말씀하셨다.

 

나무와 사람 간의 관계는 다소 일방적인 측면이 존재하지. 사람이 관리해 주면 그대로 영향을 받게 되거든.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갈 능력이 누구에게나 있어. 인생의 올바른 자세는 나무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거야. 나무는 자신이 심겨진 땅이 척박하든, 좋은 토질이건 뿌리를 가장 견고하게 내리려고 노력하지. 그래야 자신이 올바르게 서 있을 수 있고 당당하게 성장할 수 있으니까. 우리도 이런 자세를 가지면 자신 있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거야. 누구의 탓도 하지 말고 말이야.”

 

박사님의 말이 귀에 맴돌았다. 내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어쩌면, 이제 출발선에 있는 정도일 것이다. 너무 조급하게 굴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빠르게 자라는 속성수라도 일정한 시간은 필요한 법이다.

 

 

[수에나]

한국, 미국, 독일 20여 회 개인전

60여 회 그룹 전시 활동

미네소타 뉴욕 밀스 아트 리트릿 레지던시 활동

자하 갤러리 공모 전시 심사위원 역임

수에나 www.suena.creatorlink.net


작성 2022.03.31 10:38 수정 2022.03.31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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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