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봄비가 제법 많이 내린 덕분에 겨우내 말라 있던 수로(水路)에 물이 흐른다. 이른바 겨울 건천(乾川,마른 내)이 봄이 되면서 물이 흐르는 본연의 내(川)가 된 것이다. 수로에 물이 흐르면 농부의 발길은 바빠진다. 벼를 심기 위한 준비를 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수로의 물을 논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우선 물꼬를 만드는 일이 바쁘다. 어느 지점에서 물길을 돌려 논으로 들어오게 해야 할까? 또 차가운 물이 바로 논 한가운데로 들어가게 되면 벼가 냉해를 입을 수도 있으므로 물에게 논의 가장자리를 돌아 수온이 따뜻하게 해서 들어오도록 물꼬를 틀어 주어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물꼬가 너무 낮으면 벼의 성장에 필요한 수분이 부족하게 되고 너무 높게 되면 벼의 뿌리가 뽑혀 물위로 떠오를 수도 있다. 무엇이든지 적당한 정도를 유지하거나 지키기가 어렵다.
작업복에 장화를 신고 무논에 들어간다. 저 만큼엔 노란 아기민들레 남매가 내려다보고 있다. 작은 논두렁으로 물길을 돌린다. 장화 밖 무논의 흙에서 전해오는 차가움을 느끼며, 괭이로 부족한 것은 손으로 물속에서 흙을 퍼 올려 마무리를 한다. 역시나 물이 차갑다. 작은 논두렁 구멍으로 물이 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흙에 물을 떠올려 반지르르하게 다듬는다. 그리고 물의 증발 정도에 따라 수위를 맞추기 위해 조절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그 부분은 다른 부분과 달리 돌을 몇 개 가져다가 수로의 방향키 역할을 하게 한다.
물꼬를 만들다 보니 우리들의 세상살이와 매양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물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기와 방향, 그리고 물꼬의 높이이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무엇을 해야 하는 때를 놓치기도 하고, 방향마저 자신도 모르게 엉뚱한 곳으로 가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능력이나 처지를 생각지도 않고 너무 높은 곳을 바라보다가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한번 지나치면 절대로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을 놓치는 것이다.
이는 비단 개인의 문제뿐만이 아니다. 나라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나 크고 작은 집단을 끌고 가는 리더는 더욱 그렇다. 시간, 방향도 그렇고 높낮이도 그렇지만 물꼬를 만들 때 물이 새지 않도록 논두렁 흙을 버무려서 제대로 만드는 것처럼 사회적 약자들이 그 혜택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신경을 더욱 기울여야 한다. 자신의 위치기 높을수록 자신의 판단이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적어도 리더는 자신의 야망이나 욕심보다는 구성원의 공통 행복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
물꼬작업을 마치자 서서히 논에 물이 차오른다. 봄을 맞을 준비가 되어가는 것이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트랙터로 논을 갈고, 또 논의 흙이 안정되길 기다렸다가 모내기를 하고는 시기를 놓치지 않고 김을 매고, 농약을 뿌려주어야 한다. 어린 벼가 자리를 잡지 않았는데도 김을 매거나 바람이 부는 날에 농약을 뿌려서는 안 된다. 물꼬의 높이도 벼의 성장에 맞추어 조절해 주어야 하듯 정책 추진에 있어서도 숙려(熟慮)의 시간이 필요하다.
벼는 주인(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처럼 늘 민생을 살피고 낮은 자세로 다가가야 할 것이다. 세상을 중용(中庸)과 역지사지(易地思之)를 가슴속에 새기고 ‘나보다는 우리, 내가 보다는 상대방 덕분에’를 먼저 생각한다면, 그리고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능히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같이’ 걷는다면 무엇이든지 이루기가 더욱 수월할 것이다.
물꼬의 꿈은 무엇일까? 수로에서 물꼬를 따라 돌아들어 온 물이 논을 한 바퀴하고는 아래쪽 논으로 흘러간다. 이처럼 세상이란 그 무엇이든지 자신이 영원히 머물 곳은 없고, 자신의 역할을 다하면 미련 없이 떠나야 하는 것이며, 또 새롭게 만나는 곳에서는 그곳에서 충실해야 한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어디든, 무엇을 하든 그 모든 것은 그 시간, 장소만의 고유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오늘은 물꼬의 꿈을 따라 나도 흘러간다.
[하진형]
수필가
칼럼니스트
교육부, 행정안전부 범죄안전 강사
이순신 인문학포럼 대표(이순신 국제센터)
제3회 코스미안상 금상
이메일 bluepol7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