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쳤을 때 하는 독서가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쳤는데 무슨 독서인가 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답은 긍정적이다. 그런 상황에서 하는 책읽기는 생각의 공백에 침잠하고, 생각의 전환을 가져오며, 심신을 다스리고, 새로운 의욕을 북돋기 때문이다.
다만, 지칠 때 하는 독서는 얽매이지 않으면 좋겠다. 책 한권 들고 걷다가, 공원을 거닐다가, 아무 곳에 걸터앉아 한, 두 페이지 읽어가다, 눈을 들어 지나는 사람을 보다가,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듣다가, 팔짱끼고 지구 끝까지 걷고 싶은 연인들을 보다가, 휠체어를 밀고 가는 사랑을 보다가, 풀밭에 내려앉아 평화를 주워 먹는 비둘기를 보다가, 한낮의 구름을 보다가, 멀리 한 점으로 사라지는 솔개를 보다가, 점점 밀려오는 파도에 눈이 지긋이 감겨, 그만 책을 떨구는 독서여도 좋겠다.
독서의 힘은 근력. 매일매일 글을 쓰는 습관을 접었다가 오랜만에 글 하나를 제대로 완성하려니 생각보다 쉽지 않다. 글쓰기 근력이 줄어든 탓이다. 그러니 ‘독서근력’은 오죽 하겠는가. 평소 일정량을 정해놓고 책읽기를 해가는 ‘정량독서’를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무슨 책읽기를 분량을 정해놓고 하는가, 라는 반론과 이견이 분명 있겠지만 일정한 양을 소화해 가는데 따른 이점이 분명 존재한다고 본다. 주기적으로 또는 정기적으로 책을 읽어나가면서 생기는 독서근력은 인체의 근육처럼 사용하면서 점점 더 강화된다. 그래서 책 읽기는 습관이고, 근육(독서근력)을 사용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적 책읽기를 등한시하는 사람이 아무리 질적인 독서를 운운해도 실제에 있어서 다독가의 독서, 습관적인 독서의 강점을 뛰어넘을 수는 없을 것이다. 평소 소식(小食)을 하던 사람이 한 순간 영양보충을 많이 한다고 해서 근육 량이 부쩍 늘거나 건장한 몸이 될 수 없는 이치와 마찬가지다. 결국 일상적이고 습관적인 독서가 지속가능한 ‘지혜의 밭 갈기’인 셈이다.
그렇다면 지칠 때 하는 독서는 습관적인 독서에도 유효할까. 이것에 대한 나의 답 역시 ‘그렇다’이다. 책을 읽다보면 어느 때고 읽기에 지치고 싫증이 날 때가 분명 있기 때문이다. 가령 습관적인 독서를 하지 않던 사람의 경우 한 권을 다 끝내지 못하고 지친다 할 때, 독서근력이 다져진 사람이라면 그 경계가 수십 권, 수백 권으로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책을 잡은 손이 늘어진다. 부쩍 따뜻해진 날씨에 피로가 몰려오면서 눈꺼풀이 아래로 쳐진다. 현기증도 나고 목이 칼칼해지는 참에 혹 코로나로 인한 것이 아닐까 하는 무거운 마음이 생긴다. 고민하던 차에 지인에게 얘기를 하니, “나도 그래, 봄이라 그럴 거야”라며 대수롭지 않게 답을 되돌린다.
산수유가 환하게 피어나고 있다. 고운 빛깔의 진달래도 곧 필 것이다. 책 읽기에 지친 마음을 잠시 달랜다. 키에르케고르는 “게으름을 피우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생활을 할 수 없다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 난 사람이지”라고 중얼거리니 절로 웃음이 난다. 잠시 딴청을 부리며 돌을 걷어차고, 나뭇가지를 짓궂게 잡아 늘어뜨리며, 지나는 사람을 듣다가, 지나가는 바람을 보다가, 아장아장 걷는 발걸음을 세다가, 책을 쥔 손을 다시 들어올린다.
책갈피마다 나뭇가지가 얼기설기 얽혀있다. 한 가지 한 가지를 조심스럽고 과감하게 젖히며, 책을 넘긴다.